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생 채윤이가 생애 첫 투표를 했다.

저렇게 간절히 선거권 행사의 날을 기다리는 아이가 있을까 싶었는데.

2020년 19대 총선에서 어마어마한 한 표를 행사했다.

 

2002년 대선 때 채윤이 나이 세 살이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 수민네로 개표방송을 보러 갔다.

방송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추운 겨울이 춥지 않았다.

세 살 채윤이가 우리 앞에서 춤을 추며 걸어갔다.

"창 바꿔보니 창 바꿔보니 희망이 보인다 창 바꿔보니 창 바꿔보니 노무현 대통령"

"두우 번 생각하며언 노무현이 보여요오~"

노래와 구호를 똑 부러지는 발음으로 따라 하던 채윤이.

그 날 그 밤의 벅차오르던 마음, 우리 채윤이의 춤과 노래 잊을 수 없다.

때가 때이니 만큼 식탁에서 그때 얘기를 자꾸 하게 되는데 현승이가 끼질 못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현승아, 너도 있었어! 엄마 뱃속에 현승이 있었어!"

6개월 태아로 현승이도 함께 한 시간이었다.

아, 그리고 생각해보니 민주당 경선 기간에 마음이 절박하여 금식기도를 했었다.

얼마나 절박하면 임산부가 금식기도 했다고 떠벌이던 기억도 새록새록.

 

2004년 탄핵정국 때 아기 현승이 부모님께 맡기고 다섯 살 채윤이 데리고 광화문에 갔었다.

"타낵꾸요, 민쥬수호, 타낵꾸요, 민쥬수호!" 
제 성격대로 가열차게 외쳤다.

돌아오는 길에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채윤이가 아빠 어깨에 올라앉아 화통 삶아 먹은 소리로 노래를 불러젖혔다.

"갓써 제에자 사므라 셋쌍 마는 사람드를 셋쌍 모오든 영호니 네게 달련나니~~~이"

어린 채윤이와의 잊지 못할 몇 개의 장면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계셨다.

 

2020년 총선.

채윤이의 정치적 입장은 이제 엄마 아빠와 같고 또 다르다.

뉴스를 스스로 보고, 책을 찾아 읽고, 역사를 공부하고, 제 마음에 끌리는 곳으로 표를 던진다.

혹여 칸을 밀려서 찍을까 손이 떨렸다며 나와서도 "잘못 찍은 건 아니겠지?" 걱정을 한다.

 

내 절박함과 초조함도 채윤이와 다르지 않다.

2002년 대선 때와 다르지 않고, 내 인생 첫 선거 87년 대선 때와도 다르지 않다. 

선거는 내게 간절한 기도다. 

 

사전 투표로 먼저 기도하고, 오늘 하루도 기도의 마음으로 보낸다.  

"잊지 않겠습니다" 가방에 붙이고 다니던 약속을 떠올리며,

4월 16일을 기억하는 기도와도 한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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