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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모음/음악치료의 세계

음악치료란 무엇인가

larinari 2013. 3. 6. 11:05

<Innternational Piano Korea> - 3월호 '음악치료의세계1'

 

음악치료를 공부하던 십 수 년 전에 이런 식의 질문을 많이 들었다. ‘음악치료가 뭐예요? 음치 클리닉 같은 거요?’ 국내에 음악치료가 대학원 과정으로 처음 생겼던 때니까 용어 자체가 생소한 시절이었다. 어느덧 ‘음악치료사’가 드물긴 하지만 낯설지는 않은 직업이 된 것 같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직업이 음악치료사라고 소개를 하면 대번에 ‘오, 좋은 일 하시네요. 저도 치료 좀 해주세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제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 이내 따라오는 몇 가지 질문이 있다. ‘음악으로 어떻게 치료해요? 음악을 듣다보면 치료가 되나요? 노래를 막 불러주면 치료가 돼요?’ 음악치료가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십수 년 전에 받은 ‘예? 음악치료요? 그게 뭐예요?’ 하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언뜻 뭔지는 알 것도 같은데 막상 그려지는 그림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 질문에 한두 마디로 답을 하기가 어려워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악과 치료, 이질적인 듯 보이는 두 단어의 조합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바로 이것이 음악치료를 한 마디로 설명하는 걸 어렵게 하는 암호 노릇도 하는 것 같다. 예술로서의 음악이 주관성과 개인성 창조성을 특징으로 한다면, 치료라는 것은 과학적인 측면으로 객관성, 보편성 등을 전제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율배반적 특징을 가진 두 단어의 조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주변에 널린 것이 음악이다. 아침을 깨우는 고통스런 멜로디, 휴대폰의 알람이 음악이고, 눈 뜨자마자 켠 텔레비전의 아침 뉴스는 익숙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시작한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는데 집 앞 골목에서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자동차 소리가 시끄럽다고 치자. 수거를 마치고 후진을 하며 내는 소리는 ‘띠리리리리 리리리 리...’ 다름 아닌 엘리제를 위하여’ 이다.(베토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음악이 후대에 와서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 아셨을꼬?) 지하철 안에서 꾸벅거리며 졸다가도 환승역에 다다르면 안내 멘트 전에 나오는 짧은 음악에 몸이 먼저 반응하여 튀어나가게 되곤 한다.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서는 내가 주의를 기울였거나 말았거나 항상 들리는 음악 소리, 친구에게 전화를 걸면 친구의 목소리보다 컬러링 음악이 먼저 반긴다. 탈수까지 다 마쳤다는 세탁기가 보내는 신호, 취사가 완료되어 임무수행을 했으니 이제 보온으로 전환하겠다는 전기밥솥의 메시지도 짧은 멜로디이다. 주변에 널리고 널려 제일 흔한 잡초가 사람을 치료하는 치료제가 된다는 말처럼 흔하디흔한 음악으로 치료를 한다는 것이 신빙성 있게 들리질 않는다. 이쯤에서 ‘한국음악치료학회’에서는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들어보자.

 

‘음악치료란, 음악활동을 체계적으로 사용하여 사람의 신체와 정신기능을 향상시켜 개인의 삶의 질을 추구하고, 보다 나은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음악의 전문분야이다.’

 

뭐래?(하는 독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얘기인 즉슨 이렇다. 일단 음악치료는 ‘음악활동’을 도구로 사용하기에 음악치료다. ‘음악활동’ 은 singing, playing, listening, reading, moving, creating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편안한 음악을 틀어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때로 음악을 듣거나, 들으면서 몸을 움직이거나, 악보(또는 악보를 대체하는 단순화된 기호들)를 읽거나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만드는 활동들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음악활동은 뒤에 나오는 ‘체계적인 사용’에 지배를 받는다. (음악이 가진 힘이 있지만) 음악자체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치료사의 방향성이 있어야 치료적 음악활동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음악치료사가 하는 주된 일은 바로 이것이다. 음악활동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사용’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음악을 만들거나 만든 음악으로 치료활동을 다자인 한다. 그리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음악을 들려주고 함께 움직이고 창작활동을 하면서 관.찰.하.는 것이다. 이 지점이 음악과 과학이 만나는 지점이다. 예술가이며 동시에 과학자인 음악치료사의 정체성도 이 지점에서 또렷해진다.

 

그러면 누구를 치료하는 것인가? 알려진 바와 같이 ‘건강’은 몸과 정신의 무탈함을 말한다. ‘당신은 건강한가?’라는 질문에 몸이든 정신이든 선뜻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선을 그어서 이쪽 저쪽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때문에 ‘사람의 신체와 정신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을 도모하는 음악치료는 그 대상이 디테일하게 구분한 음악의 장르만큼이나 다양하다. 손가락 하나 자의로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으로부터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까지, 태중에 있는 아기로부터 임종을 눈앞에 둔 호스피스 환자까지,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가진 아이와 어른 노인, 삶의 무게와 속도에 치여 내상을 입고 일시적으로 일상에 부적응하고 있는 아동, 청소년, 어른들까지.... 음악치료의 대상이 다양한 만큼 음악치료사들의 취향과 성격과 관심분야가 제각각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공부하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스스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대상을 찾아내는 치료사들의 각기 다른 선택이 흥미롭다 못해 신비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처럼 사는 이는 나 밖에 없다’고 어느 시인이 노래한다. 하나 뿐인 ‘나’로서의 음악치료사와 하나 뿐인 ‘나’, 클라이언트가 음악을 통해 이어지는 신비로운 만남이 음악치료의 숨겨진 매력이다.

 

음악치료는 ‘사람, 변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 변화란 막연한 기대와 당위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할 때는 발견되지 않는 것일 터. 변화를 믿고 추구할 뿐 아니라 변화를 위해서 면밀하게 클라이언트를 관찰하고, 음악을 계획하고, 몸을 던져 음악을 펼쳐내는 치료사의 눈에 발견되는 변화다. 다시 한 번 음악가이며 과학자인 음악치료사의 이중적 정체성이 빛을 발해야 하는 시점이다.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행동의 변화’가 음악치료의 정의에 있어 하이라이트요라 생각한다. ‘보다 나은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그저 ‘음악활동’을 했을 뿐 ‘치료’라 할 수 없다. 간단히 정리하면, 음악치료는 ‘음악’을 가지고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음악의 전문분야이다.

 

치료의 전문분야로 자리 잡은 음악치료의 역사는 반세기가 조금 넘는다. 그러나 음악이 치료의 도구로 사용된 역사는 원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성서에는 하프로 악신에 사로잡힌 사울 왕을 치료한 목동 다윗의 이야기가 나온다. 비공식적인 긴 역사를 가진 음악치료는 많은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있다. 매 달 하나 씩 음악치료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려고 한다. 음악을 사랑하고, 더불어 사람에 대한 관심의 끈이 놓아지지 않는 독자라면 귀를 기울이셔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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