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나도 단 한 번의 인생 밖에 살지 못한다. 그런데 마치 다른 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으로 산다. 열심히 노력하면 더 나은 내일이 올 거야, 같은 희망이든. 언젠가 로또 같은 한 방이 터질 걸 기대하는 환상이든. 심지어 '이생망이야!' 하는 말조차 애초 다른 좋은 삶이 있었는데 뭔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 같다. 희망이든, 환상이든, 지레 뒤집어쓰는 절망이든 변하지 않는 진리는 나는 단 하나의 생 밖에 살지 못한다.

 

자기 앞의 생.

 

1일 1영화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고 있다. 영화 제목과 정보, 목록만 훑어보다 영화 한 편 볼 시간 다 버린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에 있단다. '증후군'에 지기 싫은 마음에 빠르게 선택하려고 한다. 대략 장르 정하고 직관적으로 탁 찍어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 웬만하면 좋다. <자기 앞의 생> 제목에 끌려서 보았다. 그렇고 말고. 자기 앞의 생!이다. 누구나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갈 뿐이다. 타인 앞에 놓은 생을 살게 되진 않는다. 영화가 그런 건지, 내 마음이 그래서인지 1일 1영화 하면서 1일 1눈물까지 패키지다. 요즘 보는 영화마다 그렇다. 

 

 

 

 

 

"내 머릿속에서 그 일을 지워달라고, 그런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제발 그 사건을 기억 속에서 지워주세요." 한참 전에 글쓰기 모임에서 들었던 말이다. 고통의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절절하지만 그럴수록 그 기억이 또렷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난 날 겪은 그것들을 가지고 자기 앞에 놓인 생을 살아야 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마담 로사도, 아버지에 의해 살해된 엄마를 그리는 난민 소년 모모도. 지나간 고통이 크고 또렷하여 오늘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생망은 아니다. 그 뻔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희망이 자기 앞의 생을 다시 살아갈 이유가 된다. 고유하게 아픈 어떤 인생들이 교차하고, 거기서 살아야 할 어떤 이유가 발견될 때 생은 다른 길로 접어든다.

 

 

 

 

 

아침에 눈을 떠 그대로 누운 채로 남편에게 말했다. "마음이 괴로워. 이유 없이 마음이 괴로운지 모르겠어." 어젯밤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고, 며칠 이런 상태였던 것 같기도. 결국 아침 먹은 걸 체하고 말았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다 말고 먹은 것도 없어 텅 빈 구역질을 했다. 오후에도 맥을 놓고 누워 있다 "선생님, 글을 써서 올리고 밤새 체한 것처럼 아파서 잠을 못 잤어요." 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어젯밤 그 글을 읽고 가슴이 콱 막혔었다. 그의 이야기인데, 아니 그가 치료하는 아이 이야기인데, 나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오래전에 다 정리된 '나의 이야기'라 여겼는데 무슨 일이지? 이유 없이 괴로운 게 아니었다. 요 며칠 뭔가 죽도록 욕을 먹은 느낌도 있었다. 뒤가 아니라 앞에 놓인 생에 관한 것이다. 내 앞의 생을 살아가기 위한 몸살이다. 갑자기 일어나 책꽂이로 가서 브레넌 매닝의 <신뢰>를 꺼냈다. 필요한 책, 약이 되는 책이 꼭 이렇게 갑작스런 처방전으로 튀어나올 때가 있다.

 

영화도 그렇다. 오늘 본 <자기 앞의 생>이 그렇다. 고통이든 행복이든 비교가 불가한 자기 앞의 인생들이 있음을, 인생과 인생의 교차점에서 생기는 화학반응 같은 삶의 의미와 희망 같은 것들을 영화가 일깨워주었다. 약이 된 영화였다. 지난 날을 끌어안고, 다가오는 생을 마주하며, 오늘 내 인생과 겹쳐진 벗들을 위한 기도로 이 밤을 마무리하면 이 체기가 온전히 가실까. 어쩐지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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