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가 싱가폴로 떠난 지 열흘이 넘었다. 가기 훨씬 전부터 포스팅을 계획했었던 터라 머리속에서 컨셉이 여러 번 뒤집어졌다. 지난 주, 그러니까 며칠 전 베란다에 앉아 기도하는 중에 윰 출국 기념 포스팅에 관한 마지막 계시를 받고 오늘에야 자판을 두드린다. 윤미와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만남이 내게 남긴 것들이 많다.

나이가 들수록 말을 들어주는 후배가 있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걸 새삼 알겠는 요즘 나는 진정 노땅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암튼, 말을 들어주고 글을 열심히 읽어주는 윤미. 내가 사는 모습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소망이 생겼다는 윤미가 갑작스레 직장을 싱가폴로 옮기게 되었단 얘길 들었다.
아, 목자모임에서 자신을 망가뜨려가며 분위기를 띄워주는 윤미. 청년부 사역의 든든한 동지 윤미가 간다니.... 모두들 잘 됐다고 한다는데 우리 부부는 한 번 매달려 붙들고 싶은 유혹을 어쩌질 못했다. 가지마, 가지마...잉.

헌데, 그 소식을 들고 집에 온 윤미가 그랬다. 그렇게 싱가폴 가고 싶어서 난리 칠 때는 안 보내주시고 이제 다 내려놓고 무엇보다 공동체가 너무 좋아 떠나기 싫은 지금 가게 되다니요.... 맞다. 그렇게 갖고 싶어서 집착하는 것은 내 것이 되기 어렵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가 집착하는 것이 결국 우리를 삼킨다는 것을 아시기에, 우리를 절절이 사랑하는 그 분이 아무리 우리가 갖고 싶어해도 독이 되는 것을 주실 리 없다.  싱가폴이 결정 되기 전이었는데 새로 문을 연 윤미의 블로그 제목이 'In His Time' 이었다. 윤미는 자기의 때를 포기하고 그 분의 때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 분이 내게 말씀하신다.

'윤미를 인도한 내 손길을 주의깊게 보렴. 아무리 네가 갖고 싶어도 그것이 나를 아는 것보다 네게 더 소중한 것일 때, 네게 줄 수 없어. 내 사랑이 너무나 커서 너가 갖고 싶어서 목을 매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그걸 주지 않는 내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널 사랑하기에 네가 그걸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란다. 내 사랑을 알겠니?'


우리 부부 역시 윤미를 한 번 붙들어보고 싶은 것은 집착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목자로 선배로 몇 몫을 하는 윤미의 빈 자리가 작지 않을 거라는 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배워야 한다.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놓는 것을.
공동체 우리가 아둥바둥 지키려고 애를 써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생각해보면 청년부 사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훌륭한 리더들을 떠내보내야 했다. 단기선교사로, 타교회 전도사님으로, 또 타교회 사모님으로.... 그렇다. 인간적인 계산법으로 아쉽지만 그 빈자리에 부는 허한 바람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훈련시킨다. 그 허한 바람으로 마음이 일렁일 때마다 그 끝자락에서 결국 그 분을 바라게 될 것이다.
윤미언니 출국하는데 공항까지 갔다온 채윤이가 하룻밤 자고 일어나서 '엄마, 벌써 윤미언니가 보고싶어' 했다. 내리 삼 일을 윤미언니 떠난 얘기를 일기로 쓸 만큼 채윤이에게도 쉽지 않은 헤어짐인 것 같다. 엄마 아빠가 기꺼이 떠나보내는 훈련을 하는 동안 열 살 채윤이 나름대로 자신만의 연습을 한다.


여기까지 라고 생각했었다. 헌데, 지난 주 어느 햇살 부서지던 오전이었다. 오래된 물음표 하나가 마음에서 점점 커지면서 나는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이런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길을 잃었었다. 최근에 깨달은 것이지만 그렇게 길을 잃고 흔들릴 때마다 실은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흔들리는 내 자신을 보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내가 명색이 목회자의 아내가, 신앙이 있다고 자부하는 내가 이렇게 흔들리다니.... ' 자동으로 나를 자책하는 모드가 되고 그 이후에는 내게서 고개를 돌려버리실 것 같은 하나님. 벌을 내리실 것 같은 하나님을 느낀다.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아...

베란다에 앉아 기도 아닌 기도를 하면서 여기까지 깨달은 순간 지난 겨울의 윤미가 생각이 났다. 남편의 청년부 사역이 시작되었던 작년 11월 즈음이다. 윤미의 얼굴에 웃음이 없었다. 한 눈에 봐도 많이 힘들어 보였다. 내가 아는 윤미가 아는데.... 혹시 우리가 청년부로 온 것이 싫은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픈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첫 눈이 오던 날이었던가? 교육관에서 목자모임을 마치고 목자들이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은 난 윤미의 뒷모습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 날도 무겁게만 보였던 윤미의 뒷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목자라는 짐을 지고 힘겨웠을 날들이 마음으로 느껴졌고 그저 한 없이 안아주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아, 청년들의 방황도 사랑스럽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며칠 전 기도랍시고 앉아 하나님께 대들고 한편으로 나를 정죄하던 그 순간에 그 눈오는 날 윤미를 바라보던 내 마음이 생각난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에 말씀하시는 그 분의 음성.
'바보! 니가 내 사랑을 좀 의심한다고, 니가 나의 진실과 공의를 좀 의심하며 흔들린다고 내가 너에 대한 사랑을 거둘 것 같냐? 너가 가장 흔들릴 때 내가 널 가장 사랑하는 것 여태 몰랐지? 지난 겨울 눈 오던 날에 윰을 바라보던 그 사랑의 눈빛보다 몇백 배 몇천 배의 따스함으로 바라보는 나를 아직도 모르겠니?' ㅠㅠ



윤미가 가면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내게 남겨주고 갔다. 매일 매일 커피를 내려 아이스아메리카노의 깔끔한 맛과 향에 감동할 때마다 윰과의 만남을 통해 일깨우신 그 분의 사랑을 음미하려 애쓴다. 우리 삶과 만남의 구석구석에 아로새겨진 그 분의 사랑. 윤미 역시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매일 매일 발견하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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