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묵은지 아끼지 않고 팍팍 써서 김치찜을 만들었다.
얼치기 주부 15년 만에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묵은지는 보물이라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만나도 고등어를 만나도 밀가루를 만나도 밥을 만나도 요리가 되니 말이다.
묵은지는 늘 시어머니께서 조달해주셨었다.
집에서 손대접이 많았던 시절에는 엄청 신경 써주시더니
요즘은 도통 묵은지를 풀지 않으셨다.
급기야 김장을 위해서 봉하마을에 절인배추 주문을 하다가 묵은지 판매하는 걸 보고
주문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이 무슨 장난의 운명이란 말인가.
주문하자마다 시누이가 묵은지 한 통을 싸주고,
올케 또한 '언니, 우리 묵은지 많아요. 나눠드릴게요.'란다.
정말 부자가 된 기분으로 오늘 돼지갈비 두 근에 김치 세 포기 넣고 김치찜 했다.


 

 

많은 양이다.
김치찜을 앉히면서 사람 사는 게 가까운 곳에 마음까지 가까운 벗이 살아야 하는데.
라는 생각했다.
나 오늘 김치찌 많이 한다. 저녁 준비 하지말고 식구들 다 우리집으로 퇴근해.
라고 전화할 수 있는 마음 편한 이웃을 두고 사는 게 사람 사는 것인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페북을 열었는데 명일동 K언니가 밥하기 담벼락에 싫다며 칭얼거리셨네. 
에헤, 이건데! 말이야.
그럼 쓰레빠 끌고 우리집으로 와.
이런 게 되어야 하는데.

 

 

여하튼 김치찜은 죽여주게 맛있게 되었고,
부자간에 마주앉아 김치 두 포기를 뚝딱 해치우더니 '시네마 불금'을 위해서
부랴부랴 나갔다.


 


살코기 좋아하는 우리 배트매은 이렇게 김치에 고기 한 점 씩 싸서 입에 넣어주면
오물오물 잘도 받아 (처)먹으시고.
이따 늦은 밤에 피아노 연습으로 진을 뺀 우리 반지성주의자 딸이 와서 두 공기 쯤
싹싹 비워줄 기세다.
어찌됐든 아주 그냥 뿌듯하다.

 

 

된장이 떨어진 차에 봉하장터에서 주문하려 했더니 품절이다.
최근에 나를 감동시킨 감옥 다녀오신 정봉주님이 시작한 봉봉협동조합에다 주문을 했다.
맛있는 된장도 묵은지 만큼이나 완소 아이템이다.
재래식 된장 떨어져서 마트에서 파는 것만 넣고 찌개를 끓이니 아주 그냥 달착지근해가지고 맛대가리가 없었다.


맛있게 먹고 사는 일이 기본이 되어 있어야 되더라.
묵은지에 된장에 기본 만땅 채우니 좋네.
이래저래 음식적 저력을 노무현 대통령님 덕으로 꽉꽉 채웠다.
으이그, 야속하신 분. 
(결론은 버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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