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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SS 영혼의 친구

참회록

larinari 2017. 6. 3. 22:23




주일 예배 시작마다 '지난 한 주를 지내며 지은 죄를 회개'하는 시간이 있다. 몇 주째 같은 내용의 기도이다. 그 시간, 회개의 자리에서면 비로소 생각나는 죄목이다. 지난 주에는 그 반복 패턴이 인식되어 화들짝 놀랐다. 반복하는 회개가 참 회개인가!  '다시 그러지 않겠습니다. 아니, 이러고도 다시 그럴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기도했다. 남편을 강압하려는 욕구, 남편을 통제하지 못해 안달하던 분노가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음을 인식한다. 맨 앞자리 앉은 남편의 뒷통수를 바라보는 것이 아프고도 슬프다. 기도의 자리에 서서 주님 얼굴 앞에 서면 차거운 분노로 딱딱해진 내 깊은 마음이 드러나고 만다.


매일 아침 남편은 큐티 본문에 따라 짧은 묵상글을 교우들에게 보내곤 한다. 지난 주 어느 날에는 이현주 목사님의 글을 인용하여  '슬프고 착하게 한세상 살다가고 싶다'고 했다. 허세 부릴 줄 모르고, 강압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이미 충분히 착하여 충분히 슬픈 그의 삶이 내겐 너무 아프다. 둘을 알면 하나 정도 안다 하고, 하나를 알면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며 자기를 감추고 또 감추는 이 사람을 자꾸 다그치게 된다. 목회자들 앞에서 '진실한 나'로 사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고 강의한 적이 있으면서 정작 남편의 진실함, 진실함의 댓가로 슬픔 가득한 얼굴을 보는 것은 힘겹다.


교인들은 설교 중 적절한 타이밍에 '아멘'을 외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남편은 설교의 논조를 우~ 몰고 가다 아멘이 나올 클라이막스에 몰고 힘을 탁 꺾어버린다. 분위기로 아멘을 조장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그러는 걸 안다. 토요일 저녁이면 여느 목사가 그렇듯 설교를 놓고 씨름 한다. 밥 먹고 하는 일이 마음 들여다 보는 일이라 아무 말 안 해도 그의 내면의 전쟁터가 보이는 것 같다. 아멘을 조장하지 않지만 깊은 곳의 아멘을 끌어내고자 하는 그의 높은 기준을 나는 안다. 남편은 사람들을 통제하지 않으려 하는데 나는 남편을 통제하려 한다. 치얼업 베이비, 치얼업 베이비. 좀 더 힘을 내!! 응원이 아니라 강압이다. 설교는 물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강압할 줄 모르는 남편에게 '강압하라'고 나는 강압한다.


그것을 회개한다. 진실해지려는 그를 진실하지 말고 허세를 부리라고 강요하는 내 못된 강압을 회개한다. 지난 주에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 기도했다. 오늘 토요일, 남편이 채윤이에게 '서현역에 가서 책 하나 사다줘' 빌듯이 부탁을 한다. 채윤이는 지금 알바로 바쁜 아이. 설교준비에 필요한 책인가? 싶어 내가 사다주겠노라 했다. 그건 아니고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단다. 어차피 밤새 설교준비 해야 할 텐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 알라딘에 주문해줄게. 했는데 아니란다. 간절함이 마음으로 다가와서 기꺼이 책을 사러 나갔다. 도종환의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않는다>이다. 요즘 도통 책이 읽히질 않는데 이 책은 읽힐 것 같단다. 걸어서 걸어서 서현역에 다녀왔다. 오는 길에 하도 다리가 아파 중간에 마을버스를 탔다. 도대체 무슨 책이야? 책을 펼쳐 서문을 읽었다. 읽다가 눈물이 터져 교회 앞 공원을 울며 걸어왔다.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서문 일부를 한 땀 한 땀 쳐보기로 한다.  남편을 향한 참회록이다. 내일 주일 예배에서 드릴 회개기도를 미리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삶, 나의 시>   도종환


나는 권세 있고 유복하고 많이 배운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선한 심성을 불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마웠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친척 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보고 싶어 편지를 자주 썼습니다. 편지 앞에 계절 인사를 쓰기 위해 바람과 별과 구름과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살폈고, 그래서 자연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난해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참고서 한 권을 사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문제집을 풀고 있을 때 매일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고 싶다고 말하면 보내줄 수 있는지 상의할 부모가 옆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등록금이 면제되는 지방 국립사범대학에 진학했고, 화가가 되고 싶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 좌절이 문학으로 방향을 틀게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내 문학을 밀고 가는 가장 큰 힘은 좌절입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틀 속으로 들어가기보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눈 밖에 나고 미움과 따돌림을 받았지만 도전하고 깨지고 다시 시작하던 열정이 있어서 청춘의 날들을 뜨겁게 보냈습니다.

나는 뛰어난 실력이나 재주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눈에 띄는 특별한 인물이나 앞서가는 사람도 아니어서 나를 눈여겨봐주는 이들도 없었습니다. 이른 봄에 피어 사랑받는 봄꽃은 아니지만, 가을 들판의 구절초처럼 늦게라도 혼자 꽃피고자 했습니다. 늦게 꽃피어도 오래오래 아름답고자 했습니다.

(중략)

아직도 내 시를 제대로 된 문학으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평론가와 문인이 많다는 걸 압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약점과 부족한 점이 내 시에 있다는 걸 나도 압니다. 그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꽃들이 그러하듯 흔들리면서 꽃을 피우는 겁니다. 흔들리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꽃 한 송이를 피우듯 그렇게 살았습니다. 
살면서 수많은 벽을 만났습니다. 어떤 벽도 나보다 강하지 않은 벽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벽에서 살게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고, 벽에서 시작하는 담쟁이. 원망만 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잎을 찾아가 손을 잡고 연대하고 협력하여 마침내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는 담쟁이처럼 살기로 했습니다.
가난과 외로움과 좌절과 절망과 방황과 소외와 고난과 눈물과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내 문학은 시작되었고, 그것들과 함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시인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많은 아픔의 시간을. 거기서 우러난 문학을. 나의 삶, 나의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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