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의 장례식. 짧고도 긴 장례식의 마지막 시간인 하관예배는 추웠다. 날은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교우 몇 분이 장지로 찾아오셔서 찬바람 속 하관예배에 함께 하셨다. C집사님께서 전복죽을 가져오셨다. 경황 중에 어떻게 전해져 내 가방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엄마를 묻고 돌아온 저녁, 텅 빈 몸에 들어간 따스함이었다. 어떻게 얼마나 먹었던가 기억이 나진 않는다. 다만 따뜻했다. 마지막 하관예배 때 차디찬 바람이 뼛속까지 스미는 느낌이라 덜덜 떨며 서 있었는데. 그 순간과 대비되어 따스한 기억으로 흐릿하게 남아 있다.

 

바쁜 사모님 조금 도와줘서 하나님께 칭찬 좀 받으려 한다며 몇 번 김치를 나눠주곤 하셨었다. 엄마 장례식 이후로는 거의 매주일 김치며 밑반찬을 주셨다. 눈물을 달고 사는 시절이기도 했지만, 반찬통 하나하나 꺼내 풀어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반찬 보따리는 엄마(친정 엄마) 상징의 원형 같은 것 아닌가. 집사님 반찬 우리 엄마 반찬, 비슷한 구석 하나 없지만, 딱 봐도 그냥 엄마 반찬이었다. 한참을 넙죽넙죽 얻어먹다 날씨도 더워지고 죄송해서, 어렵사리 그만 주십사고 말씀드렸을 때 그러겠노라 하시며 "이제 친정 엄마 놀이 그만 할게요.^^" 하셨다. 

 

친정 엄마 놀이. 아, 친정 엄마 놀이! 김치며 멸치 볶음, 전복죽과 약식이 친정 엄마 떠나 구멍 숭숭 뚫린 마음을 메워주는 엄마표 반찬이었다! 친정 엄마표 밑반찬 보따리는 주렁주렁 달린 내 결핍 보따리 중 하나이다. 엄마에게 김장김치, 양념 같은 것을 받아 먹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평생 착취해온 엄마를 아직도 착취할 수 있는 딸들이 얄밉고 질투가 났다. 내 손은 친정에서 올 때가 아니라 친정 갈 때 먹을 것 보따리로 무거웠으니. 아기가 된 엄마는 내가 만든 꽃게찜을 그렇게 좋아했다. 수년 전 엄마 몸이 처음 무너졌을 때, 질리도록 꽃게찜을 해다 나르곤 했다. 당시 꽃게찜을 싸들고 다니며 마음의 입이 닷발은 나와있던 것 같다. 우리도 자주 못 먹는 비싼 꽃게 사는 게 부담돼서가 아니라, 음식 만드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전 같으면 "야야, 비싼 걸 왜 하냐?" "우리 신실이 몸도 약헌디, 하지 마라." 했을 엄마가 "꽃게찜 안 혀 왔어?" 하면 마음이 턱 무너졌다. 아기같은 엄마가 귀엽기도 하지만, 어쩐지 이렇게 엄마의 존재가 작아지고 작아지다 없어져 버릴까봐, 엄마가 죽을까봐...... 아직은 엄마한테 더 받으며 살고 싶은데 주는 존재로 사는 내가 서러웠다. 늙은 엄마를 가진 내가 가여웠다.

  

20여 년 전, 결혼 초만 해도 밥 하다 전화해서 엄마 레시피 챤스를 쓸 수 있었다. "엄마, 오징어 도라지 무침 어떻게 해?" 하면 노하우를 전수해주었다. 채윤이 현승이는 외할머니가 손수 구워 정성으로 발라주시던 굴비를 흐릿한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 엄마의 손맛이 그리움이 된 것은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요리에서 손을 뗀 것은 물론, 뇌세포가 느슨해지면서 엄마만의 요리 레시피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더 안타까웠다. "엄마, 엄마가 해주던 곱창전골 먹고 싶은데. 육수 어떻게 내고, 곱창 손질 어떻게 했는지 가르쳐줘" "생각이 나남? 다 잊어 부렀지. 다 잊어부렀어." 벌써부터 부모의 죽음을 짊어지고 사는 나는, 엄마 반찬의 상실로 엄마의 죽음을 상상했다. 

 

그래서 유난히 친정 엄마표 김치 보따리, 스치로폴 박스에 담긴 김치 같은 것을 보면 서글퍼지곤 한다. 집사님께서 내 마음에 들어갔다 나가셨나? 매주 반찬을 나눠주시는 것이 그저 잘 챙겨 먹으라는 뜻인 줄 알았다. 그런 마음이셨을 것이다. 헌데 '친정 엄마 놀이'라는 언표가 어쩐지 내 결핍의 보따리를 알고 하시는 말씀 같이 느껴져 먹먹해졌다. 어느 날은 마지막 남은 겨울 김치 한 포기로 만드셨다며 김치전을 부쳐주셨다. '이제 김장 한 포기를 끝으로 겨울을 완전히 보냈습니다. 사모님도 마음의 겨울을 털고 일어나시길 기도합니다.' 하셨다. 딱 두 달이 되는 날이었고, 자꾸 날짜를 세며 보내는 나는 의미를 담아 더 힘을 내야지, 하던 차였다. 마지막 겨울 김치라니, 이 전을 먹으면 어쩐지 그리 될 것만 같았다. 누군가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라고 말했다면 "마음대로 털어지면 나도 털고 싶다"라고 불끈 슬픔에 젖은 화가 올라왔을 것이다. 하지만 따스하게만 다가왔다. 봄처럼.

