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구례로 가는 중이다. 밤인데도 별로 졸렵지 않았다. 한결이랑 이야기를 하면서 가고 있다. 나는 아까부터 새로 만날 애가 어떨지 궁금했다. 한결이 말로는 괜찮은 애라고 했다. 실컷 떠들다가 잠이 들었다. 깨서 보니 딱 구례역이었다. 비몽사몽했는데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찬 공기가 온몸을 감싸 잠이 확 깨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도 졸렸다. 버스에서 내려 이제 진짜 올라간다. 근데 너무 추웠고 앞이 안 보였다. 해가 뜨고 아핌 먹는 곳에 도착했다. 겸이는 내 예상과 다르게 다른 사람들과 말도 잘하고 재미있어 보였다. 아침을 먹고 진짜 등산을 했다. 근데 이 길은 다음날 가는 길에 비하면 쉬운 길이었다. 힘들진 않았다. 왜냐면 겸이랑 금세 친해져서 한결이랑 셋이 이야기를 하면서 갔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맨 아빠가 힘들어 보여서 밥 먹는 시간에 최대한 이것 저것 꺼내 먹었다. 지리산은 계속 걷고 바위 올라가고 내려가고가 반복이었다. 내가 생각한 거랑은 좀 달랐다. 계속 걸을수록 말이 없어졌다. 나는 등산이라고도 생각하고 그게 아니라 똑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는 거라고도 생각했다. 바위 오르막길이 나올 때 정말 가방을 던져버리고 뛰어 올라가고 싶었다.

 

아빠가 뒤처질 때는 내가 짐은 조금 들어서 아빠가 힘든 것 같아 조금 미안했다. 또 나는 쉬는 시간에 앉으면 다시는 일어나기가 싫을 때도 종종 있었다. 지리산은 내 바로 앞길만 보고 가면 힘들지 않지만 저 멀리 앞으로 갈 길을 쭉 보면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걸을 때 별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딱히 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멍하게 걷다 쉬고 걷다 쉬고를 반복한 길도 있었다.

 

나는 총 2번 산장에서 잤다. 나는 첫날 산장에 가기 전에 산장이 정말 안 좋고 그냥 잠만 자는 곳이라고 생각을 하고 단단히 각오를 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정말 좋았다. 특히 좋았던 점은 사다리가 있어서 3층까지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었다. 산장이 휴양림과 다를 게 없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놀고, 고기 구워서 먹고.

 

물을 끓이다가 아빠가 손을 덴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괜찮냐'고만 물어 봤는데 사실 속으로 엄청 걱정했다. 또 출발하고 쉬고를 반복했다. 나는 원래 초콜릿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지리산에서는 많이 먹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단 게 에너지가 된다고 먹는 것 같았는데 나는 사실 먹든 안 먹든 힘든 건 똑같은 것 같았다. 계속 걷는 게 지겨울 때 우물우물 씹으면서 갔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번 지리산에서 아빠한테 짜증을 약간 낸 것 같지만 사실 아빠랑 같이 가서 재미있었다. 아빠는 내가 짜증만 내서 힘들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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