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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가진 리뷰

전격 독후감1_언어를 열면 세상이 열린다

larinari 2007.10.2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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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쿵푸스> 읽고 필 받아서 <호모 로퀜스, 언어의 달인>을 다 읽어버렸다.
또 다른 제목은 <읽고, 쓰고, 말하기>.

최근에 사랑하는 친구 하나가 블로그를 시작했다. 내가 싸이 클럽에 글을 쓰면서 나를 정리하고 그러면서 좌충우돌 하고 결국에 일종의 자유를 얻은 것처럼 그 친구에게도 자유의 선물을 받을 걸 생각하니 기뻤다. 친구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내면에 정리한 후 글쓰기를 시작했으니까 나만큼 좌충우돌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글쓰기, 책읽기, 말하기.
언어와 관련된 이 세가지는 채윤이의 국어 교과서 제목이기도 하다.
(채윤이가 그 교과서로 배우고 읽기, 쓰기, 말하기를 제대로 배우리라는 긍정적인 기대는 많이 접었지만서도)

어쨌든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 내 머릿속에는 정리되지 않을 채 왔단 갔다 잡힐 듯 말 듯 한 얘기를 저렇게도 쉽게 잘 정리해서 풀어놓으니 말이다. 왜 이리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을까?
그래. 그 똑똑한 사람들 덕에 우리같은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넓히기도 하고 마음을 넓히기도 하니 참 고마운 일이다.

세 번에 걸쳐서 독후감을 쓰려고 한다.

그 첫 번째 얘기. 언어!

*********************************
지난 여름 너무 혼란스럽고 아파서 음식이 입에 넘어가지 않았던 아프간 피랍 사태를 겪으면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언어의 강이 네티즌과 샘물교회,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네티즌과 우리 기독교인 사이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박은조 목사님이나 피랍자의 가족들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네티즌들을 광분하게 하고 휘발유를 붓고 했으니 말이다. 기본적으로 이해하겠다는, 듣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튕겨져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분명 사용하는 언어의 문제가 있었다.
어느 어머니가 '피랍은 신나는 일' 이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그 뜻을 미루어 짐작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일의 전후 좌우는 물론 대체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는지 조차 모르지만 이 일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기에 그 분의 일하심을 믿을 때,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믿기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면서 '신나는 일' 이라고 했음직 하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네티즌들은 다 뒤집어졌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정신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럴 것이다. 신앙의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저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냐 말이다. '선교'를 계속하네 마네 하는 말에 대한 오해도 그 언저리 어디에 있는 문제일 것이다.

나는 놀랐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우리가 구원해야할 대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경직되어 있다는 것.  '죄인'이라고 '구원할 영혼' 이라고 마음 속으로 규정해버리고는 행동만 고상하게 하려하고 있다는...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라고 찬양을 할 때 훨씬 더 많은 경우에 '죄 있는 자'의 자리에 자신의 얼굴이 어른거려야 할텐데 익명의 많은 세.상.사.람.들.이 어른거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우리가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단지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전도에 열심이지만 분명 그 열정이 하나의 쉽사리 건너지지 않는 언어의 강을 만들어 낸 것은 분명하다. 강 건너에서 손짓한다. '이리로 건너 와. 그 땅은 죽음의 땅이야. 이 거룩한 땅, 이 고상한 땅으로 오라니깐. 아~놔!'

이런 생각이 들면서 더 무서운 건 우리 부부가 하나의 강을 더 건너려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사이의 언어의 단절이 심하다면 우리는 이제 전임사역자의 땅으로 건너가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 땅은 이제 평신도들이 사는 땅에서 한 단계 더 홀리해진 땅이 아닌가?
요즘 내 마음이 이렇게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여기에 있는 지 모르겠다.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의 언어를 버리고 천국의 언어만을 말하는 것이 여기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의 신분이 그렇게 우리를 단절시켜 버리면 어떡하겠나? 그런 목회자가 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왜냐면 그런 면에서 존경할 만한 선배 목회자를 잘 찾아보지 못했다. 평신도든, 불신자든, 자기 아래 있는 부교역자든 모든 사람에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즉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목회자를 말이다. 그건 예수님이나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최소한 그렇게 노력하는 분들을 잘 보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돈 걱정, 아이들 걱정, 관계 걱정...그 모든 일상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진짜 자기의 하나님이 된다고 믿는다. 그럴려면 복음은 그 일상을 뛰어 넘을 수 있도록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게 전해져야 하는데....이미 일상을 잃은 언어를 가지고 어떻게 일상을 이기게 하는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내가 설교하고 내가 목회할 것도 아닌데 고민이 너무 심각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지난 겨울방학 남편이 첫설교 할 즈음에 내게 그런 부탁을 했었다.'여보! 내가 설교할 때 쓰는 용어들이 일상의 언어여야지 돼. 일상의 언어와 분리되면 안 돼. 그런데 설교를 자꾸 하다보면 그런 오류에 빠지기 쉬워. 그러니 당신이 잘 감시해줘야해'
나는 설교자, 목회자가 되는 남편의 감시자가 되어야겠다. 남편의 언어들이 또 하나의 강을 건너가지는 않는지? 남편의 설교와 사역에 성도들의 일상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영원에 잇대고자 하는 다리놓음이 허술하지는 않는지...

