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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이야기

'처음' 트라우마

larinari 2012. 1. 7. 14:15




- 엄마, 떨리면 원래 배가 아파? 나 너무 떨려. 그리고 배도 아파. 나 사실은 아까 아까부터 떨렸어.


새로운 수영장에 가는 첫 날, 현승인 긴장을 감추지 못합니다. 선생님께 처음 왔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 두렵고, 사람들이 쳐다볼까봐 걱정되고, 샤워하고 들어가는 곳을 모를까봐 걱정이고... 모든 낯선 것이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설레는 일이라면 현승이에게는 두려움으로 더 많이 기우는 것 같습니다.


- 화요일 목요일 가서 이제 다 알았잖아. 첫날 갔지만 아무런 걱정되는 일이 없었잖아.
- 그 날은 누나랑 함께 하는 날이고 오늘은 나 혼자잖아. 너무 떨려.
- 하긴.... 처음은 누구나 떨려. 엄마도 그래.
- 엄마는 그러면 처음에 떨리는 걸 어떻게 참아? 진짜로 떨려?
- 그럼, 떨리지. 처음이라는 건 한 번도 안 해 본 모르는 걸 하는 거잖야. 모르는 곳에 가는 거고,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거고.
- 그런데 엄마는 쫌 괜찮아? 나보다?
- 응, 엄마도 처음은 늘 떨려. 그런데 처음인 곳에 자꾸 가보니까, 많이 가보니까 그렇게 두려워 할 게 없구나를 자꾸만 배우게 됐어. 모르면 물어보며 되고, 가만히 지켜보면서 조금씩 알아가면 돼. 그래도 사실 처음 어디 가는 건 늘 쫌 그래.
-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는?
-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 너 누가 처음 왔다고 그 사람만 쳐다고보 신경쓰고 그래?
-  그렇진 않지. 그냥 쳐다보기는 하지만 신경을 안써.
- 그니까 말야. 게다가 현승이는 귀엽고 인상이 좋아서 조금만 지나면 친구들도 사귀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거야.
- 인상이 좋다는 게 뭐야?
- 현승이 처럼 착하게 생겨서 자꾸 가까이 하고 싶다는 거...






가는 차 안에서 이런 대화를 하지만 감정이입이 잘 되는 엄마는 괜히 심장이 더 뛰고 그렇습니다. 깡마른 몸에 달라붙는 수영복 입고 쭈볏거리고 들어갈 때 현승이 심장에서 얼마나 쿵쿵 소리가 크게 들릴 지가 벌써 느껴지는거죠.
탈의실 앞에서 손을 놓고 들여보내면서 엄마는 압니다. 물론 현승이가 아무렇지 않게 잘 하고 나올 것이라는 것을요.
다만, '여기 까지야. 현승아. 엄마는 수영장은 물론 니 인생에서 아주 짧은 순간만 손 잡아 줄 수 있고 함께해 줄 수 있어. 아무리 네 마음에 공감이 돼도 혼자 가는 걸 지켜볼 뿐일거야' 라고 마음 속으로 말해봅니다. 현승이가 아니라 엄마 자신에게 하는 말일 겁니다.

물론 들어가서 레인을 배정받고 가끔 긴장해서 손톱을 물어 뜯긴 하지만 잘 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들면 엄마가 앉은 참관실이 보이는데 결코 이 쪽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엄마는 그런 현승이 마음조차 알겠습니다. 그리고 20여 분이 지났을까? 긴장된 어깨에서 힘이 빠진 듯 보이는 바로 그 때. 고개를 들어 엄마를 한 번 쳐다보고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보냅니다.
그 뜻 역시 엄마는 압니다. '엄마, 할 만 해. 걱정 많이 했지? 이제 안심해'







중반을 넘어서자 앞 뒤 형들이 말을 걸어오고 수줍게 대답도 합니다. 물장난 치는 형들 사이에서 조용히 웃으며 서 있는 모습이 한결 편안합니다. '처음'이라는 것이 왜 그리 두려울까요? 우리 모두에게, 특히 현승이에게. 처음이라는 건 그걸 부딪히기만 하면 바로 '한 번 가봤던 곳, 가봤던 길이 되는데요...'


 

 




끝날 즈음이 되자 아까보다 훨씬 당당해진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바라봐 줍니다. 처음 수영을 배우러 갔던 날 애를 번쩍 들어서 물에 던져버린 터프한 선생님으로 인해서 생긴 두려움일 수도 있고, 온갖 낯선 것 앞에서는 일단 움츠리고 보는 성향 탓이기도 할 겁니다.
새 학교, 새 교회, 새 수영장. 그렇게도 어려운 '처음'이 다 끝났네요. 이렇게 한 번 씩 처음을 넘어서면서 다음 처음은 더 수월해지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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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 프로필사진 신의피리 2012.01.08 13:33 현승아, 네가 나보다 훨씬 낫다. 아빠는 지금도 낯선 곳에 가면 떨리고, 처음 시도해볼 때 떨리고,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면 떨리거든. 엊그제 새교회에서 첫설교 할 때도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 그치만 기도하면서, 실패도 실수도 받아들여야지 생각하고, 또 엄마 말대로 다 나를 쳐다보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또 어쨋든 난 최선을 다하면 잘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한단다. 그러면 훨씬 좋아지는 것 같애. 넌 이 다음에 크면 지금의 아빠보다 훨씬 더 용감하고 매력적이 될거야. 그거 다~ 엄마 덕분이다. ^^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01.08 13:51 신고 현승아, 들었지?
    아빠로부터 배워야할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란다.
    그 중에 제일은 무슨 얘기는 엄마를 찬양하는 걸로 마쳐주면 일신이 편해진다는 거야.ㅎㅎㅎ
    (엄마같은 여자는 단세포라서 이렇게 한 번 해주면 하늘 같은 서방님 하늘같이 떠받들고 싶어진단다.)
  • 프로필사진 hs 2012.01.08 20:22 우리도 재건축으로 인해 머지 않아 이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수영장을 옮기면 어떻게 처음에 적응을 하나?좀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는데 강도사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군요.
    정말 긴장되고 어려운 시간이었겠습니다.
    실패나 실수도 받아 들여야지,라는 자세가 정말 바람직하겠다 싶습니다.
    모르긴 해도 강도사님의 설교를 처음 들으신 분들 모두 은혜 많이 받으셨을 겁니다.
    빈말이 아니고....^^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2.01.09 23:24 아, 재건축 때가 가까왔군요.
    수영 많이 늘으셨겠어요.ㅎㅎㅎ

    현승이도, 현승이 아빠도 조금씩 이 곳에서 적응해 가는 것 같아요. 더디지만 이렇게 익숙해져가는 것들이 감사할 뿐이예요. 멀리서 이렇게 격려해 주시는 것 참 힘이 되고요.^ㅡ^
  • 프로필사진 신의피리 2012.01.10 12:04 그리운 장로님! 장로님의 칭찬에 제가 춤을 춥니다. ^^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01.11 10:41 신고 블로그에도 '좋아요' 있으면 좋겠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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