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1월 21일 명일동 현승이네 집에서
 


채윤이가 무거운 얼굴과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다음 주에 있을 시험을 위해서 사회공부를 하다가 맘이 상한 것이다.
문제를 풀다가 방금 외운 걸 단답형으로 푸는 과정에서 미성숙한 엄마의 뚜껑이 열리고
열린 뚜껑으로 새어나온 김에 아이의 맘을 데였다.
늘 그렇듯 '왜 답은 하나냐?'며 자기가 쓴 답이 왜 틀리다고 하냐며 채윤이가 울었다.

헌데 채윤이가 운 건 단지 그 때문이 아님을 안다.
엄마의 부적절한, 이해할 수 없는 분노폭발에 마음을 다친 것이다.

엄마의 부적절한 분노폭발은 단지 방금 외운 걸 어뚱하게 써놓은 것 때문은 아니었다.
시험을 앞두고 자기를 시험공부 시켜달라는 채윤이. 30점을 맞기 싫다며 공부를 시켜다라는 거였다.
그렇게 요구할 뿐,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서 노는 걸 멈추는 것도 어렵고 가만 앉아 문제집 푸는 일에 대해서도
아직 의지를 발동할 줄 모른다. 그 의지를 조절해주는 것이 엄마의 몫이다.
이건 엄마가 너무 싫어하는 일 아닌가? 공부시키기 위해서 애하고 싸우는 일 말이다.
싸우느니 공부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채윤이 자신은 문제집 하나를 풀어야 한단다.

그렇다면 시험공부를 위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엄마인 나다.
어르고 달래고 윽박질러서 해야하니까.
그게 너무 싫어서 벌써부터 마음이 갑갑해왔다. 안시키면 될 터!
허나 채윤이의 자존심이 아주 낮은 점수는 받고 싶이 않다. 그리고 그 정도는 도와줘야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된다.
이 지점에서 놀이처럼 즐겁게 공부를 해보자는 식의 해결방법은 이미 물건너 갔다.
놀이는 마음의 평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고 엄마는 이미 스트레스 만땅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이 시험공부를 시작하자마자 첫 문제에서 폭발한 것이다.

뒤끝 있는 엄마는 마음을 못 추스르고 채윤이는 자겠다며 침대로 갔다.
나 자신이 미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 내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잊어보고자 분주히 거실정리를 하고 있는데
채윤이가 '엄마' 하고 부른다.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채윤이는 '엄마' 하고 불러서 '엄마 잘 자' 할 것이다.
엄마가 돼서 '분이 나도 해가 지도록 품지 말라'는 성경의 말씀이 마음에 울리는데도 다다가 아이의
마음을 만져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그런 찰나에 챈이가 먼저 '엄마'하고 부르며 손을 내미는 것이다.
부끄러움과 자책과 자신에 대한 분노가 날카롭고 퉁명스러운 '왜애?' 나왔다.
채윤이 표정이 다시 어두워지며 아주 작은 소리로 '잘 자' 한다.
그러곤 채윤이 이불을 머리까지 덮는다. 가슴이 무너진다.

아주 잠깐 멍 때로 서 있다가 침대 위로 올라가 채윤이를 끌어 안았다. 아~ '미안해' 하는 말도 구차하다.
'채윤아. 엄마랑 채윤이는 분명히 다르고 생각도 다른데 엄마가 엄마만 옳다고 해서 미안해'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잘못 생각해도,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알고 계셔도, 우리 생각을 다 인정해 주시고
받아주시는데..... 엄마는 채윤이한테 그렇게 하질 못해. 미안해 채윤아' 더 긴 말을 못하고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엄마가 자꾸 채윤이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아주 작은 소리로 '괜찮아' 하는 채윤이 눈이 졸린 건지 슬픈 건지 벌개진다.

내 절망은 그것이다.
내게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간섭의 달인 엄마.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일단 안 된다고 해놓고 보던 엄마.
하나님이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조건 하나님은 싫어하실거라는 죄책감. 뭔가 더 거룩한 것을 하는
게 좋을거라는 강박관념.
그리고 엄마가 늘 말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그래서 하나님을 오직 두려워하며 산 세월이 40여년 이다.
작년에 비로소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내게 '사랑의 하나님'으로
알리고 싶어서 안달을 하셔는 지도 알게되었다. 그렇게 살아 온 세월을 돌아보면 흘린 눈물, 차올라오던 분노.
작년은 인생의 오춘기 처럼 어린시절 엄마를 향해 다시 한 번 반항하고 다시 한 번 용서하느라 힘겨운 시간들이었다.

하나님은 그저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분인데... 무엇이 되라고, 어떻게 되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너의 존재만으로도 진정 행복하다고 하시는 분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으로 하나님상을 그리게 된단다.
밝은 해를 가리는 먹구름처럼 나의 존재가 그 사랑의 빛을 가리는 것은 아닐까?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 그저 온전히 안기는 것이 그 분의 바램인 것을 왜곡시키진 않을까?

슬픔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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