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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Nouwen

커피 볶는밤

larinari 2009. 11. 23. 01:09

아주 오래 전에 '음악이 사람보다 나아'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음악과 단 둘이 있으면 여느 사람과 있을 때보다 위로가 되고 안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어릴 때의 독백이다.
이젠 어떤 경우에도 그런 식의 표현은 하지 않는다.
그건 음악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사람에게 넌덜머리 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라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은 '음악이 아니라 사람이 누군가 내곁에 좀 있어줘봐바'라는 절절한 외침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음악은 사람의 대용물로 내게 이용당하고 있었던 거지.
내가 정신줄만 제대로 챙기고 있다면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고, 음악보다 편안하고, 커피보다 향기롭다.




헌데 오늘은 '커피가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서 사람보다 나은 커피를 달달달 볶아봤다.

불현듯 커피가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낫다라고 생각하게 된 건,
낮잠으로 심하게 피로를 푼 탓에 잠이 썩 오지 않는 밤에 '커피를 볶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덤덤하던
거실과 주방이 살짝 밝아지면 내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런 시간 누가 나랑 이렇게 액티비티하게 놀아줄 것인가? 이런 시간 커피를 볶는 일이 활력이 된다니 말이다. 이런 날 커피는 사람보다 낫네.




아이커피 로스터를 득템한 이후로 가장 많은 양의 커피 로스팅을 했다.
커피를 볶을 때마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저것이었다.
그린빈이라고 불리는 생두가 우리가 아는 커피색이 되어가는 과정. 불과 20여 분 동안의 변화다.
내게는 너무도 경이로운 색의 향연이다.

취미 : 음악감상, 독서
내게 음악과 독서는 취미가 아닌데.... 거의 삶인데....
도대체 취미란게 뭐지?  내게는 딱히 취미라고 말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문득 '커피랑 놀기'가
내 취미다. 커피 볶고, 커피 내리고, 커피 마시고.... 요게 내 요즘 취미다! 이거다. 이런 게 취미군하~

안 한다고 죽을 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렇지만 할 때마다 살짝 스트레스 해소랄지, 미세한 아드레날린의 분비와 일정 정도의 부정적 감정을 날려주는
작용까지.... 아하, 요게 요게 이게 취미구나.
내 취미 : 커피 볶기, 핸드드립 하기, 커피 마시기.





커피 볶는 일이 스트레스를 날려준다면 그 정점은 바로 위의 과정이다.
커피가 거의 다 볶아졌을 때 '크랙(정확히 2차 크랙)'의 순간인데 뻥, 뻥 하는 저 소리가 들리시는가?
뻥!뻥! 하면서 커피를 감싸고 있던 채프(껍질)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이다.
이 짧은 순간 들리는 뻥뻥 소리가 내게 가장 기쁨이 되는 순간임을 알았다.




암튼 색깔의 변화를 거쳐 뻥뻥 소리가 나는 2차 크랙이 진행된다면 이제 달달 볶아대는 일은 마쳐도
되는 시점인 것이다. 볶기를 마쳤다면 아주 빨리 원두를 꺼내서 식혀주는 것이 관건이다.
이 과정에서 게으름을 피우면 남은 열 때문에 적당히 잘 볶아진 순간적으로 지나친 볶음정도가 되더라는
것을 실패를 통해서 배웠다. (위 사진은 커피 볶는 내솥을 꺼낸 후의 로스터, 그리고 급속냉각ㅎㅎㅎ 과정이다)






원두커피를 것두 신선한 원두커피 마시기를 원하는 분이라면 그라인더, 즉 커피 갈기에 쓰는 저 놈을
꼭 장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원두를 사면서 '갈아주세요' 해서 200g 정도를 한꺼번에 갈아오는 건
비싼 원두를 싼맛으로 마시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원두는 마시기 직전에 분쇄하는
것이 필수다. 원두의 향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그라인더에 넣고 드르륵 드르륵 가는 그 순간이다. 
저걸 장만하기가 거시기 하다면 마늘을 갈던 커터기를 사용하더라도 마시기 직전에 갈아주는 것이 신선한
원두에 대한 예의라고 이 연사 소리를 높여 주장한다.











