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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실의 내적여정

작은 읽기 공동체

larinari 2018. 2. 17. 11:37



여섯 권의 책을 함께 읽었고 이제 일곱 번째 책을 시작하는 작은 모임이 있다.

우연한 만남에 부드럽지만 강한 의지 한 스푼 넣어서 몇 사람을 모았다.

좀 웃기고 가끔 지나치게 진지한, 믿을만 한 언니가 설레발 하니 어어어, 하고 따라온 동생 몇이다.

함께 읽고 배우고, 나누고, 기도하고, 더불어 자라간다는 조금 막연한 목적으로 시작했다.

나이 먹어 뭔가를 같이 해보자는 뜻도 있었는데, 역시나 막연하고 모호했었지.

'영성모임'이라 불렀다.

그러나 꾸준히 만나고 꾸준히 읽었고, 이번에 끝낸 책은 무려 햇수로 3년을 끌었다.


그대가 따라가는 실이 있지

그 실은 변화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가지

그러나 실은 변화하지 않지

사람들은 그대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아해하지

그내는 그 실에 관해 설명을 해야만 하지

그러나 다른 이들이 이해하기는 어렵지

그대가 그 실을 붙잡고 있는 한, 길을 잃을 수는 없지

비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지

그리고 그대는 고난을 겪으면서 늙어가지

무슨 짓을 해도 시간이 펼쳐지는 것을 막지는 못하지

그대는 결코 그 실을 손에서 놓아버리지 않지


<세상의 이치> 윌리엄 스탠포드


<불멸의 다이아몬드> 마지막 챕터에 나오는 시인데 '그 실'은 '진짜 자기'(거짓자아 아닌)를 뜻한다고 하는데,

돌아보면 우리의 모임 또한 '그 실' 같았다.

변하는 일상을 속에서,

굳이 우리가 왜 모이지? 우리는 어떤 관게 무슨 모임이지?

설명하거나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어려운, 

고난 당하는 서로를 바라보고, 늙어가는 서로를 확인하면서 만났다.

끊어질 듯 말 듯, 가느다란 실 같으나 결코 놓지는 않았다. 


돌아보면 나는 누군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같이 책을 읽자고 했다.

청년 시절, 결혼을 하고 싶은데 마음 같이 않았던 교회 친구들 모아 책을 읽자 했고.

남편과 사귀기자마자 함께 책을 읽었고,

결혼 후 신혼부부 모임을 만들어 주일마다 책나눔을 하고.

(아기들 기어다니고 똥기저귀 굴러다니는 신혼집 거실 돌아다니며 치열하게도 모였다.)

마음에 딱 맞는 한 커플과 넷이서 진하게 읽고 나누는 시간도 있었다.

가정교회 선배 부부들을 졸라 부부 책모임을 하기도 하고,

아끼는 제자 한 둘을 붙들고 읽기 만남을 갖기도,

아이 키우며 돌아버릴 것 같은 처지의 동병상련 엄마들 모여 육아 책을 읽기도.

젊은 사모님들을 불러 모아 함께 한 시간도 있다.


[스승이신 예수가 우리를 부른 곳은 공동체이다!]

젋은 날 배운 이 한 문장에 꽂혀 공동체를 일구고 가꾸는 것에 조용히 목숨을 걸고 살아온 시간이다. 

남편과의 공동체가 모든 공동체의 질을 결정하는 바로미터였을 것이다.  

남편과 함께 섬긴 가정교회와 청년 목자모임은 어떤 결정체였다.

매주 10인 분이 넘는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먹고, 밤늦도록 하하호호 엉엉엉엉 웃고 울었던.


이 모든 (책)모임이 각각 소중하고 고유의 의미를 지녔지만,

어쩌면 이 '영성모임'을 향한 머나먼 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지나온 작은 공동체 경험에 대한 보상 또는 배움의 열매로서의 만남일지 모른다.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관계에 지쳐 있는 내게 줄 것도 받을 것도 있는 만남이었달까. 

이 실낱처럼 이어온 모임은 나를 지탱하고, 나를 비춰보게 하는 안전한 공동체이다. 

그간 만들고 이끌어 왔던 어떤 책모임보다 덜 힘이 들었다.

아니 갈수록 힘 들이지 않고 모임을 유지하는 방식을 배웠다고 하자.


자발성과 정직성.

좋은 공동체가 가진 특징을 나는 이 두 가지로 정리하겠다.

이 두 원칙에만 부합하자는 마음으로 영성모임을 이끌고 참여하였다.

아니 영성모임이 가르쳐준 것이 이 두 가지 원칙이다.

자발적이고 투명하기 위해서 두려움을 떨쳐내는 일 또한 영성모임을 통해 배운 것 같다.

여섯 권의 책을 함께 통과해왔다는 사실이 정말 뿌듯하다.

주먹 불끈 쥐고 지켜내고자 하지 않았지만 미미하게 이어지더니 쌓인 열매가 저러하다.


끊어지지 않고 여기 '영성모임'까지 이어온 그 실은

오래 전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책모임, 그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결코 그 실을 손에서 놓아버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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