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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

조금 장황한 인사

larinari 2013.07.01 01:51

 

 

 

1.
7박 8일 간 집을 비웁니다. 코스타 강의 차 시카고에 갑니다. 곡절 끝에 참석하기로 결정된 지난 2월 부터 묵직한 걸 속에 넣고 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놀라고 축하해주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하디 흔한 일도 아닙니다.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처음엔 '내가 무슨 코스타? 내 깜냥에' 라는 생각도 했고, 한편으론 '사람이 있는 곳이고, 사람을 만나서 내 얘기를 풀어놓았을 때 좋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데 뭐가 문제냐?' 싶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양을 치던 다윗을 이끌어내어 이스라엘의 목자게 되게 하셨다는 시편의 말씀이 마음에 맴돕니다.


2.
작년 여름 살인적인 더위가 한창이던 때 어느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정말 괜찮은 분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어쩌다 에어콘 얘기가 나왔는데 어느 분이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에어콘 없이 어떻게 살아요?' 평소 그 분의 말과 글을 볼 때 이것은 거의 100% 좋은 뜻의 얘기라고 믿습니다. 걱정해주고 더위와 싸우다 분노에 찬 나를 위로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실은 그 순간 빵이 없으면 쿠키를 먹으라 했다든가, 케잌을 먹으라 했다는 마리앙뜨와네뜨 생각이 났습니다. 무슨 대답을 할 수 없었고 마음으로 이만큼 멀리 물러나 앉았습니다.


3.
어떤 것에 대한 '결핍감'은 그것의 실체에 대한 과장된 인식을 낳습니다. 걱정의 말에 마리앙뜨와네뜨를 떠올리는 비약이 일어나는 것처럼요. 이번에 난생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시카고 여행은 첫 해외여행이 되는 셈입니다. 이것 역시 어떤 결핍의 느낌으로 자리하고 있을지 아시겠지요. 머리로는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된장성 해외여행들을 비웃어주는 것으로 내 당당함을 증명하고자 했지만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속여 무엇하겠습니까.


4.
오늘 예배에 가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는데 첫 마디가 툭, 이렇게 나왔습니다. '하나님, 내일이네요. 저 잘 다녀올께요' 그러자 '미친 거 아냐? 너만 가냐? 나도 가'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맞아요. 내가 가면 주님도 가시는 거지. 다녀오긴 어딜 다녀 온다고. 사실 순간적으로 펑, 가슴팍을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주님이 거기에 계시고, 무엇보다 내가 가면 그 분이 같이 가신다는 그 사실을 어쩌면 그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요. 성가대 찬양을 하는데 찬송가 '돌아와 돌아와' 편곡이었습니다. 테너 솔로가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오라'


5. 그 찬양을 듣는 순간 확 왔습니다. 정신 없이 헤매고 다녔던 지난 몇 주간 나의 영혼. 내 영혼이 편안한 집에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떠돌아 다녔습니다. 결핍감이 어마어마한 두려움으로 변질된 지점에서 낯선 길에 홀로 남겨진 느낌과 더불어 이 곳에 다 밝힐 수 없는 더 복잡한 마음으로 여기 저기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와 한다는 말이 '주님, 다녀오겠습니다'  이제껏 그렇게 주님 없는 곳으로 골라 헤매고 다녔으면서 어딜 더 다녀오겠다는 건지. 주님 없는 어딜 가서 뭘 하고 오겠다는 건지.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과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모습이 동시에 오버랩 되었습니다.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오라. 주께 오라'


