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친정) 현관 앞에 쭈~욱 놓인 화분 중에 고추가 심겨진 화분이 네 개.
오늘 들며 나며 그것이 고춘지 뭔지 관심도 없었다. 밖에서 저녁 먹고 들어오는 길에 엄마가 자랑스럽게 '야! 고추 심은 거 볼래?' 이러시면서 소매를 잡아 끄셨다.
(목소리를 낮추고)'저 밑이 집이 고추를 나보다 먼저 심었거든. 봐라! 이거랑 한 번'
아닌게 아니라 네 개의 고추가 꼿꼿하게 통통하게 뭔가 당당하게 자라고 있었고 아래층 고추는 시들시들 힘이 없어보였다.

'내가 말이다....새벽기도 갔다 올 때마다 이거 붙들고 사랑헙니다. 잘 자라유. 열매 많이 맺어유 이러거든. 확실히 달러~ 야!' 하신다.

우리 엄마는 이런 사람이다. 새벽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가 엄마의 취미이자 특기. 우리 학창시절부터 1년에 두 달, 즉 3월과 9월 학기가 시작되는 달에는 철야기도를 하시며 우리의 학교생활을 도우셨다. 나나 동생이 조금만 아프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가 기도 안 혀서 그렇다. 내가 누구 마음 아프게 해서 니들이 받는 것이다' 하면서 다시 기도의 무릎을 꿇으시는 분이다.
그리고 작은 식물 하나에도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줄 아신다. 죽어가는 벤쟈민 화분을 쓰다듬고 붙들고 기도해서 살리신 울엄마다.

시골교회 사모님으로 전 삶을 다해 성도들을 섬기는 모습들이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내가 자라던 시골교회 목사관에는 꽃밭이 잘 꾸며져 있었다. 거기에는 특이하게 무화과 나무가 있었다. 내게는 매우 자랑스러운 나무였다. 오직 우리집에만 그게 있었기 때문에 감나무 포도나무 이런거에 비교가 안 되는 희소성으로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뿐 아니라 목사님이신 아버지에게도 꽤 사랑을 받는 나무였다. 남다른 정성으로 기르셨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그 나무에 무성하던 잎이 하나도 없이 삐죽이 가지만 앙상한 것이다. 그리고 집안에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 잎들이 다 솥에 담겨서 삶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애긴즉슨, 성도 중 누가 아픈데 무화과 잎 끓여 먹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간에 무화과 나무를 얼마나 아끼고 자랑스러워 했는지 그것은 생각해 볼 여지도 없는 것이었다. 그 무엇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중요하랴? 아마도 부모님 생각을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무화과는 시들어 버리고 다시는 열매도 잎도 보지 못했다. 아주 어릴 때의 일인것 같은데 기억이 생생하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부모님의 마음이 그 분들의 말 없는 행동으로 충분히 내 어린 마음을 적셨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저 고춧대를 보면서 문득 그 무화과 나무 생각이 났다. 기도 밖에 모르는 엄마. 노인이 되면 고집이 세진다는데 날이 갈수록 더 부드러워지고, 더 마음이 넓어지시고, 도통 화내고 미워할 줄을 모르는 엄마. 팔순의 연세에 유머를 아는 엄마. 바로 오늘의 내가 있게 한 아주 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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