그런데 내 언어는 누가 감시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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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Comments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7.10.24 12:07 이런 주제는 말을 조심스럽게 만드는데 예전에 안수환이란 시인의 시집에 해설을 쓴 적이 있었죠. 해설을 쓰려니 시집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시인이 기독교 신자여서 자연스럽게 종교 주제의 시들이 많았죠. 시인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5구역"에 속해 있었는데 "5구역 식구들이 몰려와서 가정 예배를 함께 드"리는 자리의 얘기를 옮겨놓은 시가 있었어요. 한 부분만 옮겨볼까요.

    …여러분은, 이 세상 선악의 충돌 가운데서 하나님이 최후의 승자로 나타난다고 보셨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렇지가 않아요. 당초에 이 세계를 선악의 충돌로 바라보았던 바울의 관점이 틀린 겁니다. 충돌이라고 한다면, 선이 악에게 지려고 하겠어요? 악의 처지로는 더 말할 나위없겠지요.…
    ─「이야기·2」

    …‘너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며’ 그것이 문제예요. 땅 위에 살면서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 고 하다니! 눈감고 살든지 어디 삼수갑산에라도 들어가야할 판인데 사정은 그렇지가 않찮아요? 더불어 죄 짓고 사는 겁니다! 죄가 사람을 구원하는 거예요. 청결이 사람을 구원하는 줄 알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아요. 더불어 천국 가는 겁니다. 혼자 영혼이 맑아지면 천국 가는 겁니까? 도대체 영혼이 정결해진다는 발상 자체가 틀린 것이지요. 영혼이 무엇인가요? 발이지요. 팔이지요. 몸이 아니고는 영혼 따위도 무의미한 것이며 또는 아주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터이고. 낙원으로 가는 길이 나 혼자 영혼가지고 운좋게 들어가는 특권 아닙니다. 내 곁에 당신이 안계시면, 이웃 사람들이 동행해주지 않는 천국이란, 이 땅 위에도 없을 뿐 아니라 죽은 내세에도 없을 터이고. 내 곁에 꼭 당신이 계셔야 해요! 더불어 갑니다.…
    ─「이야기·2」

