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오지마. 냉이 한 줌에 얼마 한다고 그거 사 먹으면 되지. 내가 그냥 먹을게 오지마라"


시어머님의 말씀입니다. 지나가다 읽는 여러분께는 '아무 말' 아니지만 제게는 엄청난 말입니다. 아니, 어머님 당신께는 어마어마한 말씀입니다. 소확행, 작고 확실한 행복을 살자는 게 유행이던데요. 저는 작고 확실한 변화가 확실한 행복을 보장한다 생각합니다. 아무튼 어머님 입에서 아무렇지 않은 저 말씀은 작고 확실한 변화입니다. 


어머님은 누구보다 상처가 많은 분입니다. 그런 분들이 흔히 그렇듯 '다시는 상처 받지 않겠다' 주먹 꽉 쥐고 살아가십니다. 자기방어를 위한 진이 견고하지요. 본인에겐 자기방어이지만 주변 사람에겐 '가시 옷'과 같습니다. 당신이 누구를 찌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십니다. 아니 조금 까칠하고 때로 무례한 것도 당신 안의 상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에 당당하기조차 하시지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함께 있고 싶다, 보고 싶다'는 표현도 서투릅니다. "목요일 날 여기 오냐?" (목요일은 어머니 계신 하남 쪽으로 일하러 가는 날입니다) 목요일에 맞춰 홍삼을 달여 놨다, 김치를 해놨다, 누가 뭘 줬는데 양이 많으니 나눠가라, 하시지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주먹 꽉 쥔 어머니는 동시에 늘 계산하고 반성하고, 또 다시 헤아리며 당신 자신을 괴롭히십니다. "그래? 바쁘면 오지 마라" 해놓으시곤 며칠 후에 전화로 이러시죠. "내가 잠이 안 와서 막걸리 한 잔을 마셨는데 취했나봐. 취한 김에 그랬다. 아니, 이 며느리 년이 김치를 해놨는데 가져가지를 않어. 하하하"


어머님이 뭘 나눠주시는 마음엔 자식 사랑도 있지만 '나 좀 봐줘라'도 있고 통제하려는 힘도 작용합니다. 그걸 세밀하게 느끼는 저는 늘 깍뚜기 한 보시기, 감자 몇 알 가져오면서 쌀 한 가마니 가져오는 부담입니다. 돌려치기로 욕을 먹으면 두고두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요. 언젠가부터 받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집에 있어요, 아직 많아요, 들를 시간이 없어요, 라고 하거나 피할 수 없을 때는 남편이 가서 받아오곤 했습니다.


단지 무엇을 주고 받는데 그치치 않고 어머님과는 작정하고 거리두기를 한 지 몇 년입니다. 아마 어머님 자서전 써드린 이후로 마음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생각했고, 아픈 어머니의 치유자가 되겠다는 구세주 콤플렉스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내 한계를 인정한 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 어머님의 방황을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믿었던 막내 며느리, 상담자, 신앙의 동역자, 말이 통하는 유일한 사람에게 거절 당한 느낌이셨을 테니까요.


어머니가 느끼실 상실감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했지만 나를 지키는 것이 나를 내어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일 때가 있음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사람 참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어머님 가까이서 찔리고 피나는 지점을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는데 뭔가를 느끼고 깨달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의 힘을 빼고, 무장해제 하고 지내니 어머니 또한 무기를 내려놓으시는 것입니다. 물론 편치 않은 몇 년의 시간이 걸렸지요. (여전히 그런 시간이기도 하고요)


시골에 계신 친구 분이 냉이를 보내셨다며 목요일에 가져가란 연락을 받았습니다. 냉이는 아주 사랑하는 거니까 알겠다고 답을 했지만, 목요일 당일 어머님과 연락이 되지 않아 그냥 집에 왔고 며칠 후 통화였습니다. 주일 저녁 안 막히는 시간에 잠시 갈까 한다고 했더니 하신 말씀이  "아이구, 오지마. 냉이 한 줌에 얼마 한다고 그거 사 먹으면 되지. 내가 그냥 먹을게 오지마라" 입니다. 냉이 한 줌으로 '나를 알아달라, 내 호의에 고마워 해라' 통제하던 어머님이 '냉이 한 줌에 얼마 한다고!' 라니요. 


내적여정, 마음공부, 영성수업의 끝은 작고 확실한 일상의 변화입니다. 끝없이 자기를 파고 성찰하고, 더 깊은 자아를 발견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장착하고 휘두르던 가시를 인식했을 때 찌르던 당장 그것을 내려놓는 작고 확실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에니어그램 유형에 자기를 비추고, 성찰 일기를 쓰고, 꿈을 분석하고, 향심기도 훈련을 하는 것은 작고 확실한 일상의 변화로 드러나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어머님은 내적여정, 마음과 영성을 공부하는 제게 치열한 실습지였습니다. 한때 꿈을 통한 마음 여정 안내를를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정 선생은 가시옷 입은 어머니를 왜 그렇게 포기하지 못하고 끌어 안고 찔리고 있어?" 질책이기도, 진정한 의미의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착한 크리스천 콤플렉스도 있겠고, 치유자 연(然) 하는 교만도 작용하겠지만 어머님에게서 제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머님의 작고 확실한 변화가 그러므로 저의 것이기도 합니다. 아니, 오늘도 조금씩 성장하고자 애쓰는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사람 징글징글하게 안 변하지만 사람, 신비롭게도 어느 순간 믿을 수 없게 자기를 초월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깊은 곳에 상주하시는 치유자, 보혜사 그분의 이끄심일 테지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