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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참 아름다운 곳이라 본문

기고글 모음/내 맘에 한 노래 있어

참 아름다운 곳이라

larinari 2018.08.24 08:16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21

 

 

경험과 그것이 만들어놓은 상상력의 협소함이란! ‘, 이 찬송 들어봐.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뭐가 생각나?’ 지금까진 물어본 사람들에겐 100% 합의된 정답이다. 야외예배! 그렇다, 우리에게 이 찬송(478)은 야외 예배다. 이에 견줄 야외예배 찬송이 한 곡 더 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79) 3절 밖에 안 되고 찬송 길이도 짧아서 더 자주 뽑히는 곡이 참 아름다워라일 것이다.

 

여러 교회 청년부에 강의를 다니며 다양한 공동체 문화 일일체험 하는 것이 큰 기쁨이다. 특히 찬양시간은 흥미진진하다. 교회마다 다르고, 인도자마다 다르고, 음악적 수준도 천차만별이인데 그 모든 수준이란 것들과 상관없이, 때로 나의 취향도 뛰어넘어 가슴으로 훅 들어오는 찬양이 있다. 여름 수련회 강의로 갔던 작은 청년부의 찬양시간이었다. 기타 한 대, 키보드 한 대와 찬양 팀 서너 명이 인도하는 작은 찬양 팀이었다. 싱어 중 하나가 솔로를 했다.

 

참 아름다운 곳이라 주님의 세계는 정말로 내가 나답고 솔직할 수 있는 곳

 

정말로 내가 다답고 솔직할 수 있는 곳이라니, 그렇지, 그런 곳이 있다면! 아슬아슬 떨리는 목소리의 찬양이 마음으로 쑤욱 들어왔다. 이 수련회의 주제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두려움 없이 내가 나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 아닌가. 낯선 멜로디이지만 마음으로는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곡이 478. 싱어들 소리가 몇 파트로 쫙 갈라지더니 금세 화음으로 만났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이다. 수십 년 선입관이 깨지고 야외예배 느낌은 싹 지워졌다. 바깥 풍경이 아니라 내 마음의 풍경으로 시선이 옮아간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는 마태복음의 말씀일 터.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6:28-29) 예뻐지고자 뭘 더 하지 않아도 그냥 예쁜 백합화 이야기이다. 하나도 꾸미지 않았는데 저 화려한 임금 솔로몬의 옷 100벌 보다 낫다는 것이다.

 

내가 나답고 솔직하게 있어도, 애쓰지 않고 있어도 정말 저렇게 아름답다면 뭘 더 바라랴. 그나마 회사보다는 안전한 교회에서 조차도 포장지 없는 나로 있기는 쉽지 않다. ‘에잇, 너무 말을 많이 했잖아. 조금만 참을 걸 그랬어. 너무 나대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아냐?’ ‘나는 왜 이리 소심하고 바보 같을까? 아까 그 말을 했어야 하는 건데. 다들 한 마디 씩 하는데 질문 받고 나만 말을 못했어. 정말 한심다고 생각했을 거야.’ 매순간 가장 적절한 모습이고자 애쓰는 우리의 내면은 쉴 새 없이 손을 놀려 길쌈질 하는 형국이다.

 

지금으로 충분해,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이 좋아! 이런 말이 좋은 건 안다. 내게 이런 말 들려주는 사람도 없거니와 그다지 와 닿지도 않는다. ‘말은 그렇게 하지. 내가 정말 나다운 모습 보여줘 봐? 네게 맞추려고 지금 이 순간도 애써 짓는 표정과 말, 모두 거두고? 실망하여 나가떨어질 걸. 그나마 내가 이거라도 하니까 나를 받아주는 거 아니야?’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의 있는 그대로를 싫어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이런데 아름다운 공동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만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바깥 풍경에서 내 마음 풍경으로 옮겨갔던 시선은 이제야 말로 다시 밖을 봐야 하는 시점이다. 고개를 들어서 들의 백합화를 보고, 심지어 공중에 나는 새에게도 눈길을 줘보라는 예수님의 뜻을 알겠다. 백합은 백합이 되려하지 키 큰 해바라기를 선망하거나 매혹적인 장미가 되려 하지 않는다. 새는 그저 새로서 창공을 날며, 시냇물을 흘러가고, 나무는 나무로 서 있다. 자연의 모든 것은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끝도 없이 비교하고, 지금의 나보다 예전의 나, 더 나아진 미래의 나에 마음이 팔려있는 것은 사람들뿐이다. 그래서 때때로 야외 예배가 아니라도 자연을 바라보아야한다. 백합이 백합이고 참나무가 참나무이듯 너도 너 자신으로 충분해. 너 자신이 되어라, 하시는 주 음성이 거기서 들려, 내게 전하시는 바 그 뜻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나 알 듯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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