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강물에 항시 떠다니는 말들이 있다. 오래되어 강물과 하나가 된 것이라 굳이 건져 올려 확인할 일은 없다. 마음의 강물과 하나이듯 내 존재와 딱 붙어버린 말이기도 하다. 합장合葬. 합장이 될 줄 알았다. 두 죽음이 한 무덤에 묻혀야 끝날 일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막연하게 그리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합장이 되고 나서야 내 이 두려움과 고통은 끝이 나리라.

 

아버지 돌아가시고 얻은 일종의 지병 같은 '죽음 상상'은 또 다른 죽음이 와야 끝이 날 것이었다. 갑자기 맞은 아버지 죽음 끝에 늘 엄마의 죽음을 상상했다. 엄마의 귀가 시간이 늦을 때면, 엄마가 시골 외갓집에 가기 위해 며칠 집을 비울 때면 쉬지 않고 엄마 죽음을 상상했다. 죽음 상상은 살아갈 걱정과 짝을 이루며 왔다. 엄마의 죽음, 내 삶의 대책. 엄마마저 죽으면 우린 어떻게 하지?  나 자신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그리고 동생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나는 어떻게든 살겠는데 두 살 터울 동생이 걱정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몇 년 지나지도 않아 동생의 덩치는 생전 아버지보다 더 커졌다. 예나 지금이나 내 몸은 초경량급인데, 그 동생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작은 어깨에 하나인 듯 두 개의 짐이 얹어져 있었다. 엄마의 죽음과 동생의 삶이다.

 

그 두 개의 짐보따리를 아울러 부를 이름은 '책임감'이다. 누가 지워준 짐이 아니다. “엄마한테 잘해라, 네가 잘해야 한다. 엄마와 동생 잘 돌봐라" 아버지 장례식 마치고 이런 얘길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끙차! 그 보따리 들어 어깨에 떠맨 사람은 나 자신이다. 심리치료와 영성 상담을 공부하고 일을 하며 많이 가벼워진 짐이다. 가녀린 어깨에는 과적 용량이었지만, 덕분에 잘 살아온 면도 있다. 나 자신 돌보는 것, 내 한 몸 책임지는 것은 절로 되었다. 허튼 도움을 기대하거나, 내가 감당할 부분을 떠넘기려 하지 않았다. 먼저 나를 추슬러야 엄마든 동생이든 돌볼 수 있으니, 내 한 몸 돌보는 것은 기본이어야 했다. 내 심리적 영적 성장의 여정은 동생과 엄마에 대한 '가장(家長) 의식'을 내려놓는 것과 맞물렸고, 그럭저럭 잘 놓여나고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두려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휴대폰 벨이 울리고 동생 이름이 뜨면 늘 조금씩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 말을 들을지 모른다는 각오가 매번 새로웠다. "누나, 엄마 돌아가셨어." 드디어 그 말을 듣게 된 새벽, 결국 듣고야 말았던 그 말.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그 아픈 말은 상상 속 죽음의 공포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말이(어야한)다. 38년 전, 아버지를 앗아간 죽음이 내 어깨 위에 올라탔다. 그날로부터 죽음을 짊어진 삶을 살았다. 합장의 때가 왔다. 더는 엄마까지 빼앗길지 몰라 두려워하고 대비하는 시간을 살지 않아도 된다. 지난 6개월, 어쩌다 시작한 애도의 글을 마음 가는 대로 써왔다. 6개월 간의 장례식이었다. 엄마를 그리워하다 아버지 생각이 났고, 아버지 없이 살아온 '고아의 나날'을 복기하며 새롭게 서러웠다. 과연 부모님을 함께 떠나보내는, 합장의 시간이었다.

 

기나긴 장례식을 끝내고 상복을 벗을 때가 되었다. 마음의 장롱에 늘 준비되어 있던 상복이었다. 언제든 꺼내입을 수 있도록, 자라는 내 몸에 맡게 수선하였다. (아, 나는 자라지도 못했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그때의 키가 지금과 같다.) 1박 2일 가족장으로 치른 탓(덕분)에 40여 년 품고 있던 상복을 꺼내 입지 못하고 허망하게 엄마를 보냈다. 갑자기 닥친 아버지 죽음으로 내 인생은 온전히 엄마 장례식을 준비하는 삶이었는데 말이다. 잘할 수 있었는데...... 준비된 상주로서 의연하게 장례식 치러낼 수 있었는데. 두꺼운 초록 스웨터 위, 후줄근한 상복을 걸치고 "불쌍해서 어쩌냐"하는 시선을 받는 무력한 단발머리 아이가 아님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쓸모 없어진 상복을 치워버리기로 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엄마의 방, 엄마의 물건처럼 내 마음의 방에서 상복은 싹 치워버리겠다.

