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어머님께 자서전 쓰실 것을 권했었다. 물론 내가 많은 것을 감당하겠다는 전제였다. 이런 저런에 해당하는 것 중 가장 큰 흑심, 아니고 백심은 '자기성찰'의 기회였다. 차분히 생을 돌아보시며 탈고하셨을 땐 치유가 일어나는 (아름다운) 각본이었다. 다 쓰셨고 이제 인쇄를 코 앞에 두고 있지만 각본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허망하고 화가 났었다. 성찰 대신 방어와 변호로 많은 페이지를 채우셨다. 그런 어머니 글을 매만지면서 후회를 거듭했다. 괜한 짓으로 시간만 허비하는구나.

 

사진과 편집을 도와주시던 언니가 '자기가 글을 하나 써야겠다' 하셔서 결국 어머니의 자기변호를 변호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변호를 변호하는 서문을 쓰면서 마음의 길이 조금 트이는 것 같다. '누구든 자신을 변호해야 한다. 자기 외에 그 누구가 자기를 변호해 줄 것인가. 어머님은 변호할 권리가 있다'  실은 나도 내 삶과 생각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쓴다. 포장하는 기술이 발달해서 좀 나아보일지 몰라도 내 블로그 글도 어머님의 글과 다르지 않다. 결국 나의 옳음을 알아달라는 끊임없는 외침이다. 

 

어머님은 어머님 편, 나는 내 편.

우린 모두 자신을 변호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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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덩이에서 복덩이로> 책을 내면서.........

 

 

내 얘길 다 하려면 책을 열 권을 써도 모자란다.” 황혼의 어르신들께 자주 듣는 말입니다. 어느 인생인들 책 열 권 분량의 사연이 없을까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륜이 쌓인다는 것은 인생의 이야기 분량이 쌓여간다는 뜻일 겁니다.

 

저의 어머니도 당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열 권, 스무 권으로 다 담아내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몇 날 몇 일 밤을 지새워도 끝나지 않을 어머님 70 평생의 이야기를 이 작은 책 하나에 담았습니다. 어머님이 쓰셨습니다.

 

열 권 분량의 사연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70을 바라보시는 어머님은 결국 이렇게 인생을 써내셨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고백처럼 평생 배우지 못한 한을 아프게 품고 살아오신 분입니다. 결국 이렇게 써내신 어머니께 박수를 드립니다. 어머님이기에 가능하신 일이었습니다.

 

상담을 하고 나면 이렇게라도 털어놓으니 후련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혼자 붙들고 아파하던 것을 어디에든 쏟아내기만 해도 견딜만해지고 가벼워집니다. 이 작은 책은 어머님의 털어놓음입니다. 어린 시절을 혹덩이로 기억하시는 어머니는 오랜 세월 마음의 병을 앓아오셨고 두통과 불면증으로 고생하셨습니다. 부디 이 털어놓음으로 인해 남은 인생에 더 밝은 이야기들이 쌓여 가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일을 함께 경험하신 분들은 어머님과 다른 기억을 가지고 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저장하는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 이야기가 지어져가는 것일 겁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면아이 치유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어린 시절의 치유는 다름 아닌 기억의 치유라고 합니다. 각자 기억이 다르고, 어머니의 기억 또한 세상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머님의 내면아이 치유, 기억의 치유를 위한 아픈 고백임을 기억해주시고, 따스하게 바라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표지사진을 찍던 날 어머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눈은 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났고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이셨습니다. 발그레 상기된 볼하며, 20여 년 가까이 어머님을 곁에서 뵈며 그렇게 예쁜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스스로 혹덩이라 여기며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님이, 오직 당신만을 사랑스럽게 따스하게 바라봐주는 눈길을 얼마나 얼마나 바라셨을까 싶어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험한 세월을 약하디 약한 몸으로 견뎌 오신 것은 분명 어머니 마음속엔 사랑의 눈길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의 다른 이름은 믿음일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의 눈길을 거두지 않으시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 사랑에 대한 믿음 하나로 혹덩이 어머님이 복덩이가 되셨습니다.

 

어머님 남은 생애, 그 따스한 주님의 눈길을 더 많이 느끼고 발견해가시며 행복한 황혼을 보내시길 기도드립니다. 외롭고 고독한 시간에 더욱 주님을 붙드시는 믿음의 길은 사랑의 길임을 믿습니다. 혹덩이 어머님, 복덩이 어머님을 사랑합니다.

 

막내 며느리, 정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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