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이가 예고에 합격했다는데 별로들 안 놀라시네요.

이건 좀 깜짝 놀랄 일인뎁쇼.

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일궈낸 합격이라서 그렇습니다.

조금 긴 이야기를 시작해봅니다. 

 

일단 예중 입학부터 거슬러 올라가야겠네요.

초3, 4부터 한다는 예중 입시 준비거든요.

5학년 가을, 입시 1년을 앞두고 채윤이는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나 예중 가고 싶어.

열심히 할게. 어려운 거 알아. 힘든 것도 알아. 그래도 나 예중 가고 싶어. 엄마.

어르고 달래고 엄포를 놓곤 하다가 어차피 1년 준비해서 될 일이 아님을 알고 허락했습니다.

"14층 누나~아, 14층 누나 왜 요즘 우리랑 안 놀아?" 팬들의 성화에 아랑곳 하지 않고.

팬들이 아파트 복도를 뛰어 다니며 '경도-경찰과 도둑이라는 잡기놀이'를 할 때도

개의치 않고 피아노를 쳐댔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벽을 뚫고, 곡절 끝에 예중에 입학했습니다.

 

불과 1 년 준비해서 들어간 예중,

달랑달랑 꼬리 잡고 들어간 예중.

녹록치 않았습니다.

15개월부터 정확한 음정으로 '주는 나의 좋은 목자'를 부르고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불렀제낄 땐 얘는 독보적인 능력을 타고났다고 확신했었드랬습니다.

예중에 가보니 그런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었고 중요한 건 또 그게 아니었습니다.

시간과 돈으로 쌓은 내공.

그것이 약한 채윤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깨 펼 날이 없었습니다.

예중생으로 좋은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예중 가기로 결정하고 야심차게 입시준비 시작할 무렵.

강동에서 낯선 마포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한 다음 날 딱 하루 피아노 연습했는데 다음 날 바로 아래층에서 올라왔습니다.

고개를 여러 번 숙여 죄송하다, 조치를 취하겠다 했습니다.

교패(현관에 붙이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알리는 스티커)가 밉더군요.

그날로 그나마 아쉬운대로 사용하던 업라이트 피아노는 '제니오'라 불리는 기계를 떡 붙이고

'사일런스 피아노'가 되었답니다.

이걸로 연습을 한다는 것은 반드시 실기 꼴지를 하고 말겠다는 의지와도 같았지요

 

게다가 엄마(만 거명하는 건 뭔가 혼자 독박 쓰는 기분이니까) 아빠는 최악이었습니다.

수업료와 최소한의 레슨비에도 매달 입을 쩍쩍 벌리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구요.

아이의 실력,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이 시대 성공신화의 3대 요소라는데.

실력과 재력은 둘째 치고, 엄마의 정보력은 꽝인데다가 정보를 모을 의지도 없었답니다.

정보를 얻다가 아이를 잡느니 정보원 엄마들과의 연을 끊겠다며 고상을 떨지 않나.

저명한 피아노과 교수님이 근거리에 있는데도 줄을 대볼 생각조차 못하는 찐따 엄마라니요.

등교부터 하교, 하교로부터 학원, 학원으로부터 레슨까지 따라 로드매니저 엄마도 있다던데

집에서 합정역까지 5분 태워주는 것을 가지고 아침마다 투덜대던 엄마였습니다.

한 일 년 전에는 깁스한 발로 지하철 타고 한 시간 거리 등하교를 하기도 했지요.

엄마라는 여자가 독하기도 하지요.

 

3학년 3월에는 최악의 위기가 찾아 왔지요.

버티고 버티던 채윤이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우직하게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또또또 연습해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아아아 악악악악악아' 밤의 여왕을 부르던 음악 영재 두 살 채윤이는 어디로 가고

앞뒤가 꽉꽉 막힌 음악 둔재가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기 적에는 물론이고,

놀며 피아노 배우던 시절 소나티네를 쳐도 근육이 먼처 춤추던 아이였는데,

무대에만 서면 로봇이 된 머리부터 손가락 끝까지 통으로 움직이는 로봇 같았습니다.

고민하고 울고 불고 하던 채윤이는 포기하겠노라 했습니다.

독한 엄마는 말했습니다.

"포기해도 좋아.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남은 1년은 열심히 하고, 그 다음에 포기해.

채윤이 니가 예중을 선택했을 때는 3년을 선택한 거야.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올해는 열심히 하는 거야. 채윤아, 니가 잘 알듯 선택에 대해선 책임이 있는 거야. 올해까진 책임져야 해. 그리고 채윤아 너 혼자 애쓰도록 하지 않을게. 엄마가 연습실도 구해주고, 앞으로 교수님 레슨도 하자.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다 도와줄게. 채윤이도 최선을 다해 연습해."

모든 걸 떠나서 중학교 3년을 패배감에 절어 끝낼 수는 없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3학년 2학기, 입시를 앞둔 실기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은 채윤이는 바로 담임샘께 갔답니다.

"선생님, 등수가 안 나왔어요."

"거기 형광펜 칠한 부분이 등수야. 채윤이 너 이번에 정말 잘했어"

"어.... 여기 앞에 한 자리수가 없는 거 같은데요......이게 그럼 정말 제 등수..... 흑흑흑"

레슨 선생님께서 이 모의고사를 '복면가왕'이라고 하셨습니다.

입시와 똑같은 환경을 위해 심사위원석과는  막을 쳤고, 

이제껏 실기시험 때마다 채점하던 분들이 아니라 외부 교수님들이 심사를 했답니다.

선입관 없는 심사에서 최저 비용으로 예중을 다닌 채윤이는 한 자리 수 등수를 받았습니다.

 

채윤이는 자신감을 회복했고,

열심히 하면 결국 실력이 나아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엄마는, 교수님 레슨을 받는 것이 실력과 성적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채윤이는 예고에 합격했습니다. 

합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았던 지난 3월의 선택이며,

그 누구의 강요나 강압 없이 자신과의 싸움과 같은 연습시간을 견딘 것입니다.

채윤이는 이렇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말하자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3년 간의 영아티스트 분투기 입니다.

 

 

 

# '열여 섯 채윤이의 진로선택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다음 글 예고. <채윤이는 예고에 가지 않습니다>

  다음 글  업데이트 시기는 댓글 달리는 거 봐서 결정하겠씀미다.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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