    나도 사실 이 얘기를 어느 날 목장의 모임 자리에서 슬쩍 꺼낸 적이 있었어요. 시인의 얘기를 들을 때 시인이 내게 내민 언어를 사이에 놓고 별 갈등이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기독교인의 얘기인데도 나는 들었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내가 이 얘기를 목장의 모임에서 내놓았을 때는 그 말이 몇몇 사람에게서 단호하게 거절당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도 그날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말하자면 전혀 들을 생각이 없는 기독교인을 본 거죠. 저는 그날 교회에 저와 같은 비신자를 한두명 정도 두는게 참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같은 비신자를 둔다는 건 어찌보면 세상을 정말 가까이 두는 것이든요.
    너무 길게 썼네요. 그냥 저의 말을 허용해주는 분들이라 주절주절 늘어놓았어요. 두 분, 그리고 그때 한자리에 있었던 또다른 두 분은 그냥 저와 함께 이 세상에 있는 것 같아서 아무 부담없이 떠들었습니다. 역시 저는 너무 말이 많아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7.10.24 21:06 신고 좋은 약은 많을수록 좋아요.^^
    언젠가 하신 말씀이 제게 정신이 번쩍 들게 했어요.
    그리고 그 말씀을 잊지않고 마음에 새기고 있어요.
    '그저 하나님 품안에 거하면 될 것을, 하나님을 굳이 지키려고 한다' 는 말씀요.
    교회에 동원님 같은 분이 한 분 계시면 정말 바람직할거라는 말씀 절대동감이예요. 감사해요. 부족한 글에 성의있는 긴 댓글로 함께해주셔서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7.10.24 21:11 신고 아침에 나갈 시간이 다 돼서 뒷부분을 대충 마무리 했어요. 글의 뒷부분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 프로필사진 신의피리 2007.10.24 22:47 詩가 참 맘에 드네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할때가 있었는데...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
    선악을 선명하게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인 것 같습니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하나님을 대놓고 부정하는 소위 '악행'과, 입술로는 거룩한 종교적 삶을 지향하지만 행위로는 부정하는 '악행' 중 어느 것이 더 악한가?
    하나님 편에서는 후자가 훨씬 더 악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에 속한 자들'의 신자를 향한 비판 속에서 비로소 정신 차리고 제 자리를 찾아돌아오곤 합니다.
    목장 모임에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도 좋을 것 같네요. ^^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7.10.25 00:32 안수환 시집이고 시집 제목은 <가야 할 곳>이예요. 문학과지성사에서 오래 전에 나왔구요(1994년), 뒤에 해설은 제가 썼어요.
    살펴봤더니 그 시집이 제게 남는게 한 권 있네요. 그거 한권 forest님 편에 보내 드릴께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forest 2007.10.24 19:13 우와~ 쥔장도 글을 잘쓰지만 털보님 댓글 또한 글만큼 잘 쓰셨네요^^

    전격 독후감이란 꼭지명이 더 웃겨요^^
    역시 발명가다운 착상이세요.

    웃기는 얘기 하나.
    제가 싸울 때마다 울 털보 왈 "A4 한장으로 정리해와~ " 이랬답니다.
    그때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걸 어떻게 정리하냐고
    이미 내 머리 속이 다 뒤엉켜있는데 그걸 어떻게 풀어내냐며 서럽게 울었답니다.ㅎㅎㅎ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7.10.24 21:10 신고 우와~ 은근히 짝꿍 자랑하시네요.^^

    고문이당. 싸울 때는 말로해도 잘 정리 안되는데 A4 한 장으로 정리를 하라시다니요. A4에 정리되는 거는 말로 거의 다 되는데...ㅋ
    우리는 또 감정 상하면 그게 말로 바뀔려면 한참 걸리잖아요. 게다가 제대로 된 말로 정리될려면 최소한 1주일 이상인데...ㅋ
  • 프로필사진 BlogIcon forest 2007.10.25 00:42 아~ 은근 짝꿍 자랑했네요.
    그것도 남의 집에서요^^ 넓은 아량으로 굽어살펴주시길...ㅎㅎㅎ

    정말 너무 잘 알아주신당~
    너무 비슷한 꽈 아닌가 몰러요~~~^^
  • 프로필사진 2007.10.25 12:58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7.10.25 21:04 신고 심각한 내용도 공개적으로 쓰도록 해용~
    내 보기엔 심각한 내용이 더 좋아용~^^
  • 프로필사진 BlogIcon 유나뽕!!★ 2007.10.25 22:42 헐;;ㅋㅋㅋ

    훔...앞으로 쓰게 된다면...ㅎㅎㅎ

    쑥스럽다규염!!☞☜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7.10.25 22:42 실시간! 그런 건 쑥쓰러워 할 일이 아니라규염!ㅎㅎ
  • 프로필사진 은행나무 2007.10.25 14:39 어제 이 글 읽고,거의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
    '강'을 건너든 그렇지 않든, 결국은 '중심잡기'와 영적인 'power'가
    있어야 할 것 같아. 땅심, 지력이라는 거. 그것처럼 영력.
    표현의 한계를 느낀다 ㅜㅜ
    더 생각해 봐야겠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7.10.25 21:03 신고 생각나는대로 언제든 생각을 나눠줘.
    물론 위의 글은 언어에 국한된 내 생각이고,
    이 모든 것에 끊임없는 자기를 비우는 기도 즉 영적인 중심잡기의 일환이겠지. 그건 기본이라고 생각해.

    다만 언어에 관한 생각을 하면서 분명히 설교의 언어가 일상의 언어를 많이 잃었다는 것, 그리고 목회를 직업으로 하는 건 정말 안되겠다는 두 가지를 생각해.

    만나서 말로 하면 많은 얘기들을 할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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