 

평생 가장 극복하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 없음'이었다. "아버지만 계셨다면 내 인생은 이렇지 않았을 텐데" 얼마나 자주 상상했던가. 상복을 치우고 죽음에의 과도한 공포를 거둬내고 돌아보는 내 인생, 극복하고 싶었던 그것이 결국 나를 형성하고 지켜냈다. 오지 않은 엄마의 죽음과 함께 늘 최악의 비극을 상상하며 대비하는 삶, 과도한 책임감으로 삶의 무게에 짖눌려 키도 자라지 않았군! 삶의 비극성은 내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희망이 생기면 마음 깊은 곳에서 먼저 절망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버림받을 걱정이 앞섰다. 언제 어디서든 부조리한 것이 먼저 감지되는 까칠한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일기 쓰기를 시작했는데, 삶의 비극성에 머물러 어설픈 해석이라도 하고픈 몸부림이었다. 정말 나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까칠한 존재였다. 리처드 로어 신부님의 책 위쪽으로 떨어지다』에서 깜짝 놀랄 글을 읽었다.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은 결코 비극적인 것이 아니다. 적어도 '큰 그림'에서 보면 그렇다. 과거와 미래에 연결되어 있는 깊은 시간 안에서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필요한 고통을 준비케 하고, 자신의 실패와 상실에 절망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고, 오히려 그 모든 것은 통과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공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보다 먼저 걸었고 우리보다 나중 걸어갈 거대한 인류 대장정에 합류하는 것이다.  

 

일찍이 만난 죽음이 내 인생을 이끌었다. 그렇다, 큰 그림에서 보면 그리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에 심리적으로 방어하는 능력을 키우며 강해지기도 했다. 고통에 머무르고 실패와 상실에서 아주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갈등을 마주하며 견디는 힘도 일찍 죽음의 뒷모습을 마주한 덕이다. 조금씩 자유로워진 엄마와 동생에 대한 책임의식은  치료와 상담으로 만나는 이들에게로 옮겨갔다. 마음과 생각이 확장되며 더 많은 이들과의 치유적 연결이 생겨났다. 역시나 과도한 책임감이 문제를 일으킬 때도 있지만, 비극을 통과하며 얻은 책임감은 내게만 있는 보물이라고 자부한다. 고통과 상처는 나를 나답게 하는 존재의 무늬가 되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나, 나만의 무늬이다. 그것을 알기에 사람들의 상처와 함께 그것이 만들 존재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 역시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으로 뜨인 눈이다. 고통과 비극은 인간 실존의 기본설정-그 극한은 죽음이다-이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은 고통이다. 큰 그림에서 보면 그렇다.

 

기나긴 시간이었다. 재난처럼 밀려든 아버지의 죽음이 삶을 뿌리째 흔들었고, 그때로부터 죽음은 늘 살아 있는 공포였다. 혐오하며 붙들고 있었고, 두려울수록 더욱 밀착되는 죽음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그러했고, 죽음이 가져온 변화를 극복하며 나를 형성하고 자랐다. 쉰이 넘어 마주한 엄마의 죽음은 혐오 대신 생의 신비로 이끄는 문이 되고 있다. 엄마 떠나시고 쓰기 시작한 애도 일기는 다시금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을 있는대로 세우고 머무는 시간이었다. 글이 이끄는 길을 따르다 합장의 날에 이르렀다. 내 인생 치명적인 두 슬픔, 두 죽음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새로운 죽음에 이끌린다. 저항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죽음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비로소 든다. 이제야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이 말이 알아들어진다.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 앞에 섰다 돌아오신 후에 쓴 글이다. 

 

사람은 모두 예외 없이 죽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될 때, 우리는 심오한 기쁨으로 충만해지며 두려움 없이 죽음과 대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죽는다는 것도 좋은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일찍 죽고,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 죽습니다. 어떤 이들은 단명하고, 어떤 이들은 장수합니다. 어떤 이들은 병으로 죽고, 어떤 이들은 뜻밖의 사고로 갑자기 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죽으며, 똑같이 최후를 맞이합니다. 인간의 위대한 이 공통점을 놓고 볼 때, 우리가 어떻게 살고 죽는가 하는 숱한 차이점들은 우리를 더이상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차이점들은 친교의 느낌을 더 깊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 인류 가족간의 친교, 다시 말해 서로 소속되어 있다는 깊은 느낌은 죽음이라는 가시를 뽑아버리고, 우리에게 역사적 삶의 한계 너머 저 먼 곳을 가리켜 줍니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의 결합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 죽음과 애도 전문가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하여 쓴 『인생 수업』이란 책이 있다. 죽음 앞에 선 이들이 들려주는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이다. 그 책의 지혜를 빌자면 죽음은 가장 큰 상실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죽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거듭 말하는 것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말라고 한다.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삶'인 것이다. 나는 이제 이 신비 앞에서 상복이 필요 없을 죽음을 생각한다. 나의 죽음이다. 언젠가 마주할 나의 죽음을 가슴으로 안으려고 한다. 결국 다다를 비극 또는 신비인 나의 죽음을 부드럽게 사귀어 보겠다. 두려워 마주하지도 못하고 등 뒤에 지고 있던 죽음을 말이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6개월 전 떠나신 엄마가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도 이것 아닐까. 삶을 살아라, 네 삶을 살아라. 내 딸아, 이제 상복을 벗고 '현재라는 선물'을 살아라. 반드시 죽을 너의 운명을 기억하되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아라! 

 

죽음으로 헤어진 엄마와 아버지는 나의 죽음을 통해서만 다시 만날 수 있다. 천국에 갈 이유가 절절하게 또렷하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는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요, 지옥으로 가는 모든 길이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언젠가 죽음이라는 신비의 문을 통과해 엄마 아버지 만날 때까지, 천국 가는 오늘을 천국의 시간으로 살리라.

 

탈상(脫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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