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업

 

블로그에 [정신실의 에니어그램 세미나]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저자 세미나를 비롯해서 에니어그램 강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수강자분들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고민을 해왔습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의 뒷모습에서 저는 늘 약간의 책임감을 느낀답니다. 그 책임감은 대부분 다음 단계 강의를 위한 치열한 공부로 연소시키지만 카페든, 밴드든 뭐라도 만들어서 마음의 여정을 나눌 공간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앞으로 있을 세미나 홍보를 위해서도 그렇고요. 그러나 최종적으로 온라인 공간은 따로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이 블로그 카테고리 하나를 신설하였습니다.

 

거듭 진행하다보니 에니어그램, 특히 정신실의 에니어그램이 꼭 필요하신 분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찾아오시더군요. 톰라이트란 이름에 견줄 수도 없는 무지랭이 강사이지만 '모든 사람을 위한' 에니어그램을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지난 여정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위한 에니어그램'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에니어그램은 없습니다. 그러나 찾는 사람을 위한 에니어그램은 있습니다. 일단은 블로그를 통해 세미나가 있으면 알리고, 필요한 소통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있다!

 

2. '패' 다 보여주는 강사

 

사적인 공간이랄 수 있는 이곳에서 영업행위 하는 것에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약간의 신비주의가 강사를 있어 보이게 만들지 않습니까. 블로그에는 저녁으로 뭘 해먹었다는 얘기, 애들 등짝에 스매싱 날릴 뻔한 얘기, 남편과 싸웠다가 오글거렸다가 하는 온갖 일상이 널려 있어서 강사 체통을 지키기에는 저해 요소가 많은데요. 내적인 여정, 마음공부라는 것이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라 결국 일상의 변화를 목적하는 것일찐대 제 일상과 마음의 여정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는 여기가 딱이구나 싶구요. 저 자신을 위한 좋은 장치가 되겠다 싶기도 해요. 제가 살아내는 이상을 가르치지 말아야한다고 다짐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블로그 역시 뽀샵된 일상이긴 하지만 적어도 강사 페르소나로만 포장된 것이 아니니까요.  

 

3. 누구나 자기를 치료할 수 있다

 

저는 누구든 자기를 치료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필요하다면 상담을 받아야 하고, 정신과 약을 복용해야할 때도 있겠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카렌 호나이(Karen Horney)가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건강한 성격발달과 성격장애 사이 어디 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에니어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를 진단해보고 성찰하면서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툴이 된다는 것입니다. 에니어그램을 통해 진지하게 자신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어느 시점 반드시 깨닫게 됩니다. 돕는 힘이 있다는 것을요. 크리스천들은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돕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자신의 무의식 깊은 곳의 '진짜 나'를 인식하며 새로운 마음의 에너지에 눈을 뜨게 되지요.  

 

4. 자기를 아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카렌 호나이는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나 요즘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를 거론하며 자기를 아는 일을 쉬운 일이라는 암시를 주는 것은 헛된 희망의 약속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약속이 제시하는 평탄한 길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으면서 잘난 척 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난관에 봉착하기라도 하면 크게 낙담하면서 진실을 찾는 일은 힘들다고 치부하며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자기를 알면 금방 달라질 것처럼, 마음 먹고 기도하면 당장 성격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됩니다. 에니어그램이 참 좋지만, 핑크빛 약속를 함부로 할 수 없기에 강의하는 제게는 형벌 같습니다.

 

5. 집으로 가는 길, 함께 가는 길

 

제가 하는 에니어그램 세미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임을 믿으며 함께 걷는 길입니다. 어디까지 걷느냐고요? 집 입니다. 아버지가 계신 집. 너른 품으로 안아주려 기다리시는 집. 그것은 이땅의 삶을 마치고 안길 품이기도 하지만 바로 지금 돌아가 안길 품이기도 합니다. 위에 걸어둔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에 구석구석 돋보기를 대고 바라보셨던 헨리 나우웬 신부님을 에니어그램 여정의 좋은 선생님으로 모시는 이유입니다. 지금은 에니어그램 1단계(성격은 내가 아니다!)와 2단계(성격중독자라니!)까지 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여정 안내를 위해 불철주야는 아니고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인상담이나 여정 중 특별한 필요를 돕기 위해서 따로 준비하고 있는 동반자도 있습니다. 또 에니어그램 강사가 되는 것에 관심 있는 분들도 많으시던데요. 언젠가는 지도자 과정을 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에니어그램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기에 함께 걷는 여정 가운데 서두르지 않고, 그릇에 물이 가득 차는 날을 기다리고 있지요.

 

이렇게, 정신실의 에니어그램은 

시작되었고, 시작하고 있고, 또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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