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는 아이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꽂고 강으로 나갑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사도행전 강해는 벌써 몇 회 짼데 아직 1장을 넘어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30여분 설교를 듣고, 나머지 시간은 이런 저럼 음악을 들으며 강변을 걷습니다.
환하던 주변이 조금씩 어스름해지면 가로등이며 성산대교의 불빛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달과 인공위성 하나.


태초에 '빛이 있으라. 궁창이 있으라' 하신 그 말씀으로 만들어졌을 저 달,
그 분이 자신의 형상을 본따서 흙으로 만든 그 사람들이 만든 높고 낮은 건물들과 빛들.
하늘에서 땅에서 참으로 조화롭게도 빛을 발합니다.


귀에 울리는 사도행전 속 이야기들과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은 내 마음에 하늘의 이야기와 일상의 이야기를 오묘하게 공존시킵니다. 하늘의 삶을 살고 싶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은 일상입니다. 정말 내가 진실로 신앙하고 있다면 그 신앙은 하늘이 아니라 일상에서 빛을 발할 것입니다.

갑자기 목사님의 설교가 뚝 끊어집니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립니다.
"엄마,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음식이 몸에 들어가서 있는 데가 어디야? 위지? 나는 위가 작은가봐. 응.... 맞아. 다 먹을 수 있는데 버섯을 못 먹겠어. 알았어. 그러면 최대한 먹어볼께. 엄마 어디쯤이야? 빨리 와"
집을 나서면 차려준 밥을 아직 먹지 못하고 버섯과 양파를 접시에 고스란히 남겨놓고 께작거리고 있을 현승이의 목소리입니다. 이것이 일상입니다. 조용한 묵상으로 침잠하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아이들의 요구, 이런 것들이요.


참 일이 많은 한 주 입니다. 원고 마감이 있고, 늘 하던 강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하기로 한 첫 강의가 있고, 한참 쉬었던 수업도 있었고, 새로운 글쓰기 만남을 여는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시험이 있어서 나름대로 시험에 들어있고.... 큰 부담으로 눌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김치가 떨어져 오이소박이도 좀 담가야겠고 밑반찬으로 피클도 만들어야겠고 당장 아침에 먹을 국은 뭘 끓이지? 모든 걸 진짜 잘해내야겠다는 욕심이 올라올 때 더 불안해집니다.
이게 일상이고 일상은 영원에 닿아있습니다. '내 힘으로 다 잘해서 인정도 받고 이름도 날려야겠다' 하며 눈이 흐려지는 순간 일상의 빛 역시 흐려질 것 같습니다. 일상의 빛이 흐려지면 영원을 담은 일상이 뒤트리면 천상의 빛 또한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작은 성공에 마음 높아지지 않고 작은 실패도 마음을 내팽개치지 않는 오늘을 위해서 사랑이신 그 분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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