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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0416

전도

larinari 2016.12.20 10:51



꿍꿍이


대학 친구들 모임이 8차 촛불집회가 있는 토요일이었다.

사는 곳이 제각각이라 만남의 장소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서울역 근처 좋은데'하는 한 친구의 말을 내가 덥석 물었다.

빛의 속도로 서울스퀘어 맛집 검색하여 후보 식당을 단톡에 올리고 장소를 확정했다.

친구들 모임에서 내가 그나마 빠릿해서 주로 하는 역할이기도 하지만

모임 마치고 '마실 삼아 광화문 가볼래?' 해볼까 싶은 사심도 있었던 것.


내 친구들


엄마, 어디 가?

응, 친구들 모임.

그런데 왜 그렇게 나가? 좀 예쁘게 하고, 있어 보이게 하고 나가.

털 조끼 입으면 부자 싸몬님 같아 보여.

괜찮아. 엄마 친구들은 다 엄마보다 부잔데 티 내는 사람 없어. 

엄마가 제일 많이 꾸미는 편이야.

아닌 게 아니라 50 바라보는 여자 다섯이 모이는데 얼굴에 주사바늘 하나가 없다.

이런 친구들.




소심


촛불 안 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모임이 있다. 

지난 주 광화문에서 들은 노래, 어느 초딩의 자유발언 같은 것들이 자연스런 대화 주제가 된다.

이 친구들 모임에서 촛불시위는 머나먼 얘기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 잠시라도 광화문에 가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곳에 가면 준비가 됐든 아니든 '더 큰 나, 더 큰 우리'를 만날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직장, 육아, 아이들의 입시와 입대..... 주어진 삶의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며 사는 친구들이다.

한 발 물러서서, 또는 한 발을 디밀어서 일상을 달리 보는 눈을 가질 수 있거나,

적어도 다른 공기에서 숨을 쉬어보는 신선함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싶어서이다.

농담처럼 몇 번 권유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난 그런 데 무서워. 우리 남편이 근처에 있지 말고 빨리 집으로 오라고 해.'

그래, 안녕! 넌 버스? 넌 지하철? 난 광화문 쪽으로 걸어가려고.


나이 값


친구들과 헤어져 터덜터덜 걷다 박사모 행진대와 마주쳤다.

합리적이지 않기로 굳게 마음 먹은 듯한 굵은 주름의 얼굴들.

억장 무너지는 손피켓과 구호를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정신 차려보면 멍하니 서서 차도로 걷는 그들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탄핵무효! 탄핵무효! 인원에 비해 힘은 한참 딸리는 소리이다.

그때 인도 쪽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힘찬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 값! 나이 값!

차도의 행진대열과 비슷한 연배의 남성이 얼굴이 벌겋게 상기 되어 외치며 지나갔다.

차도 쪽 구호 사이사이 기가 막힌 박자로 장단을 맞춘다.

탄핵무효! 나이 값! 탄핵무효! 나이 값! 탄핵무효! 나이 값! ㅋㅋㅋㅋㅋ

'나이 값'을 외치는 젊은 할아버지의 등 뒤에 양손으로 엄지 척을 올려드렸다.

엄치 척과 동시에 내 기분도 업! 되어 힘을 내서 걸었다.


전도


광화문 바로 앞까지 걸어 무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역시나 한 사람, 한 사람, 한 우주, 한 우주가 몰려든 광장.

일행 없이 입 꾹 다물고 있다 구호 외치는 타임에 크게 소리 지르면 내 소리에 내가 놀라게 되지만.

혼자여도 좋은 곳이 촛불광장이다.

자유발언이 지루해질 즈음 휴대폰을 꺼내 들었는데, 마침 전화가 온다.

아까 헤어진 친구 중 하나.

여보세요, 하는데 수화기 넘어 쩌렁쩌렁 울리는 마이크 소리가 이중창이다.

'신실아, 나도 여기 있어. 하하하하하'

2차로 다른 약속이 있다던 친구, 그런 데(촛불집회)는 무섭다고 했던 친구이다.

바로 카톡으로 인증샷도 주고 받았다. 이런 느낌들 아실랑가?

'야, 교회 가자. 이번 주일 총동원 주일인데 재밌는 것도 많이 하고 선물도 줘'

어설프게 전도했는데 친구는 말한다. '우리 집은 불교야'

아, 불교.... 그럼..... 헤헤. 지킬 건 지켜줘야지. 깔끔하게 접었는네

주일 아침에 제 발로 교회에 찾아와 나를 찾는단다.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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