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장년 교구를 맡은 남편이 첫 행사인 구역장 수련회 준비로 분주했다. "이번엔 왠지 그러고 싶다"면서 수련회의 모든 것을 혼자 준비했다. 몇 분 구역장 권찰들께 부탁하면 기꺼이 도와주시겠지만 왠.지. 이번엔 혼자 준비하고 싶다는 말에 '초대'라는 말을 떠올렸다. 아, 이 사람이 새로 만난 구역장 권찰님들을 초대하고 싶은 거로구나! 수련회 프로그램, 말씀, 찬양, 핸드북 제작은 물론 간식까지 그야말로 주님의 손과 발과 입과 머리되어 올인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식구들이 다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시간, 갑자기 평소 내는 소리보다 두 배는 되는 데시벨로 '나느은, 7교구다!!!' 외쳤다. 아이들과 내가 깜놀하고 빵 터지고 말았다. "아빠 왜 저래?" "놔둬.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는 거야."

 

커피도구 가지고 다니면서 출장 드립하는 것 좋아하지만,  원칙이 있다. '하고 싶을 때, 주고 싶은 사람'에게 이다. (아, 커피 관련 문장의 주어는 항상 남편 아니고 나) 남편의 진정성 있는 동분서주가 예쁘게 느껴져서 간식은 내가 맡아주겠다 했다. 게다가 커피 출드까지 하겠노라 했다. 이런 일은 시켜도, 부탁해도 해주지 않을 것을 뻔히 알기에 말도 못 꺼냈을 텐데 자발적으로 해주겠다 하니 7교구 목사님, 좋아서 콧구멍이 벌렁벌렁했다. 말은 안 했지만, 그분들을 '초대'하고픈 남편 마음의 주파수에 맞춰 비록 과자 사탕이지만 고심하고 고민하여 장을 봤다. 당일엔 내 시간 계산법으론 정말 이르고 이른 시간에 출근했다. 미리 간식 세팅 다 하고 커피 드립 시간을 구역장님들이 도착하실 시간에 딱 맞추려는 야심 찬 작전. 계단을 내려오시면서부터 커피 향으로 환대해야겠다는 계획이었으나.... 실패다! 혼자 모든 걸 준비하는 남편과 진짜 일찍 오신 몇 분과 일단 테이블 놓고 자리 세팅하는 것에 투입.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시간은 다 됐고, 정수기 물은 떨어졌고, 마침 내가 가져간 무선 커피포터는 물이 자꾸 새서 덥석 쓸 수가 없고.... 무슨 정신으로 모닝커피를 내렸는지 모르겠다.(에프터눈 커피는 실패하지 안케따!!)  애초 슬픈 예감이 있었던 건 아닌데.... 정신없이 티타임 마치고 찬양 시작하여 의자에 앉았더니 앞에선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한다. 내 마음에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하는 노래가 울린다. 프로그램 시작하면 나는 빠져나오기로 했는데 찬양이라도 따라부르며 나간 정신을 붙들어 와야지 싶어 앉아 있었다.

 

설교가 시작되었는데 본문이 로마서 16장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너희는 뵈뵈, 브리스가와 아굴라, 에배네도,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암블리아, 우르바노, 스다구, 아벨레, 아리스도불로의 권속, 헤로디온, 나깃수의 가족,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버시, 루포와 그의 어머니, 아순그리도블레곤허메바드로바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 빌롤로고율리아와 또 네레오그의 자매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너희가 거룩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아는 이름이라곤 브리스가와 아굴라 뿐이네! 설교의 키워드는 '일일이 이름 부르며 인사하는 바울'이었다. 로마서는 신학논문이라며, 깊이 연구하게 되는 성경이라고 했다. (논문이라니, 논쟁꺼리가 많다니 이 얼마나 7교구 목사님 JP님의 스타일인가!) 그런 의미로 이 16장은 자주 지나쳤단다. 논문과 논문 사이 끼어있는 나열된 이름들, 그들에게 그냥 문안 인사를 전하라니. 연구나 묵상의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헌데 이번에 16장이 마음에 들어왔다며, 한 사람 한 사람 들여다보며 묵상해보니 구역공동체를 이루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며 설교 설교 설교.... 하였다.

 

'왠지 이번엔 혼자 다 준비하고 싶다.' '나는 7교구다!' 했던 그의 속내를 들여다본 것 같다. 대형교회 부목사로 목회한다는 것. 650여 명의 이름은 알지언정 사람과 사람으로의 스킨십은 없는 관계로 목회한다는 것. '정서적, 영적 스킨십 없는 목회'라는 것이 과연 성립할 수는 있는 말일까? 누군가의 신앙적, 영적 안내자가 되고 싶어 목사가 되었는데, 누군가의 '우리 목사님'이고 싶을 텐데.... 구조라는 넘사벽이 있다. 그 쓸쓸한 딜레마를 뛰어넘겠다는 의지처럼 들렸다. 비록 얼굴을 마주할 순 없지만, 이름으로만 나열된 사람들을 하나 하나 찾아보고 묵상하듯 그저 이름만으로 대하진 않겠다는 결심으로 들렸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 목사님'이 아니라 '7교구 목사님'일 뿐인 자신을 로마서 16장에 나열된 이름에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는, 이 조건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먼저였을 것이다. 그러니 누가 알아주든 말든 혼자 준비하는 수련회에 '초대'의 마음을 담았겠구나 싶었다. 그런 속내가 읽히니 울컥했다. 

 

 성경에 관한한 전문가가 되겠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자주 지적탐구에서 확인하려는 남편이 손발을 움직이는 것에 그저 시간을 들이는 것, 로마서의 그 많은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안부 전해줘'에 마음을 꽂은 것은! 정신실이 웃기는 걸 포기하고 지루한 것에 올인하겠다는 것과 같은 엄청난 방향의 선회이다. 본인은 자신의 이 변화를 알까?  목회자라서가 아니라, 목사라서가 아니라, 남다른 기준을 가진 특별한 교회의 전임 목사라서가 아니라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꽃피우려는 한 사람으로서, 나답게 살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무르익어가는 남편을 지켜보는 것이 좋다. 나의 영적여정에 힘이 된다. 7교구, 7교구, 세븐, 세븐, 세븐...... 헤븐? 하다가 '하늘가족 7교구'라는 이름을 지었단다. 지나가던 사람이 보면 흔하디흔하여 식상한 말 '하늘가족'엔 하잘것없는, 이름으로만 아는, 때론 이름도 모르는 어느 목사의 가슴 뛰는 묵상이 담겨 있다. 한 송이 이름없는 들꽃같은 어느 대형교회 전임목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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