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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지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 본문

마음의 여정

지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

larinari 2009. 4. 4. 16:46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는 어느 분을 만났드랬습니다. 저는 내심 많이 기다리던 시간이었습니다. 딱히 그 분을 만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았던 자리라 책에 대한 얘기를 좀 나눠보려고 했습니다. 헌데... 몇 사람이 함께 앉아 있는 자리였는데 그 분은 핸드폰인지, 아이팟인지, 전자수첩인지... 저로서는 잘 모르는 무슨 물건을 가지고 게임을 하시는지, 문자를 보내시는지 저로서는 역시 모르는 무슨 놀이에 빠져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조차 안쓰는 듯 보였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였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서문에는 공원에서 나란히 한 방향을 보면서 앉아 있는 외로움의 극에 달한 사람들을 묘사합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건 의자를 돌려 앉자는 겁니다. 서로를 향해서, 서로의 눈과 서로의 외로움을 향해서 몸과 마음을 돌리자는 겁니다.  헌데, 함께 있는 시간 내내 그 분은 자신의 놀이에 빠져 있었고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은(특히 저만 그 분하고 잘 모르는 사이라서...)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듯했습니다.


자연스레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서 어떤 부분에 그렇게 감동했을까? 그 책을 읽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고 그 이후에 어떤 점이 달라졌거나, 달라지려고 하는 중일까? 그러면서 자연스레 '사역모드'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분은 사역자 입니다. 그 분이 사역모드일 때는 아마 공동체에 대해서 역설하는 이 책이 감동이고, 설교나 가르칠 때 적용시킬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느꼈을지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같이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사.역.자.들이었기 때문에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따위는 굳이 추구하지 않아도 되는 곳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정정도의 페르조나(가면)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역할이라고해도 무방합니다. 아내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고, 직업인이기도 하고... 기타 등등. 헌데 중요한 것은 페르조나는 '내'가 아닙니다. 필요에 의해서 때로는 필요하지도 않은데 나 혼자 뒤집어 쓴 페르조나가 여럿이지만 분명한 건 나는 페르조나 이상입니다.


사역자는 직업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역자를 직업으로 생각해서 직업정신으로 교회와 사람들을 섬기다고 하면 이거 진짜 심각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장사하시는 분이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해서 사실 고객이 그렇게 존경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아도 아주 친절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들이 직업정신으로 친절하고, 너그러운 듯 보인다면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사역자는 사람들을 예수그리스도께 인도하고자 끊임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건 사역자만의 사명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헌데 자칫 사역자는  친절하고, 사랑하고, 관용하는 페르조나를 직업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사하시는 분이 고객 앞에서는 온갖 친절함과 온유함으로 하지만 집에 가서 사춘기 자녀에게 또는 고용한 점원에게는 그 가면을 집어치고 있는대로 화내고 관용하지 않는다면..... 그거야 뭐, 어쩌겠습니까.


헌데, 사역자라면 다른 것 같습니다. 사역자의 정체성은 -친절함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도, 자기의 이름을 날리는 것도 아니고-모든 사람향한 사랑 자체, 그리고 그 사랑의 전파에 있습니다. 때문에 친절함과 관용과 사랑의 가면을 필요에 따라서 썼다가 벗었다 한다면 그건 큰 일 입니다. 성도들에게, 또는 전도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에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하고 온유하지만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는, 또는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대한다면 이건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헌데 이렇게 심각한 일이 오히려 자연스러움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자신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사랑의 길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자신은 죽을 길로 가는 일인듯 합니다.


