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사춘기.

서른 여덟 쯤 시작한 그 알 수 없는, 낯선 시간을 한 마디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온전히 내가 창작한 용어는 아니지만 뉴스앤조이 연재글로 많은 공감을 얻었으니

정서적, 경험적 저작권은 내게 있는 것으로 하자.


신앙 사춘기 시간 동안 나름대로 말씀과 기도에 전념했다.

설교, 예배, 기도. 이런 것들이 죄 의미 없게 느껴져 신앙 사춘기였지만

돌아보면 기특하게도 다른 언어를 찾아 말씀과 기도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었다.

언어를 놓아 버리는 기도, 향심기도를 했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보았던 개역개정이 아니라 메시지 성경을 읽었다.

메시지 성경으로 읽는 예수님, 바울의 편지는 하나님께로부터 내게로 직접 오는 계시와도 같았다.

당시 교회 수요예배에선 로마서 강해를 했었는데 같은 본문 정반대의 메시지였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는 색색의 밑줄, 눈물 자국으로 아주 볼만 하다.


메시지 성경을 끊고 개역개정으로 돌아왔다.

교회 성경 일독 독려에 힘입어 새 마음을 가져본다.

개역개정으로 읽는 성경. 다시 개역개정인데, 맨 처음 읽는 개역개정 같다.

좋다.

아침 저녁 독서 전에 먼저 마음이 끌리는 책이 성경이다.


큰 글자 성경을 주문했다.

받아보니 생각보다 더 크고, 더 두껍다. 

우리 엄마의 성경책 같다, 라고 생각되는 순간

내 인생 마지막 성경책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읽고 또 읽으며 낡아지는 이 책과 함께 몸도 더욱 낡아질 텐데. 우리 엄마처럼.

눈에 맞는 돋보기가 없어 더는 글을 읽을 수 없을 때 마지막까지 붙드는 책이 이 책이 되었으면.

이젠 읽지도 못하며 폼으로 들고 다니는 엄마의 낡고 낡은 성경과 오버랩 된다.


기나긴 사춘기 끝(일까?)에 다시 붙든 개역개정 성경이 

'아장아장 성경'이니 '우리 아기 첫 성경' 같은 생애 첫 성경 같기도 하고,

인생 마지막 성경책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묘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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