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사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렇게 기다리던 독립이요, 이사이건만 홀가분한 마음보다 마음 한 켠 묵직한 것이 참 이상하다.
그간 참 많은 마음 고생, 몸 고생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사의 눈물'이 시시때때로 시야를 흐린다.
채윤이가 7개월이 되던 때부터 일곱 살이 되고, 이제 여덟 살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아이들 양육을 도와주신 부모님. 특히 아버님.
'내가 다시 선택하라면 부모님께 애들 안 맡긴다'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지만...
두 아이가 이렇게 자라는데 수훈상을 드리자면 역시 부모님, 특히 아버님이시다.
두 애들이 유아기를 보내고 부모로서 육체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반의 책임은 아버님이 다 져 주셨다.
꼭 애들 문제가 아이어도 암튼 결혼하고 사당동에서 살던 20여개월을 제외하고는 거의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고 봐야하는데...
어머니 말씀처럼 '이제 더 멀리 살 일' 남았다.
그런 저런 일들을 돌아보면서 운전하다가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감사'라는 단어 외에는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어제 아마도 어머니랑 살면서 마지막이 될 김치를 했다.
올 해는 절대 김장 하시겠다고 하셨던 어머니 결국 어제까지 세 번의 김장을 하셨다.
'엄마! 할머니가 김장하게 빨리 건너오래' 하는 채윤이 말에 이제 습관이 된 '김치하기'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없었던 것 아니지만
기쁘게 건너 서 백김치를 담궜다.(이제 낼 모레면 제대니까!ㅎㅎㅎㅎ)
조금 전에 어머님가 건너 오셔서 이런 저런 얘기하시다가.
7년이 되도록 너랑 나랑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참 잘 참고 살았다.
너도 힘든 것이 있었을 거고, 나도 그렇지만 참 지혜롭게 잘 참고 살았다.
하셨다.
7년 동안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며느리랑 살았다는 것이 어머니께는 큰 자랑이다.
가끔 어머님 친구분들 만나면 '같이 사는 며느리가 그렇게 착하다고 어머니 칭찬이 마르지 않는다' 하신다.
같이 사는 며느리와 잘 지내는 건, 같이 사는 시어머니와 잘 지내는 며느리에게 자부심이 되는 것 이상인 것
같다.
함께 살면서 눈물로 보낸 밤이 적지 않은데...
결국 어머니의 연약한 점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게 그 때 그 때 말씀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찬양하면서 상처받은 마음으로 다시 어머니 사랑하기 위해 일어나고
또 일어나곤 했었다.
이사를 하면서 그 세월의 감사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하며 지낸다.
감사의 편지와 함께 기억에 남을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2006/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