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에 한 노래 있어 23

 


주일 예배 순서에 참회의 기도 시간이 있다. 솔직히 맹숭맹숭한 마음으로 눈만 감고 있는 날이 많다. 말로는 수백 수천 번 인정하고 고백했지만 실은 좀 무덤덤한 정체성이 죄인인 나이다. 익숙해서 무감각해진 것일까. 아니면 무감각 그 자체가 죄인지 모를 일이다. 투명하게 나의 를 느끼자면 어디 한 순간이라도 견딜 수 있겠는가.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옵기는 나의 몸과 나의 맘을 깨끗하게 하옵소서

(찬송가 2741)

 

전도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말 중 하나가 죄인이라는 얘길 들었다. 비신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불편해 하는 말이다. 뭘 그렇게 대단한 잘못을 했다고 죄인, 죄인 하느냐는 것. 비신자만 그럴까. 우리도 불편하다. ‘내가 행한 것이 죄뿐이라!’ (하도 들어서)머리로는 인정, 가슴으로는? 글쎄다. 나름대로 큐티 하고, 말씀에 귀 기울이며, 기도도 하고, 미운 사람 품으려 애쓰면 살고 있는데 행한 모든 것이 죄라니 좀 심하지 않은가.

맹숭맹숭하던 주일 참회의 기도시간이 뜨거워지는 때가 있다. 남편과 관계가 틀어져 말을 안 하고 있거나, 예배 가기 직전 아이들을 윽박지르던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을 때이다. 뒤틀려 무거운 마음으로 예배에 가 앉으면 오히려 일단은 심사가 더 뒤틀리는 것 같다. 누가 됐든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죄다 고발하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솔직히 그의 죄가 밝혀지는 순간 나의 치부까지 드러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다른 일로 화가 났던 걸 괜히 아이들에게 쏟아냈다는 자각이 생기면 비로소 뒤틀린 것들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만만한 아이들, 착한 남편에게 내 감정의 배설물을 쏟아놓고 말았구나! 그럴 때 꽉 쥔 주먹이 풀리고 가슴이 저릿하며 참회의 기도가 절로 나온다.

 

내 어둔 눈 밝히시니 참 기쁘고 고마우나 그보다 더 원하오니 정결한 맘 주옵소서(2)

정결한 맘 그 속에서 신령한 빛 비치오니 이러한 맘 나 얻으며 눈까지도 밝으리라(3)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냐는 태도에서 한 발만 이탈하면 작은 빛이 새어드는 것 같다. 죄가 보이기 시작한다. 빛 하나 들어올 틈 없이 온통 나의 의와 옳음으로 가득한 캄캄한 마음의 숲에 말이다. 그 작은 빛 한 줄기로 여기저기 내 마음을 조망한다. 그 신령한 빛이 닿는 지점마다 죄의 흔적으로 처참할 줄 알았건만. , 빛이 닿는 지점마다 즉시로 말끔해진다. 나 행한 것 죄 뿐인데! 죄로 가득했던 마음이라 차마 내보이기 싫어 꼭꼭 닫고 있었는데, 다 어디로 갔지? 눈물로 드린 참회의 기도는 알 수 없는 말끔함으로 끝이 난다. 죄의 고백과 끝은 용서로 주시는 정결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스캇 펙의 <주와 함께 가는 여행>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필리핀의 한 마을에 어린 소녀가 예수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소문은 마닐라의 추기경에게도 들려졌다. 추기경은 한 신부를 보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아보도록 조치했다. 세 번의 조사에서 그 신부는 도저히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다고 느낀 나머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사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고 실망한 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다. 네가 다음번에 예수님과 대화할 때 나의 마지막 고해성사가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보도록 해라.” 어린 소녀는 그 말에 동의했다. 한 주 뒤 그녀는 다시 소환되었고, 신부는 곧바로 물었다. “그래, 사랑하는 딸아, 지난주에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느냐?” “, 신부님하고 어린 소녀는 대답했다. “그래, 네가 지난주에 예수님과 대화할 때, 나의 마지막 고해성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여쭈어 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 신부님 저는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래.”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신부는 따져 물었다. “나의 마지막 고해성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예수님께 물었을 때, 주님이 뭐라고 대답하시던?” 어린 소녀는 즉시 대답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잊어버렸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늘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우리 마음에 순도 100% 정결함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시시각각 찾아드는 자기중심성의 악함을 다 버릴 수 있겠는가. 내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 마음의 정결함이다. 지고의 마음수련 같은 것들로도 가질 수 없는 것이 깨끗한 마음이다. 회개하는 자의 죄를 잊어버리시는 분, 도말해주시는 분의 신비하도록 놀라운 사랑 아니면 안 된다. 그저 우리는 무너지는 자존심을 부여안고 죄인 된 나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할 뿐이다. 인정하고 회개할 뿐이다. 그리고 얻는 것은 용서와 정결함, 무엇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신비의 체험이다.

 

<QTzine> 11월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