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와 기고 글의 주제가 '희망'이 되었다. 타고난 까칠함에 '좋게 보는 눈'이 없는데.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불편한 것을 먼저 감지하는 편이고.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많고. 불편한 것은 결국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 재밌는 것 좋아하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허튼 희망을 말하고 부추기는 자기 계발식 심리학이니 긍정 신학을 혐오하는 편인데. 어쩌다 희망에 대해 강의하고 글을 하나 쓰고 있기도 하다. 그간 공부한 것을 정리한 그릇에 나의 이야기를 담아보니, 결국 희망은 발굴해내야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무엇보다 한 사람의 얼굴에서 찾을 찾아지는 것이더라. 코로나 19로, 망할 부동산 패닉으로, 현실은 막막하다. 슬픔과 그리움이 자주 몸을 훑고 지나가 울지 않는 날이 없다. 그래도 어쩐지 내게 희망이 있는 것 같다. 희망에 대해 자꾸 말하다 보니 착각하는 것인가? 아니다. 사람들의 얼굴 때문이다. 글쓰기, 내적 여정으로 만나는 한 사람의 얼굴이 내게 살아갈 의미를 준다. 고통 속에서, 치명적 상처 속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기 위해 쓰고 말하고 찾는 사람들의 얼굴이 희망이다. 많은 것의 부족함 속에서 아프게 성장하고 있는 채윤이 현승이가, 무의미한 '소명의 숲'에서 의미를 찾아 몸부림치는 남편이, 자기도 아프면서 더 아픈 이에게 어깨를 내주고 싶다는 동료가 내게 희망을 준다. 결국 한 사람의 얼굴이다. 연구소 후원자들에게 편지 보낼 때마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많이 쓴다. 편지글 한 문장, 같이 담아 보낼 사소한 것 하나도 고민과 고민 끝에 결정한다. 조용하게 요란을 떤다. 연구원 H가 내 마음을 딱 알고 나보다 더 머리 터지게 고민을 하더니 드립백 커피와 쿠키를 생각해냈다. 쿠키를? "커피 한 잔과 쿠키 먹는 그 순간에 멈춰 잠시 연결을 떠올리라고" 그러면서 맛있는 커피와 쿠키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 후원자 한 사람도 얼굴이다. 희망 없는 일상의 연속이지만, 매달 말없이 후원금을 보내주는 삼십여 명의 얼굴이 있지 않은가. 제대로 후원 모금 행사 한 번 한 적 없는데, 기꺼이 연결되어 준 얼굴들. 치명적인 절망도 치명적 희망도 결국 한 사람의 얼굴이다.

연구소 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드립백 하나, 조그만 쿠기 몇 개. 손가락 마비가 오도록 손글씨로 써낸 편지. 굳이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도, 함께 하는 연구원 벗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렇게 했습니다. 후원자님들께 1년에 한두 번 드리는 소식에 어떻게든 사람 냄새를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매달 따박따박 이체되는 후원금 1, 2만 원이 그냥 돈이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후원금 총액이 많은 건 아니지만, 덕분에 상담료도 수강료도 계산 없이 필요한 분께 지원해 드리고 있습니다. 몇만 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연결, 관심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릴 방법이 없어서요. 한 사람의 삶과 형편은 쉽게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니까요.

가장 가까운 날에 볶은 신선한 커피와 동네에서 꽤 맛있는 쿠키를 준비해 행여 깨질까 뾱뾱이 봉투에 담는 저희 손이 설렘으로 떨렸답니다. 오버다, 싶은 감정과 에너지는 오직 조용히 이체로 말씀하시는 후원자님들에 대한 감사 때문입니다. 감사 그 이상의 마음으로 한 분 한 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카드 받으시고 인증샷과 메시지 보내주신 것 모았습니다. 부부가 각각 후원을 하셔서 한 집에 두 봉투가 가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먼저 후원하셨다고 말씀드렸는데 굳이 따로 작정하셨거든요.

후원자든 내담자든 상담하는 저희든 알고 보면 모두 고립의 두려움 속에서 외롭습니다. 누구는 후원자로, 어떤 이는 내담자와 수강자로, 저희는 일을 맡은 자로 외로움과 고립에서 빠져나와 연결되려는 몸짓입니다. 무슨 구별이 있을까 싶네요. 그래서 더욱 마음이 따뜻합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 언제든 후원 신청 가능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분들께 연결되어주실 것을 청합니다. 아래 링크로 후원 신청하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 

후원 신청 :  https://bit.ly/2ZDcj9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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