남편을 따라 목회의 길에 들어선 지 얼마 안되는 풋내기 사역자 사모로서 저는 몹시 두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깊은 사랑의 길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하는 것이 사명이라 생각하여 죽도록 '사랑하는 척' 하다가 '진정한 사랑'은 날이 갈수록 잊어버릴까봐서요. 처음에 예수님 사랑, 그것이 좋아서 사역자의 길에 들어섰는데 어느 새 예수님의 사랑을 팔아서 내 입지를 다지고, 나 살 궁리를 하는 사람이 될까봐서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조금이라도 확장시키자고 이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지상에서 가장 위험에 곳에 서 있는 것 아닌가 싶어 두렵고 떨리고 슬플 뿐입니다.
12 Comments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9.04.04 17:45 옛날의 내 후배 하나가 그랬죠.
    서정시를 쓰던 시인이었는데 우리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서정시를 쓴다고 존두환 정권을 지지하는 것도 아닌데 단지 투쟁에 동참하지 않고 그런 시나 쓰고 있다고 타도 대상이었다구요. 자유와 민주를 위한 싸움은 좋았는데 사실은 그 싸움이 타인에 대한 억압을 내부에 품고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아직도 그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구요. 자유를 위해 싸우면서 심지어 퇴폐적일 정도로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자들까지도 용납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기는 해요.경이롭고 존경스럽고 또 사랑스럽죠. 난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해도 그 안에 동시에 억압을 가진 사람은 좀 가증스럽더라구요. 그런 자유의 투쟁은 무슨 패권 같아서 영 적응이 안되요. 주제는 다르지만 맥락은 비슷한 듯 해서 몇자 적었어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4.04 18:32 같은 맥락 맞습니다. 사실 이 글 쓰면서 언젠가 털보님께서 해주신 얘기도 떠올랐습니다. 감옥에 들어온 사식을 옆사람 아랑곳 없이 혼자만 먹더라는 어느 막시스트 얘기 말이죠. 목이 터져라 사랑을 말하는데 내게 사랑이 없고, 삶을 불태워 자유를 좇는데 내게는 진정한 자유는 없고 자유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는 두려움 밖에 없다면... 게다가 다른 사람은 그 사실을 다 아는데 그 나만 모른 채 살고 있다면... 정말 슬픈 일인 것 같아요. 시간이 갈수록 그런 사람이 될까봐 몸서리 치는 때가 있어요.
  • 프로필사진 주안맘 2009.04.04 21:48 사모님글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오가네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곳 서문이 떠오르기도 하구요 정말 사역자의 아내로 살아가면서 사랑하는척 친절한척 온유한척 배려하는척하다가 시간이 훌쩍지나 정작 내 모습에서 예수님의 사랑이 다 빠져나가 있진 않을까 두렵고 떨리네요 사역자의 아내지만 나의 나됨이 주님의 은혜임을 매순간 알지못하고 산다면 우리네삶이 제일 불쌍한 인생이 될거예요 그쵸?
    요즘 저는 주님께 묻는답니다 주님 나를 창조하시고 당신이 빚으신 본연의 그대로 박소윤의 인생을 잘 살고 있는지요?하고요....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어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4.04 22:05 그르게요. 계속 목회를 할 지 어쩔 지 모르겠지만 한다면 그야말로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맞아요. 내가 본연의 나로 살고 있는가?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그 물음을 늘 정직하게 기도 중에 스스로에게 묻는 거 꼭 필요하겠어요. 서로를 잘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로 해요.
  • 프로필사진 forest 2009.04.04 22:36 아유~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왜 따신 밥을 사주고 싶고,
    불러내서 신나게 고음불가를 들려주고 싶을까요?

    근데 이 글 많이 슬프고 두렵다...
    저는 이미 사역자가 된 분들만 보다가 같이 예배드리던 분 중에
    사역자가 되신 분은 두 분 밖에 없어요.
    그래서 지켜주고 싶고, 아껴주고 싶고, 사랑해주고 싶어요.
    두렵지만, 진정으로 두려운 일이지만,
    옆에서 지켜주고 아껴주는 분들이 있다는 거 기억해주세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4.06 09:19 언감생심 이런 표현을 하기도 참 외람된 말이지만.
    저는 아주 조금, 헨리 나우웬 그 분이 어이하야 하버드의 교수직을 버리고 캐나다의 장애인 공동체로 들어가셨는지, 윤구병선생님이 교수직을 버리고 변산의 시골로 들어가셨는지 알 것 같아요.
    그 분들이 들으시면 '니가 알긴 뭘 알어' 하실 일이지만요.ㅋㅋㅋ

    그나저나 고음불가는 빠른 시일 내에 들어야겠어요.^^
  • 프로필사진 forest 2009.04.06 11:08 고음불가, 빠른 시일내로 듣자니까요.^^

    저는 김종일목사님을 뵈면서 목사이면서 농사꾼이신 모습이 좋아보였어요.
    오이 농사, 토마토, 고구마, 온갖것을 키우시면서
    말씀도 키우시는 것 같았어요.
    말씀이 책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게 한 분이예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04.06 22:25 신고 먹고 사는 문제, 결혼하고, 애 낳아서 키우고, 돈 벌고, 정치적인 신념을 갖고....
    이런 것과 동떨어진 복음은 진정한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울림으로 다가가질 못한다는 생각이 갈수록 들어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해송 2009.04.05 21:56 신고 (사역자.)
    (직업.)

    교역자들에게 구분이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분명히 확실한 구분이 필요한 것이네요.

    또 어려운 것 하나.

    목사도 사람이다.라는 것.

    사위가 목사라서 노파심에 걱정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4.06 09:22 그르게요. '목사도 사람이다' 이걸 목사님 자신, 또 목사님을 보는 성도들 모두 그대로 인정하고 들어가면 모두에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목사도 똑같이 연약한 사람이고 진짜 목자이신 그 분을 닮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 다만 조금 더 그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는 사람이라는 걸 모두가 인정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연약함을 드러내고, 함께 기도하고, 그렇게 누구에게나 진실할 수 있으면요.
  • 프로필사진 뮨진짱 2010.06.25 22:03 모님 댓글 읽고싶어서 지금 네이버에서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검색했더니
    이 포스팅으로 연결되더라구용.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아 아직도 울짝꿍쌤은 끝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올라오라고 인터폰했더니 동영상 편집 때문에 그런지 올라오지 않네요.
    내일도 이 곳에 새벽에 도착해야하는데 -_ㅠ..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0.06.26 10:18 신고 이 시간까지도 퇴근 전이었구나.ㅠㅠㅠㅠ
    지금도 또 출근해가지고 일하고 있는 거?
    아휴, 정말....

    당직 선생님과 얘기가 잘 돼서 좋은 시간 함께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뮨진 덕분에 나도 오랫만에 이 글 다시 읽고,
    본 김에 조금 수정도 했다. 나도 감회가 새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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