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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들이여, 우리는 전문직업인이 아닙니다

larinari 2007. 11. 8.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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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목사후보생을 양성하고 있는 고려신학대학원의 캠퍼스 입니다.
글은 고신대원에서 발간하는 <고신원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모’라 불리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더니 어느 새 어디선가 ‘사모님!’ 하는 소리가 들리면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정선생님, 지휘자님’ 하던 분들이 ‘사모님’이라고 호칭을 바꾸시기 시작했을 때 저는 비로소 남편이 선택하여 간 길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익숙해진 이 ‘사모님’이라는 호칭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생 저의 길을 함께 가겠지요.
어떤 자매들은 사모가 되기로 서원기도를 했다하고, 또 다른 자매들은 ‘절대 목회자 사모 만큼은 싫다’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평신도들을 ‘사모님들 너무 안 됐다. 여러 가지로 얼마나 갑갑하고 힘들까?’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사모님들 참 대단하다’ 하기도 합니다. ‘사모가 대체 왜 저래? 사모가 옷이 저게 뭐야?’ 하기도 하고 ‘사모가 왜 이리 말이 많아?’ 하기도 하고 ‘사모가 왜 이리 말이 없고 무뚝뚝해?’ 하기도 합니다. 경력이 되는 사모님들은 자신의 사모로서의 삶에 대해서 솔직하게 풀어놓기 시작하면 남자들 군대 갔다 온 얘기 뺨치게 구구절절 사연이 많을 것입니다. 목사사모셨던 저희 어머니는 그 많은 구구절절한 사연을 ‘사모의 사.자는 죽을 사 자여~어’ 하고 한 마디로 정리를 하시곤 했습니다. 어떤 사모님이 좋은 사모님일까 하는 설문조사를 한다면 아마 설문에 응한 성도의 머릿수 만큼의 답변이 나오지 않을까요?

사모가 되기 전 제 머릿속에 많은 예상문제가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당혹스러운 문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사던 사람에서 파는 사람이 되었다고 할까요? 가판대를 사이에 두고 고자세로 물건을 고르던 사람이 아니라 한 개라도 더 팔아야 하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건 저의 의지도 아니고 평신도들의 의지도 아니고, 아마도 교역자 그룹의 자연스러운 분위기인 것 같았습니다. 평신도 일 때 받았던 환한 미소와 친절한 배려, 겸손한 섬김이 더 이상 제 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고객들을 향해서 환한 미소로 응대하다가 그 틈을 비집고 나타난 동료 판매직원의 얼굴을 확인하고 빨리 웃음을 거두어들이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생각해보면 한편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몇 년 후에 저도 자연스럽게 몸에 체득할 일인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머릿속에서 ‘직업정신’이라는 말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남편이 사역자의 길을 선택한 것은 ‘직업으로서의 성직’을 선택한 것인가? 남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리도 존 파이퍼의 <형제들이여 우리는 전문직업인이 아닙니다>라는 책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요즘에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분들에게서도 철저한 직업정신이 느껴집니다. 단지 마사지를 해주고 아프지 않게 머리를 감겨주는 기술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퍼머를 하는 동안 예의에 어긋나지 않지만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고 들어주는 태도가 인격 그자체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웬만큼 까탈스러운 고객을 만나도 화내지 않고 달래고 억울하게 욕을 먹고 참는 판매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고객이 아닌 사람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 우리는 그것을 직업정신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왕 사모의 길에 들어 선 것 잘 훈련하여 좋은 사모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의지적으로 선택한 길도 아니고, 좋은 사모라는 것의 기준이 사람 사람마다 다 달라서 도달할 수 없는 목표같은 것임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사모역할을 잘 하고 싶습니다. 다만 직업정신에 충실한 사모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니 직업정신이라고 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고객으로 한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나를 포함한 남편, 부모님, 자녀들을 교회에서 만나는 까칠한 성도에게 하듯 할 수 있다면요. 아니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 남편이 고참 사역자가 되었을 때 만날 신참 사역자과 그 사모님을 똑같은 고객으로 대할 수 있다면 그런 직업정신에 대한 훈련을 고려해보겠습니다.

세상과 교회가, 무엇보다 목회라는 사역의 장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남편과 함께 이것만은 자주 반성하며 사역의 길을 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가판대 안에서 그 사이에 복음을 두고 성도들과 마주보고 서 있지 않았음 좋겠습니다. 오히려 가판대 밖으로 나가서 성도들과 나란히 서서 아니 어쩌면 단지 조금 앞에 서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가는 자세로 살았음 좋겠습니다. 가판대에 마주 서서 투철한 직업정신과 훈련된 친절로 한 두 사람에게 더 팔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 직업정신이 나와 남편을 망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귀에는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사모라는 정체성은 마음에 큰 부담을 줍니다. ‘예전 같지 않아요. 사모야 자기 남편이 사역자니까 그렇게 불리는 거지. 요즘 세상 많이 달라졌어요’ 하는 말이 사실 큰 위로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우리가 서로 서로에게 ‘직업인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주고 격려해주고 기도하는 동역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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