6. 
징징거리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것에 일일이 답을 해주며, 뭐든 물어보라고 안내해주시고 지지해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어리버리 뿌빠빠 하고 있는 동안 비행기표 일일이 알아봐는 친구도 있고요. 며칠 앞 두고 급하게 제작해야 하는 명함,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빛의 속도로 만들어 주시며 '미국 가는 선물!' 하시는 분, 내 부끄러운 속내를 다 들어주고 함께 아파해주고 커피를 건내주는 친구, 집까지 찾아와 코스타 참석 경험 들려준 어린 친구, '평소대로 하세요' 하시며 어떻게라도 격려하시려는 교회 목사님 한 분. 바쁜 와중에 뭐라도 힘이 되어주려고 애쓰는 남편.
결핍감으로 인한 두려움의 큰 웅덩이, 그리고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은 '사랑'으로만 메워지는 것 같습니다. 아까 낮엔 이 사랑이 한꺼번에 인식되어 뭉클했습니다. 결국 이런 사랑들이 나를 다시 아버지 집으로 안내합니다.



7.
강의에 관한 얘기를 하는 중에 남편이 그랬습니다. '당신은 전문 강사도 아니잖아. 당신은 생활인이야. 생활하고 묵상하고, 글쓰고. 그러다보니 일상에서 청년들과 가장 많이 나눈 얘기가 책으로 나오거고.... 강의 전문가 되지 마. 정신실은 생활 전문가야' 일상의 연장선에서 다녀오겠습니다. 강의를 하지 않고 사람을 만나 눈을 맞추고 이야기 하고 오겠습니다. 처음 타는 국제선 비행기 따위는 이제 걱정하지 않아요. 다 예습했어요. 비행기, 신발 벗고 타는 거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덥다고 창문 열지도 않을께요.
'어그러진 세상, 자유케하는 복음(Set Free into Fullness)'이 이번 코스타 주제랍니다. 살짝 바꾸고 오려고요. '어그러진 세상, 연애케 하는 복음 (Set Free into Holy Dating)'으로요.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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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omments
  • 프로필사진 iami 2013.07.01 09:25 인천공항에 계시겠군요. 맨밑에 슬쩍 바꾼 문구가 인상적이네요.^^
    근데, 출국 수속은 여권으로 되는데, 비행기 타실 땐 놀이동산처럼 키를 잰다는 걸
    미처 못 가르쳐 드렸네요. 뭐라 그러면 순악질 여사처럼 눈을 부릅 떠주시면
    무사통과 되실 거에요.ㅋㅋ 잘 다녀오셔서 많은 이야기거리 풀어주세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3.07.09 15:45 신고 슬쩍 바꾼 문구로 강의 초반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려고 했던 건데,
    워낙 들을 준비들이 되어 있어서 활용도는 낮았어요.^^
    풉, 키를 재더라도 쫄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글쎄 입국심사 때 영주권자들 줄 서는 곳에 서 있었지 뭐예요. ㅋㅋㅋ
    차차 이야기 보따리 풀어 놓으려고요. 많이 많이 감사해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Shiker 2013.07.01 10:26 신고 imai님의 블로그친구입니다. ^^ 간혹 들어와 읽고 마음이 따뜻해지곤 하는데 코스타를 섬기는 사람으로 '생활전문가로 사람만나 눈 맞추고 이야기하는 것'이 코스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정확히 핵심을 보셨다는 격려의 말씀을 남깁니다. 피곤치 않은 여행되시고 재미난 후기, 기대합니다. ^^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3.07.09 15:48 신고 아, 저도 iami님 블로그를 통해서 자주 뵈었어요.^^
    눈 맞추고 얘기하고, 얘기하다 함께 울고 기도하며 시간 보내다 왔어요. 역시 그 곳에 사람이 있었더라구요. '사랑' 이 필요한 사람이 있었고, 그저 필요한 것은 눈을 맞추고 마음으로 듣고, 사랑을 담아 하고픈 말을 하는 그것이면 족했어요. 가는 길에 Shiker님 댓글을 보고 힘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 프로필사진 동네주민 2013.07.01 16:03 집사님^^ 비행기에서 심지어 안전벨트도 풀라고 한대요!! 결핍과 사랑... 공감합니다. 저도 어제 그 성가대 장로님의 찬양에 뭉클 하더만요. ㅋ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3.07.09 15:48 신고 마음의 큰 짐도 내려놓았으니 동네 주민님 식사 한 번 해요.
    남편 통해 연락드릴께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Zen 2013.07.02 09:30 '신의피리' 님 말씀대로라면 신실 님께서 긴 일정 소화하고 돌아왔는데 되려 집이 깨끗하고, 아이들이 밝아 당황하실 수도 있겠어요. 페북 친구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하는 따뜻한 마음이 코스타 강연에서 분명 전해질 겁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3.07.09 15:51 신고 제가 없는 동안 남편이 회심을 했더라구요.^^
    아닌 게 아니라 거기서도 페북 친구를 만났어요.
    느낌도 Zen님과 비슷하게 멋진 아빠이며 남편이고 좋은 분이셨죠.
    많은 염려들이 기우였고, 참 좋은 시간 보내고 왔어요.
    힘이 되는 댓글 감사드려요.
  • 프로필사진 2013.07.02 14:23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3.07.09 15:52 신고 직접 만나지도 않은 사이에 이렇게 따뜻한 격려를 해주시다뇨!^^
    고마워요. 담에 꼭 스벅에서 다시 마주치길요.
  • 프로필사진 신의피리 2013.07.02 16:49 이제서야 첫 국제선을 타게 된 건, 순전히 남편 때문이겠지.
    진작 여기저기, 국내국외, 가리지 않고,
    부르는 곳에서 웃기고 울리며
    일상에 담긴 천상의 사랑을 나눌 사람이었는데,
    뭘 해도 어설픈 남편 뒷바라지 하랴, 두 아이 키우랴,
    이제서야 첫 국제선을 타게 됐네.

