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어 하루 먹는 정도는 아니지만 프리렌서의 삶은 '믿음'의 시험대가 되기 충분한 것 같습니다.

학교나 장애 어린이집 등으로 치료를 다니다보니 보통 1년의 계약을 하게 되고 매 3월이 되면 다시 스케쥴을 짜느라

분주해집니다.


치료를 그리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인상이 나쁜 것도 아니고,

그리 불성실한 것도 아닌데 이런 저런 이유로 새로운 자리를 구해야 할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나이에 아직도 치료사 구인 사이트를 들락날락 하고 이력서를 보내고 있자면 좀 한심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이 경력에 어디 이력서 넣어서 꿀리는 데라곤 없으니까 사실 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헌데 해마다 참으로 일이 묘하게 꼬입니다.

첫 판에 내 입맛에 딱 맞는 시간표가 짜지는 것이 아니라 꼭 속을 태웁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두 군데서 오라는 시간이 같거나 이동거리가 너무 멀거나 이렇습니다.

그러다 이번 학기에는 그야말로 이틀 일하고 나머지 날을 다 노는 것으로 3월 초를 시작했습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하지만 심하게 좌절하지는 않고 그저 좀 착찹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이것두 예전 같으면 심하게 좌절을 했을테지만 그나마 경험을 통해서 '믿음'이라 할 수도 없는 눈꼽 만큼의

'믿음'이 생겼나봅니다. 아니 어쩌면 진정한 믿음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러다 막판에 두 군데 학교가 되었습니다.

이 두 군데를 통해서 제게는 하늘 아버지로부터 '메세지'가 온 것이죠.


메세지 하나.


성수동에 있는 초등학교 특수학급에서 치료를 하기로 하고 인사를 갔습니다.

다른 요일에 일할 미술치료 선생님을 만났죠. 초면에 농담도 하고 시간되면 나가서 같이 밥 먹고 가자고 하는 등

사람이 더풀더풀하기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암튼, 이 선생님과 함께 교장 교감님 인사도 하고 그랬는데 작년부터 미술치료를 했다는 이 선생님에 대한 칭찬이 자자한 것입니다.

얘길 들어보니 미술치료 시간이 두 시간인데 어떤 때는 세 시간도 하고, 학교에서 시킨 것도 아닌데 아이들과 만든 작품을

액자를 해서 복도에 걸어놓고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았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알고보니 미술치료 선생님도, 특수학급의 담임 선생님도 모두 크리스챤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내 치료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시간'에 연연하는 치료가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45분 50분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치료하고 있는 건 아니었나?

그저 나는 내 시간을 채우면 된다. 시간을 채웠으니 돈을 받으면 된다. 이런 식이 되어버린 것 같았죠.

음악을 통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만지겠다던 그 열정이 넘치던 음악치료사는 어디로 갔느냐고요?

그렇게 '일(치료)'를 '돈'으로 매치를 시키니 일이 재미없고 힘들 밖에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에 최선을 다해서 내가 즐길 수 있도록 하자.

샬롬찬양대 지휘할 때 시간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연습을 시키고 인내하면 또 파트연습시키듯 하자.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메세지 둘.

 

성수동에서 인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월계동에 있는 초등학교의 특수교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울 시내에서는 방과후 치료가 세션당 가격이 정해져 있는데 이 학교는 시가(?)보다 25%가 낮은 페이였습니다.

착오가 있었나 하고 이력서를 내보기는 했지만 전화 통화를 하다보니 그게 전부였습니다.

특수교사 선생님 말이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좀 어려운 지역에 있다고 했습니다.

해서, 자신이 맡고 있는 아이들이 치료교육의 혜택을 거의 못 받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예산으로 최대한의 치료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력서를 보니 '성가대 지휘도 하시고 유리드믹스도 하시고...저로서는 정말 해주셨으면 좋겠지만 페이가 적어서 안되겠죠?'

'저희가 공부하고 연구한 것이 있는데 최소한의 대우를 받고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하고 설명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영 불편했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음악치료를 돈벌이로만 생각하게 된 것인가? 내 전공으로 자원봉사도 해야할 판에 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단지 페이가 적다고 거절하다니...'

다시 그 선생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선생님! 저 지금도 늦지 않았나요? 그 아이들 만나고 싶네요. 그리고 선생님의 열정을 배우고싶네요'했습니다.



참으로 강렬한 메세지였습니다.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일'이 없으면 '돈'을 못 버니 마음이 불편하고,

'일'을 하면은 쉬고 싶어서 죽겠는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정신 못 차리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악기를 보따리 보따리 들고 여기 저기 치료하러 다니는 것 참 힘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아이들을 만나는 그 시간 만큼은 나 스스로 음악에 빠져 행복하게 헤엄치는 시간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해봅니다.

아~ 단지 음악에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리듬을 기본박으로 깔아놓고 말이죠.

성령님! 도와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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