베란에 밖에 내어 놓은 원두가 충분히 냉각이 되었을 것이다.
원두는 볶은 후에 3일 정도 숙성시킨 후에 마시는 것이 좋다.
볶아서 첫날, 다음 날, 그리고 그 다음 날 맛을 비교하며 마셔봤더니
왜 '숙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지 알 것 같았다.
볶은 지 3일 후부터 마시면 오케이고 가장 맛있을 때는 7일 후라는데....
아직 7일 까지 숙성시켜 마셔보질 못했다. 오늘 볶은 놈들은 기필고 생후
7일이 되었을 때 마셔줘봐야겠다.


이 나이에, 잠 안오는 날 함께 놀아줄 친구를 만난 게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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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omments
  • 프로필사진 2009.11.23 06:21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11.23 09:04 신고 이 블로그 역사상 최고로 반가운 일빠!^---^
    유아러베스트고객!
    베스트 고객께는 24시간 편의점 영업 방식으로 카페 운영되오니 언제든 주문 오케이!
  • 프로필사진 iami 2009.11.23 09:39 모님이 볶은 원두를 주문해 전달해 준 분이 7일 숙성이란 말을 나중에 꺼내
    이미 반 이상 갈아 마셔본 소감은:
    1. 오랜만에 집안에 원두 갈 때 나는 고소한 냄새가 좋았고,
    2. 우리는 자동분쇄기라 매번 닦는 번거로움이 있어
    한꺼번에 사흘치 정도 가는 바람에 비싼(?) 원두 싸게 마신 셈이 됐고,
    3. 커피맛은 so so;; (기대가 너무 컸던지, 아니면 입맛이 보통이어선지^^)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모님 이사간 집에 가서 지대로 내린 커피 한 잔 받아 마셔야겠다는 것!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1.23 11:55 고객님! 구매와 더불어 소중한 리뷰 감사드립니다.ㅎㅎㅎ

    1. 일단 너무 빨리 드신 것 같아요. 7일까진 아니어도 며칠은 더 숙성을 시켜야 원두에 맛이 들거든요. 게다가 홀빈 상태가 아니라 갈아서 두셨다면 숙성(원두 안의 이산화탄소가 적당히 빠져나가기)은 어려웠을 것 같고요. 그러니 맛은 텅 빈 원두를 내려서 드셨을 가능성이 많네요.

    2. 원두는 내리기 직전 갈아서 드시는 것이 진심 중요한 부분임을 통촉해주시고요.

    3. 자동분쇄기가 커피전용이신지 모르겠는데 혹 조리용 커터기라면 원두가 갈리는 과정에서 열이 발생해서 신선도를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저의 결론도 역시 조속한 시일 내에 저희집으로 오셔서 마담이 직접 핸드드립한 커피를 드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ㅎㅎㅎ
  • 프로필사진 2009.11.23 12:49 왠지 말시키면 대답할 것 같이 생긴 저 커피로봇 ㅎㅎㅎ
    커피 볶는 밤...운치 있어 보여요.
    해바라기 씨 색깔을 띠고 있다가 어떻게 저렇게 또 윤기나게 바뀌어가는건지....
    신기해요.
    커피라는 게 참..그냥...좋은 거 같아요 ㅎㅎ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1.23 14:09 '알투디투! 이제 시작하자. 잘했어. 근데 이건 너무 심하게 태운 거 아니니?'
    대화를 나누면서 해야겠어.

