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장 보러 가는 곳이 이마트 트레이더스인 상황. 걸어가서 우유나 콜드쥬스 1+1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사서 덜렁덜렁 들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밀리고 밀리고 또 밀리는 주차장 쪽이 아니라 1층 출입구로 슬렁슬렁 걸어 들어가 고기 한 팩 딱 사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건 뭐 올림픽공원이 자기 앞마당이라는 올림픽아파트 사는 친구 안 부러운 일이다. 한 번씩 마음먹고 가서 몰아서 장 봐야 했던 곳, 웬만하면 10만 원 단위로 카드를 긁게 되는 곳 아닌가. 고기 좋아하는, 한참 키가 크는 중(이라고 믿고 싶은)인 현승이 때문이라도 한 번씩 꼭 들러줘야 했던 곳이 코앞에 있다. 

 

등심 안심도 아니고, 척아이롤도 아니고 '탑블레이드'라는 고기가 있다. 트레이더스 매장 통틀어 가장 저렴하다. 생긴 건 부챗살이다. 꼬맹이 적 한때 잠깐 꽂혔던 그 팽이 탑블레이드가 고기로 변신하여 열아홉 현승이 앞에 나타날 줄이야. 잘만 구우면 아주 감동적인 스테이크가 된다. 피가 뚝뚝 떨어져도 좋다!는 식으로 엄마, 레어! 레어! 알지? 노래를 부른다. 올리브유와 소금, 로즈메리나 오레가노 같은 아무 허브에 재웠다가 버터 잔뜩 녹여 막막 구워서 꺼낸다. 그 팬에 양파를 비롯한 야채를 익히고, 익히는 동안 힘줄 부위 잘라내고 고기를 썬다. 야채를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뜨겁게 달군 가운데에 다시 고기를 모셔서 내주면 좋아서 환장을 하신다.

 

 

 

다 좋았는데, 누나 없이 독식하는 것도 좋고, 운동 다녀와서 배고픈 상태도 딱이었고, 다 좋았는데 파프리카가 삐꾸다. 현승이는 음식의 식감과 향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기준은 상당히 개인적이다. 파프리카는 생으로 마요네즈를 찍어 먹기에 적절하지 굽는 것은 안 된다고. 향이 너무 강해서 고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심지어 파프리카 근처에에서 구워진 야채까지도 오염이 되었다고. 먹어보지도 않고 일단 저렇게 한쪽으로 가지런히 몰아놓았다. 다음부턴 안 그럴게. 파프리카 따위를 탑블레이드에 끼워 팔지 않을게. 

 

 

 

반쯤 먹었을 때 김치콩나물국을 내주면 캬아, 캬아, 해장국 먹는 아저씨 소리를 낸다. 엄지 두 개가 척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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