1.
어렸을 적 부터 나는 노래를 잘 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늘 학교 대표로 독창대회 나가서 교육장 상도 받곤 했었다.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를 하면 마지막 날에는 늘 찬송가 부르기 대회가 있었다. 성경학교 때 배운 새찬송을 가지고 대회를 하는 것인데..... 이 때 쯤 교회 선생님이 날 조용히 부르시는 일이 있었다. 조용히 불러서 말씀 하신다. '신실아! 니가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알지만 너는 목사님 딸이니까 1등은 안 준다. 교회 새로 나온 아이들한테 1등을 주는 것이다'

늘 그랬었다. 그러던 어느 해, 학교에서 독창지도를 하시는 선생님이 우리 교횔 나오시게 되었고 성경학교 찬송 대회 심사를 맡으셨다. 심사평과 순위 발표를 하시며 말씀 하셨다. '정신실이는 우리 학교에서 대표로 나가서 교육장 상을 받아 인정 받은 실력이다. 그러니 아무리 목사님 딸이라도 1등을 안 줄 수가 없다'
매 년 내가 상을 받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어쩌면 어린 마음에 목사의 딸이기 때문에 받는 불이익이 아니라 특혜라고 생각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때의 분위기며 선생님의 말씀에 대한 기억은 하면 할수록 통쾌하고 시원하고 기분이 좋은 것은 뭐 달리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2.
우리 아버지는 나를 너무 이뻐하셨는데 표현이 없으신 분이셨다. 특히 교회에서는 나나 동생을 아는 척도 안 하셨던 것 같다. 교회와 사택이 붙어 있으니 집이 교회고 교회가 집인데 뭐 집에서도 그리 살갑지 않으셨다. 어렸을 적에 우리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어느 해 여름, 교역자 가정 수련회가 있었다. (내 동생은 교회에 부흥회나 행사가 있으면 영락없이 외갓집으로 쫓겨 갔다. 이유는 뻔 하다. 걸어다니는 사고 제조기였으니까! 역시 그 수련회에도 안 데리고 갔었다 ㅎㅎㅎ) 그 수련회에서 우리 아버지가 유달리 내게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생전 나를 칭찬하는 소리를 못들어 봤는데 친구 목사님들에게 '저 놈이 공부를 잘 해. 또 노래도 잘해서.......'하시기도 하셨고.
'혹시 우리 아버지가 수련회에서 은혜 받고 변화 받았나?' 했었는데 집에 오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3.
여전히 많은 목사님들이 교회에서 사모님들과 자신의 아이들 챙기는 것을 '목사로서의 사명에 대한 직무유기'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해서, 사모나 목회자의 자녀들은 소리가 안 나야하고 있어도 있는 표가 나지 않아야 하고....게다가 목사님은 교회에서 자신의 가족들에게 애정표현을 해서는 안 되고.
내 동생은 목사가 되었고 목사와 결혼하는 선영이는 사모가 될 것이고 그 아이들은 목사의 딸 내지는 목사의 아들이 될 것이다.

4.
솔직하게 동생이 가정을 세우는 일에 어떻게 시간과 에너지를 분배할 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 자신의 사역과 가정의 돌보는 일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 절대적인 시간과 에너지는 늘 부족할텐데 말이다. 평신도로서 나는 어떤 목사님을 기대하나?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은 장점이 많지만 탁월한 리더는 아닌것 같다. 많은 부분의 약점이 눈에 보이고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런데 내가 목사님을 존경하는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목사님의 두 아들을 내가 초등부 때부터 가르치고 이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대학생이 된 두 아이가 참 잘 자랐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두 아이 다 아빠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
많은 교인들로부터 공적으로 존경 받기는 오히려 쉬운 일 아닐까? 가족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은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문에 목사님이 가정에서 존경 받을 만큼 아내와 자녀들을 잘 섬긴다면 그것만으로도 몇 십 편의 설교보다 좋은 가르침이 되지 않을까 싶다.

동생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나는 기대하고 기도한다. 동생이 교인들을 최선을 다해서 섬기고 들어주고 영혼을 구원하는 목사가 되기를.....그러나 선영이나 앞으로 태어날 자녀들이 동생의 사역으로 인해 너무 많은 희생을 하지 않도록. 오히려 그 사역의 동역자가 되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가족이 되기를.

2004/10/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