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출판단지 갈 사람?" 

일이 있는 날이라 나는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빠지면 당연히 무산될 줄 알았는데. 이런, 쿵떡쿵떡 시간 계획을 세우더니 셋이서만 다녀왔다. 어, 이 사람들 봐라! 마키아신실, 조폭신실(JP&SS), 우리 집 실질적 군주인 나를 제쳐두고 나들이를 도모해? 3할 정도 섭섭, 7할은 홀가분이었다. 돌베개 출판사의 책 몇 권과 도서목록을 한 보따리 싸들고 와서는 전에 없던 관심 폭발이다. 엄마 우리 집에 신영복 선생님 책이 있어? 엄마는 뭐뭐 읽었어? 감옥에 몇 년을 계신 줄 알아? 나는 이제 한자 공부를 좀 하려고. 한자를 알아야 책이 잘 읽어지는 것 같아....... 사연인즉슨, 돌베개 출판사의 편집주간이신 S선생님을 만나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꿈과 진로가 1년에 한 번씩 바뀌는 현승이가 최근 아빠에게 '책을 만드는 사람'에 대해 묻고 한참 얘길 나누곤 했다. 그 대화 끝에 아빠가 나름 뜻을 가지고 계획한 나들이였던 모양이다. 

 

'휴먼 라이브러리'라고, 두 아이들 모두 안식년 '꽃친'을 하면서 했던 활동이다. 말 그대로 다양한 어른을 직접 찾아가 만나 대화하면서 배움의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영락없이 휴먼 라이브러리였다. 그 자리에 함께 하진 않았지만 두 아이 모두 새롭게 책에 관심을 가지고, 주신 책을 집에 와 앉은자리에서 읽어버렸다. 채윤이는 그 다음날 바로 중고서점에 가서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사 왔다. 현승이는 대안학교에 가서 한참 느슨한 생활을 하다 성적표 날아온 날, 조폭신실 엄마에게 벼락을 맞았다. 벼락을 내렸으니 제우스 신실. 참고 참았던 걸 한 번에 터뜨려 줬더니 식겁해서는 자발적(벼락 맞은 후니까 자발적이 아닌 건가?)으로 몇 가지 절제 규정을 정하고 지키고 있다. 무엇보다 책을 다시 열심히 읽겠다며 김훈의 <남한산성>을 뚝딱 읽더니 <칼의 노래>를 붙들고 있는 중이다.

 

정말 좋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으면 좋은데, 어느 새 커서 김훈, 신영복 같은 거장의 책을 함께 읽고 자연스러운 수다를 떨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어렸을 적부터 "읽고 쓰는 것을 꾸준히 하고, 즐거워한다면 어떤 직업을 가져도 된다."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렇다고 책을 열심히 사주거나 독서 일기를 쓰게 하거나, 제대로 교육을 하지도 못했다. 억지로 시켜서 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있고. 보니까 채윤이는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을 엉덩이가 아닌 것 같다는 섣부른 판단을 하기도 했다. 현승이가 한때 솔직한 일기를 쓰고, 시를 짓기도 했지만 정말 '한때'였다. 다 큰 아이들을 억지로 읽고 쓰게 할 방법은 더더욱 없다. 대학에 간 채윤이가 제 안의 궁금증을 책으로 풀어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도록 반가웠다. 내 책장의 페미니즘 책을 기웃거리고, 어떤 저자에 꽂혀서 읽고, 필사하고. 그 어떤 모습보다 예쁘고 사랑스럽다. 

 

읽고 쓰는 힘이 제일이다. "나는 모른다. 배울 것이 있다. 배워야겠다”라는 태도로 읽고, 그러다 한 저자에게 푹 빠지고, 그 저자가 소개하는 다른 저자를 새로운 선생님으로 만나고. 이럴 수만 있다면 좋은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한다. 또 자기 경험을 글로 쓸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과 아픔을 겪더라도 결국 그 상처를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무늬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이고,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드는 확신이다.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다 보면, 어쩌면 그렇게 다양한 아픔이 있을까 싶다.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글쓰기를 진행하던 처음 얼마 동안은 매 시간 글로 나온 고통의 무게에 압도되어 몸과 마음 가눌 수가 없었다. 회가 거듭되면서, 사람 사람 글이 이끄는 마음의 길을 따라가면서 달라졌다.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에겐 자기 존재를 지키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이 아무리 커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 고통보다 더 큰 존재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글이 이끄는 길을 따라 필연 내면의 아픔을 만나게 된다. 글을 듣다 보면 늘 명치 부분에 통증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압도되진 않는다. 당사자는 모르겠지만, 아직 인정할 수 없지만 발설하는 고통보다 그분 안에 있는 더 큰 힘이 내겐 보인다. 글을 쓴다는 것, 정직한 글을 쓴다는 것을 그런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평생 쓰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보여주기 위한 글, 허세 가득한 글이 아니라 절실하고 진실한 글 말이다. 작가가 되는 글이 아니라, 자가 치유와 자가발전의 기반이 되는 글 말이다. 

 

성인이 되어 자기를 찾느라 흔들리고 방황하는 채윤이도, 청소년기 끝에서 막막한 나날을 사는 현승이도 그저 읽고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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