    공항에서 인사하고 뒤돌아서는데
    저 앞에서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벽에 기대서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펑펑 우는 게 보이더군.
    '늦어, 어서 들어가!' 그렇게 들여보내며 멋대가리없이 인사한
    내 자신이 그저 안타깝기만...

    P형 집안을 J형 스타일로 싹 청소하고 정리하고,
    아이들 시험 준비, 숙제 등등 일정을 말해주니까
    이구동성으로 '군대' 같다고 불평이야.
    군대같은 가정이 뭔지 확실히 이번에 가르쳐줘야겠어.

    아내요 엄마인 당신 없이 일주일간 지내는 게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첫 날부터 마음이 무겁네.
    수년 간 집안일을 해 온 아내요 엄마인 당신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말이야.

    모두에게 좋은 경험, 따뜻한 추억이 되리라 믿으니,
    당신도 거기서
    당신이 만난 하나님, 당신이 사랑하는 하나님, 당신에게 내려 준 하나님의 일상의 축복,
    충분히 나누고 돌아와.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3.07.09 15:53 신고 당신의 참회와 회심이 진실된 것인지,
    유효기간 얼마 짜린지 내 지켜 볼것인게.ㅎㅎ
  • 프로필사진 한숨 2013.07.02 19:21 작별 인사에 이렇게 위로를 얻을 수도 있군요.
    28일에 이사하면서 이제껏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마음이 상해서 말씀도 눈동자로만 읽고 있었어요.
    저도 집으로 갈 힘을 내야겠습니다.
    마포구로 돌아오실 때까지 응원할게요.
    근데요, 7박8일 꼭 지키지 말고 붙잡는 사람 있으면 일정을 고무줄처럼 쭉 늘이세요.
    (목사님께서 확 째려보시는군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3.07.09 15:55 신고 지금 쯤 집으로 돌아가셨죠?ㅎㅎ

    그 분이 함께 비행기도 타주시고, 기숙사 방에도, 강의실에도 상담실에도 함께 계셔 주셔서 어디나 집이었어요.

    그런데 집사님 그럼 혹시 마포구로 이사하신 건가요? 아닌가요?
  • 프로필사진 2013.07.03 14:42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3.07.09 15:56 신고 ㅎㅎㅎㅎ
    앞서 가는지, 뒤서 가는지 그건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가서 많이 느끼고 배우고 좋은 시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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