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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와요 : 나의 성소 싱크대 앞 본문

낳은 책, 나온 책/<나의 성소 싱크대 앞>

책 나와요 : 나의 성소 싱크대 앞

larinari 2016. 6. 25. 21:02




넷째 출산이 아니고 네 번째 책 출간입니다.

아기의 이름 아니고 책의 제목은 <나의 성소 싱크대 앞>입니다.

편집장님과 톡을 주고받다가 '저를 가장 많이 닮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 같아요'

라고 했습니다.

앞의 세 책이 저의 '어떤 면'을 재료로 하여 쓴 글이라면,

이번 책은 저라는 사람의 거의 모든 면을 다 취합하여 엮은 글이기 때문에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일상'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성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저만의 답이기도 합니다.

주어진 오늘을 착한 마음으로, 가장 가까이 만나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상이 영성입니다.

그리 살고 싶으나 마음 같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백이며 성찰이며 기도입니다. 


그런 의미로 '싱크대 앞'은 영성이 현현하는 중요한 장소.

싱크대 앞 영성이라고 해서 주부들만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이 글을 보시는 누구라도 주 독차층에서 피해갈 수 없으니 한 권씩 사주실 생각,

단단히 하고 계셔야 합니다. 케케.


저는 책 제목을 조금 더 선정적으로 가자고 제안했는데요.

<모태 바리새인의 회심 일상> 요런 거요.

편집장님의 선택이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이었답니다.

(물론 둘 다 글의 제목입니다.) 정하고 보니 참으로 마음에 드는 책 제목이네요.

당분간 뽐뿌질이 이어질 예정이옵니다.

아, 아직 서점에 나오진 않았구요. 여기서만 살짝 공개입니다.  


본문의 일부 인용하는 것으로 오늘의 뽐뿌질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엄마, 강의 끝났어? 잘 했어? 어디야? 그런데 우리 저녁 뭐 먹을 거야?" '우리 저녁 뭐 먹을 거야?' 이것은 강사님, 강사님, 강의 너무 좋았습니다.’에 취해서 비행기 타고 있던 나를 현실의 나락으로 뚝 떨어지게 하는 주문이다.


(중략)


하이힐과 정장을 벗어 던지고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싱크대 앞에 서니 손바닥만 한 다육이 화분이 나를 반긴다. 그리고는 존재 깊은 곳까지 닿을 듯한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몸은 피곤한데 몸 너머의 또 다른 내가 새로운 에너지를 주입받는 느낌이었다. 이 편안한 자리에 서서 무슨 음식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그 어떤 찬사도, 깍듯한 의전도 없고 끝도 시작도 없는 이 솥뚜껑 운전수의 자리. 사실 나는 이 자리를 사랑한다. 공들여 준비해도 한 번 먹어 치우면 끝이어서 오래 공로'를 붙들고 있을 수 없는 자리, 그래서 억울하다고 징징거리고 화내는 날도 많지만 실은 내가 이 하찮은 자리를 깊이 사랑한다. 강사님도 선생님도 아닌, 그저 밥 하는 아줌마로 돌아올 싱크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노동 또는 노력이 '공로'가 될 수 없는 곳일수록 본래의 나와 더 가까운 자리라고 생각한다. '주부' 역시 페르조나이지만 말과 글로만 평가받고, 칭찬받고, 돈을 받는 ''보다는 훨씬 더 가벼운 사회적 가면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서기만 해도 업적과 공로로 박수 받는 나로부터 물러서서 보잘 것 없지만 사랑받는 존재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싱크대 앞은 나의 성소(聖所)이다. 투덜거림과 피곤함으로 서는 날이 많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곳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복음성가 하나가 개사가 되어 입가에 맴돈다. ‘다시 싱크대 앞에 내 영혼 서네.’ 평생 부엌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현존을 구하고 경험했던 로렌스 형제를 내 감히 떠올린다.


(중략)


그리하여, 내게 가사노동은 ', 여자만?'하며 한 없이 툴툴거리면서도 그 앞에 서면 주님의 현존을 가까이 마주하는 자리이다. 툴툴대며 서는 거룩한 자리이다. 아침에 식구들을 내보내고나면 '빨리 설거지와 청소를 해치우고 커피 한 잔 내려서 메시지 묵상에 들어가야지.' 조바심을 치는 때도 있었다. 요즘은 가장 느릿느릿 하는 일이 아침 설거지이다. 아침부터 일이 있어서 이 여유로운 시간을 놓치면 오히려 아쉽다. 손으로 느껴지는 차거운 수돗물의 느낌, 물에 불은 밥그릇이 수세미에 닿으며 후루룩 씻겨나갈 때의 느낌, 뽀드득뽀드득 헹굼질 할 때 나는 소리, 이 모든 것을 그 분의 현존으로 들어오라는 초대로 알아듣는다. 그러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아침 묵상은 이미 시작되었으니까. 고급스런 컬러에 얼음 나오는 냉장고와 반짝거리는 싱크대는 없어도, 풀 메이크업에 드레스 입은 세련된 주부가 아니라도 누구 못지않게 느낌 살려서 이 대사를 읊조릴 수 있다. ‘여자라서 행복해요.’


- 나의 성소 싱크대 앞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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