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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사람

친구가 친정이다

larinari 2016.09.30 21:24




제천은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내륙교통의 중심지' 이런 내용으로 배웠던 교과서 속 도시였다. 민이네가 사역지 따라 제천에 내려간 지 벌써 14년. 교과서 속 제천은 모르겠고, 일 년에 한 번씩은 찾는 정겨운 곳에 되었다. 여름에 수영복이랑 튜브 챙겨서 채윤이, 현승이, 의진이까지 한 차 가득 타고 내려갔던 시절도 있었다. 민이, 챈, 현승이가 계곡에서 물총 쏘면서 놀 때 의진이는 유모차에 앉아서 쮸쮸를 먹었다. 의진맘에게 '언제 키우냐, 언제 키우냐' 했는데 그 녀석 의진이가 내 키만큼 컸다. 오십도 안 됐는데 자꾸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얘기를 하게 된다. 암튼, 요 몇 년은 애들 다 떼놓고 의진맘과 둘이 홀가분하게 제천행이다.


차 뒷좌석을 트렁크 삼아 꽉꽉 채워서 챙겨왔다. 과수원에서 직접 산 사과박스, 김치 한 통, 호박잎, 호박, 고추, 밤, 파, 방울토마토(이렇게나 많았나?ㅎㅎㅎ). 의진맘과 이구동성으로 '친정집 왔다 가네. 친정집이네' 했다. 20여 년 전에 자주색 가죽 자켓에 부츠컷 청바지에 (앵클부츠를 신었던가? 아닌가?) 긴 생머리 휘날리며 스타일 나던 민맘의 모습이 기억 속에 또렷하다. 우리 셋 중에 제일 스타일리시 했었지. 아마. ㅎㅎ 그 민맘이 오늘은 우리의 친정엄마가 되었다. 오가는 시간이 얼굴 마주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지만, 그래서 늘 아쉽지만.... 민맘 의진맘 둘 다 오래 운전하는 나를 걱정하지만.... 아닌게 아니라 막히는 강변북로 혼자 돌아오는 길, 무지하게 피곤하고 졸음도 살살 오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뒷좌석에 떡 버티고 있는 저 맛있는 김치 한 통을 생각하면 힘이 불끈이다.


친정집에 다녀오는 느낌. 그 느낌 아니까. 헌데 '친정집 왔다 가는 것 같다' 라고 말할 때의 그 '친정'집을 진정으로 가진 여자가 있을까? 몇이나 있을까? 나도 친정이 있다. 그 친정은 생의 마지막날을 기다리는 아슬아슬한 엄마, 아기가 된 엄마가 계신 곳이라 늘 뭘 가져가야 하는 곳이다. '야이, 가루분이 떨어졌다' 하면 가루분을 사가야 하고, '요좀이는 호박죽 밲이는 못 먹어' 하면 호박죽을 사가야 하고. 친정집은 가서 속을 풀고 오거나, 바리바리 싸오는 곳이 아니다. 나는 엄마가 너무 늙어서 그렇다 치자. 어떤 친정집에는 부모님 사이가 안 좋아서,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부모님의 성격 때문에.... 가서 맘 편히 쉴 곳이 아니다. 무엇을 풍성히 싸보낼 만큼의 친정은 흔하지 않다. '친정집 왔다 가는 것 같다'의 '친정'은 현실의 친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 속 친정, 원형적 친정이다. 모두 고향을 그리지만 정작 현실의 고향이란, 가봐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 또는 가족간 갈등으로 생각하기도 싫은 곳인 경우처럼 말이다.


민맘도 의진맘도 나도 그런 의미의 친정은 없다. 아무 걱정 없이, 아픔 없이 친정을 떠올리며 천진난만하게 엄마의 창고를 털어올 수 있는 그런 친정.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약간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렇게 서로 서로 친정이 되어주는 거지, 생각하니 눈물이 한 방울이 똑 떨어진다. 20대, 이름 붙이기도 어려운 방황의 시절 답십리의 (당시) 민맘의 자취방 생각이 문득 났다. 토스터기를 새로 사서 거기에 식빵을 구워 먹었던 생각도 툭 튀어 올랐다. 그 시절에도 뭔가 고향이 없는 느낌으로 쓸쓸하고 그랬었던 것 같다. 썩 잘 풀리지 않는 결혼 같은 문제를 놓고 막막한 마음을 막연하게 나누었던 기억도. 어디 내놓을 수 없는 지질한 내 속을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때는 그때대로 우리들의 친정이었다.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고 제천 사과를 까먹으며 채윤이와 수다를 떨었는데 어느 새 채윤이 키보드 앞에 가서 딩가딩가 연주를 하였다. 듣자하니 흘러간 CCM을 쳐댄다. '엄마, 와서 노래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선곡 리스트를 보니 영락없는 콜링이다. 채윤이 옆에 가 한 곡 두 곡 넘기다, 어쩌다 '주님을 따르리'를 부르게 되었다.  20여 년 전, 어느 추수감사절에 교회 찬양제에서 청년부가 불렀던 곡이다. 민맘도 의진맘도 채윤이 아빠도 함께 했던 찬양이다. '주님을 따르리 내 십자가 지고 주 따르리' 뭣도 모르고 잘도 불렀다. 돌아보면 지난 20여 년, 셋 다 각자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왔다. 그 길이 주님을 따른 길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기만의 십자가를 지고 고군분투 해온 것은 분명하다.  


각자의 십자가를 서로 안타깝게 바라보고, 기도해주고, 마음을 나누기도 했는데. 딱히 우리의 기도가 응답된 것도 없다. 여전히 각자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했고,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보니 능력도 크신 분이 참말로 사소한 것 하나를 안 들어주시고.... 하나님, 참 섭섭하다. 그래도 먹을대로 먹은 나이 때문인지 반항할 힘도 없고, 내 소견이 코딱지만 한 것도 알만큼 아는 터라, 본의 아닌 '내려놓음'이다. 각자 몫에 태인 십자가, 뉘게나 있는 십자가, 이렇듯 지고 끝가지 가는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들이 되는 건가? 여하튼, 딱히 비빌 언덕이 없는 흙수저 셋이 5년 후에는 스페인 여행을 가겠노라 꿈을 꾼다. 모든 사람에겐 고향이 필요하다. 모든 여자에겐 친정이 필요하다. 비빌 친정이 없는 친구끼리 서로 친정이 되어주고, 마음의 고향이 되어야 한다. 오늘 내 친구가 나의 친정이 되어준 것처럼, 나도 때로 친구의 친정이 되고, 세상 곳곳에 더 많은 친정과 고향이 생겨야 한다. 그리하여 결론은.... 넘나 맛있는 김치 한 통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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