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의식에는 노래 주머니가 있다. 온갖 노래가 다 들어있고, 스치듯 지나는 자극에 툭툭 튀어나온다. 아이들 어릴 적엔 함께 하는 일상이 노래였다. 길 가다 민들레를 보면 바로 재생 버튼. "길가에 민들레도 노랑 저고리, 18개월 우리 채윤이 노랑 저고리, 민들레야 방실방실 웃어보아라, 우리 채윤이 방실방실 웃어보아라"  놀이터에서 시소에 앉으면 "시소 시소 올라가면 푸른 하늘 내려오면 꽃동산 재미나는 시소" 언제 어디서든 노래가 튀어나왔다. 단어 하나, 스치는 장면 하나가 노래를 불러낸다. 직접 자극이 아니어도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찬송가도, 가요도, 팝송도, 가곡도 장르 불문으로 흘러나온다. 지금은 기능이 저하되긴 했지만 거의 모든 찬송가의 가사를 4절까지 외울 수 있고, 다른 장르의 노래 가사 암기력도 이에 준한다. 음악 치료사가 되지 않을 방법이 없는 운명이다.

 

남편과 양평 치유의 숲을 걸었다. 야생의 산길이었다. 숲은 곳곳이 노래 재생 버튼이 숨겨진 곳이다. 이제 내려가자 하고, 방향을 돌려 나오는데 갑자기 바짓가랑이 붙잡는 흰색 꽃 한 무더기. 찔레꽃이다. 어릴 적 우리 집 마당에는 꽃밭이 있었다. 가장 안쪽에 가장 큰 꽃나무가 담 쪽으로 기울어져 서있었는데 찔레꽃이었다. 장미, 나리꽃, 붓꽃, 작약, 백일홍, 샐비어, 달리아,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 많은 꽃들이 피고 지고 했다. 아침이면 아버지가 수돗물에 호스를 꽂아 꽃밭에 물을 주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어쩐지 그 꽃밭은 아버지 것 같았다. 한데 유일하게 찔레꽃은 엄마 소유로 기억이 된다. 나무가 커서 꽃을 많이 피웠는데, 꽃이 만개하면 가시 많은 그 찔레꽃을 꺾어 교회 강대상 옆에 꽂아놓곤 했다. 손재주가 없는 엄마가, 어떻게 어떻게 화병에 꽂아놓은 품새가 예쁘게 보이지 않았다. 꽃꽂이와 엄마는 도대체 어울리는 조합도 아니다. 그래서 더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찔레꽃은 엄마다. 

 

찔레꽃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재생 버튼이 눌렸다. 실은 엄마 돌아가시고 내내 뱃속에서 울리고 있는 노래다. 아니다. 입원 후 엄마로부터 격리된(그렇다, 이제 생각하면 엄마가 아니라 내가 우리 엄마에게서 격리된 것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는 자나 깨나 그리움의 배경음악으로 깔려 있었다. 장례식 후 음원 사이트에서 이 노래를 부른 모든 가수를 검색해서 들었다. 같은 멜로디의 '가을밤'이 내겐 더 익숙한 노래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 아이들에게 동요를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부르던 노래이기도 하다.

 

가을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 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가을밤 외로운 밤 잠 안오는 밤
기러기 울음 소리 높고 낮을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어린 마음에 가사가 절절하게 와 닿았었다. 사실 난 분리불안이 있어서 엄마가 떼놓고 어디 가질 못했었는데. 장날 장 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울고, 엄마는 오지 말라고 쫓고, 울며 따라가다 또 혼나고. 그랬던 기억이다. 늘 그리웠다. 사실 난 엄마보다 아버지를 좋아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어릴 적에도 그리 생각했었는데. 엄마 몸이 내게서 멀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랬었다. 그러니 초등 저학년 때부터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세'는 마음에 백 번 공감했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부르는 아이였는데, 좋아하던 노래들이 꼭 다 저랬다. 초등학교 때 매년 학교 대항 예술제가 열렸다. 노래, 무용, 외에도 여러 분야가 있었다. 학교 대표로 군 교육청 대회에 나가 입상을 하면 도 교육청 대항에 나가고, 거기서도 입상하면 예술제를 무대에 서게 되었다. 3학년 때부터 학교 대표로 독창 부분에 출전하곤 했다. 지정곡 한 곡, 자유곡 한 곡을 불렀다. 5학년 때 자유곡이 '은행잎'이다. 독창 지도하시던 선생님 말씀이 잊히지 않고 남아 있다. 대회 준비를 하며 자유곡을 고르느라 이 곡 저 곡을 부르는 중이었다. 몇 곡을 부르다 이 노래 '은행잎'을 부르고 났더니 그러셨다. "야, 너는 참 애가 무슨.... 이런 노래를 이런 감성으로 부르냐. 너 참 감수성이..." 그때 감수성이란 말을 처음 배웠다.

 

은행잎

가을 바람 솔솔솔 불어오더니
은행 잎은 한 잎 두 잎 물들어져요
지난봄에 언니가 서울 가시며
은행잎이 물들면은 오신다더니 

 

어쩐지 이런 노래들이 좋고 잘 불러졌다. 부재, 상실, 그리움이 담긴 가사들이 어린 마음에 쏙쏙 들어왔다. '은행잎'을 불러 입상을 하고 6학년이 되었다. 다시 예술제를 준비할 때가 되었을 때 자유곡 선정을 위해 여러 곡 불러보지도 않았다. 내 노래로 한 곡을 정해서 가져오셨다. '아빠 생각'이었다. 잘 불렀고, 입상을 하고 다시 예술제 무대에 섰다. 그리고 다음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자유곡 선정을 잘못해서, 내가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가끔은 시차의 기억에 오류가 나기도 했다. '아버지 돌아가신 일이 먼저고, 그 때문에 이 노래를 선택했던 거지!' 6학년 대회 이후로, 다음 해 아버지 돌아가신 후 이 노래 역시 늘 깔린 내 마음의 BGM이었다.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가 다시 그리워 아프다. 가슴이 쓰리다. 이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며 울었던 어린 날의 내가 가엾어 가슴이 쓰리다.    

 

아빠 생각

봄이 오니 제비도 돌아왔건만
멀리 떠난 우리 아빠 언제나 오시나
기적소리가 울릴 때면 설레이는 이 마음
아아 우리 아빠 보고픈 우리 아빠

 

내가 사랑하던 모든 노래가 이렇듯 운명을 끌고온 것일까. 어쩌자고 나는 어릴 적부터 사무치는 그리움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엄마 떠난 지 70여 일이 지났다. 엄마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엄마가. 결국 나는 이렇게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말았구나. 엄마가 보고 싶다. 양평 숲에서 본 그 찔레꽃을 한 잎 따먹고 올 걸 그랬나. 꽃잎에서 엄마의 맛이 났을까. 엄마, 이렇게 말고  "엄마 엄마" 꼭 두 번을 부르고 싶다. 늘 마음에 울리는 저 노래 탓인가 보다. "엄마 엄마" 불러도, "엄마 엄마" 두 번을 다시 불러 네 번을 불러도 "와이야~" 하는 답이 없다. 엄마 엄마, 부를 때마다 휑하고 부는 찬바람에 마음만 아득해질 뿐이다.

 

'세상에서가장긴장례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몸이 슬프다고 말할 때  (0) 2020.06.11
고아 의식, 딸  (4) 2020.06.06
찔레꽃, 그리움의 노래들  (0) 2020.05.25
고아 의식, 아들  (0) 2020.05.20
어버이 날에_기름 한 병에 담긴 은혜  (2) 2020.05.08
고아 의식  (0) 2020.05.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