    근데 쟤 진짜 귀여워. 옆에서 보면 베낭 메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ㅋㅋㅋ
  • 프로필사진 kyung 2009.11.23 13:32 어제 도사님께서 모님 커피 칭찬하셨는데
    역시역시 모님 커피가 최고에요
    '커달' 커피의 달인 ㅋㅋㅋ

    모님 덕분에 커피 맛뿐만 아니라 커피의 전문적인?것까지 알수있어서
    좋아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1.23 14:11 칭찬에 인색한 남자분과 결혼해서 10년 동안 목마름이었는데.... 커피에 손을 대고 나서는 연일 칭찬과 찬양을 듣는다. 열 번 좋아도 한 번 표현하시는 분이 커피를 마실 때마다 '햐, 커피 맛있다. 내가 이런 호강을 하다니..' 찬사를 아끼지 않으시니,
    난 이게 왠일인가 싶어.ㅎㅎㅎ
  • 프로필사진 BlogIcon 쥐씨 2009.11.23 15:38 신고 음악이 사람만큼 나아요!!!!!
    라고 딴 소리 하기 *-_-* 그나저나 저 어젯밤부터 시작해서 2차 크랙을 담은 영상 4번째 보고 있는거 아세요? 뭔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음성이에요... 헤드셋으로 들으니까 더 좋구요 (ㅎ.ㅎ)

    아 근데 챙언니 말시키면 대답할 것 같이 생겼다니ㅋㅋㅋㅋㅋ 어쩐지 어제 말걸기가 좀 힘들더라구요 로봇을 바라보는 언니의 그 눈빛과 집중력 때문에ㅋㅋㅋ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1.24 11:00 나도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어. 뮤직이 사람보다 낫다.ㅋㅋ

    그거 진짜로 들으면 더 쥑인다. 담번에 오면 실제상황으로 들려줄께.

    챙과 무슨 로봇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한게냐?
  • 프로필사진 forest 2009.11.23 17:52 언젠가 모님에게 딱 어울리는 스킨을 만들어주고 싶은 일인임당~^^

    한밤중 커피 알갱이와의 데이트,
    그린에서 블랙으로 변화되는 색의 변화만큼 커피에 대한 사랑이 익어가는군요.
    모님 사랑을 슬쩍 엿보러 가야 하는데...^^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1.24 11:02 아! 스킨!
    이렇게 바쁘시니 언제 저만의 스킨을 발라주신대요?
    새 스킨 발라보자고 일이 줄기를 기도할 수도 없구요.ㅋㅋ
  • 프로필사진 myjay 2009.11.24 10:23 도사님이 칭찬하셨다면 정말 대가시겠군요.
    7일 숙성 후 시음 후기도 올려 주세요. 기대기대...
    혹시 주문도 가능한가요?? ^^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11.24 11:10 도사님 경지가 장난 아녜요.
    오늘 아침에는 '브라질산토스'의 맛을 거의 책에 나온 표현으로 평가를 하더라구요.ㅎㅎㅎ

    주문은 저랑 일주일 안에 한 번 씩 만날 수 있는 분들께만 가능할 것 같아요. 갓볶은 원두의 맛을 아는 분들과 저렴하게 나누고픈 마음은 간절한데 쉽지 않네요. 온라인의 만남이 잦은 끝에 언젠가 직접 볶아 내린 커피 한 잔 드릴 수 있는 날도 오겠지요.^^

    성하 회복된 것, 덕분에 가족과 함께 하신 좋은 시간 둘 다 축하드려요.
  • 프로필사진 rlaao 2010.01.18 13:13 저기 궁금한게 있어서요
    저도 아이커피 로스터기 사용하고있는데
    원두향이 안나서..ㅜㅜ
    원두는 참이쁘게 볶였고 드립해서 마시면 맛은 괜찮은데
    향이........안나요
    볶고 하루이틀정도면 향이 많이나시나요??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0.01.18 17:23 로스팅 후에 하루 정도는 그냥 두셨다가 밀폐용기에 넣어 이틀 쯤 지난 후에 드셔보세요. 향이 퐁퐁 나실 거예요.

    저도 처음에 당황했었는데 알고보니 막 로스팅 한 후에는 아무런 향이 나지 않더군요. 이산화탄소 빠지고 숙성이 되면 자연스레 향이 무르익어요. 3일은 지난 후에 마셔야 향이 깊어지는 것 같고 볶은 후 7일 까지 계속 숙성되며 향이 깊어지다가 7일을 기점으로 감소하면서 14일 이후에는 산패된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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