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닫히는 문에 대해서 조금 여유가 생겼다. 닫히는 사이 열리는 문도 있다는 걸 생이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닫히려는 문을 붙들고 힘을 써봐야 자연의 바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그 문을 찾아 동동거리며 찾아봐야 닫힌 문 앞에서 열쇠가 없으면 그만이라는 것도. 

생각지 않은 배움의 문이 닫히는 듯 또 열리고 있어 신기하다. 내 마음의 여정에 꼭 맞는 강의를 자꾸만 듣게 되니 이건 누군가 나를 위해 커리큘럼을 짜놓은 것만 같다. 딱 개설됐다가 내가 듣고나니 사정상 지속하지 못하는 강의라니, 이건 딱 나까지 들어오고 닫히게 되는 문. 그걸 마치니 전에 없던 강의가  개설되었는데 이건 내가 몇 년 전부터 찾던 바로 그 강의. 오메, 이번엔 열리자마자 내가 일빠로 들어가게 되는 문.

작은 몸에서 무슨 그런 열정이 나오냐는 애정 어리고 부러움은 늙은(읭?) 말을 듣곤한다. 그만 좀 배우러 다니라고도 한다. 단언컨데 열정을 뿜으며 애써서 찾아다니질 않았다. 그냥 꼭 필요한 강의 수강신청서가 눈앞에 떡떡 나타나곤 했다. 이번 학기 더욱 설레지만 설렐수록 차분해지는 마음으로 저 분위기 있는 문을 지그시 밀어 연다.    


 

대학원 시절, 매주 음악치료 실습이 있었다. 실습은 바로 채점되어 바로 점수가 나왔고, 이걸 합산하면 그대로 학점이 되는 것이었다. 학교 다녀온 밤에는 그 채점표를 들고 점수 계산을 하고, 또 하고, 지난 번부터 다시 더하고, 또 더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그러고 있다는 인식도 잘 못했다.

어느 과목에서 프로이드 심리학을 들었는데, 학부 때도 전공은 달랐지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름이 프로이드였고, 의식과 무의식, 자아, 초자아 등등이었다. 헌데 그날 수업에서 '여러분이 인식하는 자신은 5%에 불과한 것 아세요? 나머지 95%가 이 빙산 아래 무의식이라는 것이죠' 라는 교수님의  말이 확성기에 대고 하는 말처럼 크게 들렸다.

그리고 수업 마치고 집에 가서 다시 실습 채점표를 꺼내들고 있는 나. '왜 이렇게 뻔히 아는 점수 계산을 하고 또 하고 이러지?' 하고 멈췄다. '무의식적으로 뭘하는 거지?' 하면서.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었다. 0.5이 도대체 어디서 깎였는지, 동기 중 누구누구는 점수가 어떻게 됐을까, 이런 불안은 다음 학기 장학금에 가 있었다. 다음 학기 장학금을 탈 수 있을 것인가가 불안해질 때마다 점수 계산을 하고 있었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경험이었고 '무의식에 이끌려 다니는 나'를 확 인식하는 계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이라는 것에 정말 관심이 많았다. 나도 모르겠는 내 마음이 너무 버겁고 궁금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그때는 대체 내 고민이 뭔지도 모르고 고민을 했다.

대학원 마치고 풀타임 일을 하면서 돈도 나오고 일도 빼주는 교육 시간이 있어서 MBTI를 배우게 되었다. 융 심리학에 낚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만난 융심리학을 통해 그렇게나 궁금하던 '마음'에 관한 지도 하나를 보았다. 이때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고 혼자서 융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에니어그램을 만났는데 이젠 더 빠져나올 수 없는 형국.

마음에 대한 관심은 다름 아닌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었다. 다른 말로 나에 대해 진실하게 살고픈 마음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신앙하는 대로 살고 싶은 소원이었다. 가장 표면적으로는 지겹도록 여기 저기서 고백했던 '관계'에 대한 콤플렉스 같을 것으로 드러나곤 했다. 융 공부는 그냥 공부라 아니라 삶과 마음과 영혼을 바꾸는 수행 같은 것이었다.

몇 년을 독학으로 읽고 또 읽으며 배웠다. 그 끝에서 최근 몇 년은 학위과정 부럽지 않은 강의를 듣게 되었으니 나는 자꾸 열리는 이 자동문에 뭐라 이름을 붙여야 할 지 모르겠다.

 

속고 속이는 게 세상사, 사람관계라지만 내가 주구장창 속이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내 바람은 그 누구보다 나를 속이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 가장 정직한 내 모습을 가지고 나가고 싶은 갈망이다. 우리 나라 첫 번째 융 분석가라 불리는 이부영 선생님께 배우셨다는, 은퇴한 상담심리 전문가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또 하나의 문이 열렸다. 이부영 선생님의  책 <자기와 자기실현>, <아니마와 아니무스>, <그림자>를 새까맣게 메모를 달며, 밑줄을 긋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전율하며 읽었었다. 그분의 초기 제자라는데... 이 강좌 신청할 때만 해도 전혀 모르던 정보였다. 융선생님 나를 낚아서 엮어서 질기도록 끌고 다니신다.


이 문을 닫을 때 나는 다시 어디로 가 있을까?
문만 열면 다른 세상으로 가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내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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