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음악이 사람보다 나아'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음악과 단 둘이 있으면 여느 사람과 있을 때보다 위로가 되고 안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어릴 때의 독백이다.
이젠 어떤 경우에도 그런 식의 표현은 하지 않는다.
그건 음악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사람에게 넌덜머리 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라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은 '음악이 아니라 사람이 누군가 내곁에 좀 있어줘봐바'라는 절절한 외침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음악은 사람의 대용물로 내게 이용당하고 있었던 거지.
내가 정신줄만 제대로 챙기고 있다면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고, 음악보다 편안하고, 커피보다 향기롭다.




헌데 오늘은 '커피가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서 사람보다 나은 커피를 달달달 볶아봤다.

불현듯 커피가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낫다라고 생각하게 된 건,
낮잠으로 심하게 피로를 푼 탓에 잠이 썩 오지 않는 밤에 '커피를 볶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덤덤하던
거실과 주방이 살짝 밝아지면 내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런 시간 누가 나랑 이렇게 액티비티하게 놀아줄 것인가? 이런 시간 커피를 볶는 일이 활력이 된다니 말이다. 이런 날 커피는 사람보다 낫네.




아이커피 로스터를 득템한 이후로 가장 많은 양의 커피 로스팅을 했다.
커피를 볶을 때마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저것이었다.
그린빈이라고 불리는 생두가 우리가 아는 커피색이 되어가는 과정. 불과 20여 분 동안의 변화다.
내게는 너무도 경이로운 색의 향연이다.

취미 : 음악감상, 독서
내게 음악과 독서는 취미가 아닌데.... 거의 삶인데....
도대체 취미란게 뭐지?  내게는 딱히 취미라고 말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문득 '커피랑 놀기'가
내 취미다. 커피 볶고, 커피 내리고, 커피 마시고.... 요게 내 요즘 취미다! 이거다. 이런 게 취미군하~

안 한다고 죽을 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렇지만 할 때마다 살짝 스트레스 해소랄지, 미세한 아드레날린의 분비와 일정 정도의 부정적 감정을 날려주는
작용까지.... 아하, 요게 요게 이게 취미구나.
내 취미 : 커피 볶기, 핸드드립 하기, 커피 마시기.





커피 볶는 일이 스트레스를 날려준다면 그 정점은 바로 위의 과정이다.
커피가 거의 다 볶아졌을 때 '크랙(정확히 2차 크랙)'의 순간인데 뻥, 뻥 하는 저 소리가 들리시는가?
뻥!뻥! 하면서 커피를 감싸고 있던 채프(껍질)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이다.
이 짧은 순간 들리는 뻥뻥 소리가 내게 가장 기쁨이 되는 순간임을 알았다.




암튼 색깔의 변화를 거쳐 뻥뻥 소리가 나는 2차 크랙이 진행된다면 이제 달달 볶아대는 일은 마쳐도
되는 시점인 것이다. 볶기를 마쳤다면 아주 빨리 원두를 꺼내서 식혀주는 것이 관건이다.
이 과정에서 게으름을 피우면 남은 열 때문에 적당히 잘 볶아진 순간적으로 지나친 볶음정도가 되더라는
것을 실패를 통해서 배웠다. (위 사진은 커피 볶는 내솥을 꺼낸 후의 로스터, 그리고 급속냉각ㅎㅎㅎ 과정이다)






원두커피를 것두 신선한 원두커피 마시기를 원하는 분이라면 그라인더, 즉 커피 갈기에 쓰는 저 놈을
꼭 장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원두를 사면서 '갈아주세요' 해서 200g 정도를 한꺼번에 갈아오는 건
비싼 원두를 싼맛으로 마시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원두는 마시기 직전에 분쇄하는
것이 필수다. 원두의 향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그라인더에 넣고 드르륵 드르륵 가는 그 순간이다. 
저걸 장만하기가 거시기 하다면 마늘을 갈던 커터기를 사용하더라도 마시기 직전에 갈아주는 것이 신선한
원두에 대한 예의라고 이 연사 소리를 높여 주장한다.











베란에 밖에 내어 놓은 원두가 충분히 냉각이 되었을 것이다.
원두는 볶은 후에 3일 정도 숙성시킨 후에 마시는 것이 좋다.
볶아서 첫날, 다음 날, 그리고 그 다음 날 맛을 비교하며 마셔봤더니
왜 '숙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지 알 것 같았다.
볶은 지 3일 후부터 마시면 오케이고 가장 맛있을 때는 7일 후라는데....
아직 7일 까지 숙성시켜 마셔보질 못했다. 오늘 볶은 놈들은 기필고 생후
7일이 되었을 때 마셔줘봐야겠다.


이 나이에, 잠 안오는 날 함께 놀아줄 친구를 만난 게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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