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바닥이 버석버석해."
"그치? 청소기 돌려야 하는데... 여유가 없어. 내일 아침에 청소할거야."

이렇게 대답을 해놓고
기분 좋게 깜짝 놀랐습니다.
'어, 비난으로 들리지 않네. 어!'

신혼 초에는 웬만한 말은 다 비난으로 듣는,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많이 뒤틀린 여자였습니다.

그때 이 말을 들었다면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그랬을 것입니다.
'이런, 들켜버렸어. 깔끔한 여자가 아니라는 걸. 못 들은 척하고 내일 청소해야지. , 깨끗할 때는 칭찬 한 마디 할 줄 모르면서 흠을 찾아내는 데는 빨라요.'

한두
해 지난 후에는 대번에 이렇게 말하게 되었죠.
'청소하려고 했어. 바닥이 버석거리면 좀 먼저 청소기 돌리면 안 돼? 누구는 청소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나? 바쁘니까 그렇지.'
그러면 으레 돌아오는 반응.
'당신한테 뭐라고 한 거 아냐. 진짜야. 왜 삐지고 그래. 왜 이래~~ 왜 이래~~~'

내 안에 비난의 목소리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에 대한 비판을 줄이고 싶어도 되지 않아서 몸부림이었는데 타인에 대한 비난은 결국 내 안에 가득한 자기비난의 투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잔소리쟁이, 간섭꾼 우리 엄마는 뭘 해도 잔소리를 했고 한 번에 '잘 했다'하는 적이 없었죠.
엄마의 잔소리가 그대로 내 마음에 자기비판의 목소리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것을 알고 난 이후에는 바닥이 지저분하다는 남편의 말에

'이건 비난이 아니야. 감정반응을 할 필요가 없어. 남편의 말이 비난이 아닌데 내가 나를 비난할 필요가 없는 거야. 그런 소리 들어도 괜찮아. 바쁘면 청소 좀 안 할 수 있는 거지.'
라고 애써 다독였습니다. 애.써.서. 습관처럼 올라오는 자기비판을 어르고 달랬지요.
최근 몇 년은 이런 노력을 하면서 지낸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남편의 말에는 진심으로 거침없이 '내가 요즘 원고 때문에 내 정신이 아니야.
맞어. 바닥이 그런 거 나도 느끼고 있었는데....' 사실(fact) 그 이상으로 확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몇 년 기도하며 가꾼 마음의 나무에서 작은 열매 하나를 따는 느낌입니다. 


<비판의 기술>이라는 책의 서평을 쓰고 있는데 마음의 여정이 함께 진도를 나가 주네요. 자기비판, 자기처벌은 외부로 투사되어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비판이 많은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을 못마땅히 여기고 가혹하게 대하는,  가엾은 사람입니다. (저처럼 말이죠.ㅠㅠ)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이 책을 정독만 세 번, 틈틈이 꺼내 읽기는 무수히 했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신학적으로 분별이 필요한 책이지만 자기 정죄에 대한 귀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 역시 이 부분에 관해 잘 설명하고 있지요. 귀한 가르침을 준 두 책의 저자, 존 제콥 라웁 수사님과 안셀름 그륀 신부님께 감사의 꽃 선물을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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