 

슬픔에 싸인 사람에게 다가가 위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설픈 말을 하느니 가만히 손잡아 주는 것이 좋다. 아니 손을 잡아주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슬픔,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어쩔 줄 모르는가. 장례식 직후, 흑백 세상을 살던 나는 만나는 누구라도 붙들고 엄마 얘길 하고 싶었다. 누구라도 그저 엄마에 대해 물어봐 줬으면 싶었다. 엄마의 마지막 날이 어떠했는지,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엄마가 싫었던 때, 엄마가 좋았던 때...... 무엇이든 물어봐주면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었다. 그것이 어렵다면 제대로 치루지도 못한 장례식 절차라도 물어봐 줬으면. 누구도 그것을 물어주지 않았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로 할 수 없어서였음을 안다. 우리 모두 죽음 앞에서 어쩔 줄 모른다. 죽음은 이렇게 가까이 있고, 이렇게나 명징한 인간의 운명인데 입에 올리지 못하고 일단 피하고 보려 한다. 나 역시 슬픔에 잠긴 사람 앞에서 그랬었다. 

 

말대신 건네는 음식이 말보다 크게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넙죽넙죽 받으며 민망함도 있었지만 "그래, 난 지금 돌봄이 필요한 상태야" 인정할 수도 있게 되었다. 실은 얼마나 돌봄을 원했던가. 의연하게 일상을 살았지만 누군가 나를 아기처럼 안아주며 돌봐주길 기다리고 바랐던 것 같다. 지방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간 적이 있다. 점심 메뉴를 고심하던 친구가 "따뜻한 국물이 있는 밥을 생각해 봤는데......"라고 말했다. 블로그에 연재되는 애도글을 꼼꼼히 읽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이 한 마디가 그저 따뜻한 국물이었다. 엄마를 잃고 애도하는 것은 퇴행의 시간을 지나는 것인지 모른다. "엄마, 엄마" 어린아이처럼 부르게 된다. 어린아이에게 가닿는 것은 말이 아니라, 관념이 아니라 원초적인 것. 알사탕 하나, 과자 한 봉지이다. 

 

몸으로 경험한 것만 남는다. 아니 몸의 기억이 가장 오래 간다. 엄마의 음식이 미치도록 그리운 것은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가 학자였다면, 내가 엄마의 지성을 사랑했다면, 엄마가 남긴 글이 있고 관념이 있을 텐데. 내가 사랑한 것은 엄마의 몸. 그것이 사라지자 엄마가 해준 음식은 영영 다시는 먹지 못할 것이 되었다. 영영. 그러고 보면 정말 마음 깊이 따스하게 남은 것은 말이 아니라 '먹을 것'이다. 이 즈음 감자가 쏟아져 나오는 철이 되면 나는 감자 샐러드를 잔뜩 만들곤 한다. 햄 같은 것 넣지 않고 오이와 양파를 넣어서. 오이를 넓고 길쭉하게 썰어서 소금물에 꼭 짜서 넣으면 아삭하고 맛이 있다. 어쩌다 이것을 연례 음식으로 하게 되었지? 생각해보면 명일동 K 권사님의 감자 샐러드 코스프레다. 명일동에서 한 아파트에 사시던 권사님께서 가끔 우리 집 현관에 음식 담긴 비닐봉지를 걸어두고 가셨다. 감자 샐러드나 빨갛게 양념한 돼지고기. 맛도 있었지만 따스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그리움 때문에 해마다 이 즈음이면 그때 주셨던 맛을 더듬어 비슷한 모양의 감자 샐러드를 만들게 된 것 같다.

 

엄마 돌아가시고 나는 애도하는 사람이었다. 애도하는 이를 어떻게 도울까 하는 생각이 나는 걸 보니 한 발 빠져나왔나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용기있게 다가가 그가 잃은 사람에 대해 묻고, 얘기 나눌 수 있을까. 덥석덥석 음식을 만들어 아무것 바라지 않고 그저 안기고 돌아올 수 있을까. 말보다 몸으로 사랑하여 진정한 것을 남기는 인생 후반을 살고 싶다. 동생은 엄마가 만들어 주던 양파 볶음밥을 아이들에게 만들어 줬다고 한다. 엄마의 손으로, 몸으로 남긴 흔적이 아픈 그리움이지만 사랑의 기억이기도 하다. 다시 먹지 못할 엄마의 곱창전골과 영양부추 샐러드와 아삭 시원한 김치는 그리움이며 사랑이다.

 

C집사님의 노란색 2단 반찬통은 평생을 두고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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