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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가진 리뷰

토이 스토리 : 쓰레기와 구원자 사이

larinari 2019. 7. 12. 21:25


영화 <토이 스토리>에 대한 애틋한 정은 일단은 우리 아이들의 성장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3편에서 대학생이 된 앤디가 우디 일행을 떠나는 장면, 어마어마한 상실감으로 보았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빙봉이 망각의 심연으로 떠밀려 내려갈 때의 안타까움과도 비슷한 감정이다. 그러니까 채윤이 현승이가 어렸을 적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와우와우 수건, 곰돌이 이불에 대한 감정이다. 아이들은 잊지만 엄마는 잊을 수 없는, 아기 적 아이들의 애착에 대한 애착 같은 것. 쓰다보니 단지 아이들 유년만은 아니구나 싶다. 망각의 심연으로 가라앉은 내 유년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여하튼 현승이 어릴 적, 엄마 중독증상이 심하던 시절에 "너는 내 친구야. 영원한 친구야" <토이 스토리> 주제가를 어깨동무 하고 부르던 날이 있었다.


가령 이런 -> 무촌에 가까운 일촌끼리의 우정 


개봉 하자마자 <토이 스토리4>를 가족들과 함께 봤다. 보니에게 간 토이들이 어찌 되는가, 아련한 설렘으로 남몰래 두근두근. 사전 정보 없이 약간 넋을 놓고 보다 목에 가시가 하나 걸렸다. "쓰레기" 폐품으로 만든 토이 '포키'가 등장한다. 보니가 현재 시점 가장 사랑하는 토이 등극이다. 사랑받는 토이로서 자신을 인식하질 못하는 포키이다. '사랑받는'은 고사하고 '토이' 정체성을 받아들이질 못한다. 쓰레기, 쓰레기라며 틈만 나면 쓰레기통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다. 생선가시처럼 목에 걸린 건 '쓰레기'인데, 영화 때문이 아니라 한참 전부터 식도 부근에 걸려 소화되지 못하는 단어이다. 어쩌다 귀에 꽂힌 '쓰레기'라는 말이 목에 걸려 다른 무엇도 섭취하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통 먹질 못하니 마음의 힘이 다 빠져나가 이것도 저것도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에, 점점 쓰레기가 되어 가는 찰나. 영화가 무슨 작정이나 한듯 쓰레기, 쓰레기... 한다.


토이 정체성이 확실한 우디가 이걸 보아 넘길 리 없다. 그 자신 최애 장난감의 영예를 잃고 벽장에 처박히는 존재일지언정, 주인 보니의 사랑받는 토이 '포키'를 지켜내는 우디. '너는 쓰레기가 아니야, 사랑받는 장난감이야!' 토이의 존재 의미는 주인 아이의 기쁨이 되는 것. 주인의 사랑받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의 행복한 유년을 지켜주는 것. 1,2,3 편은 그 정체성에 눈물겹게 충실한 우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받는 자아'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성육신한 예수님을 향해 하늘로부터 들린 명확한 메시지 너는 내 사랑받는 아들'이다. 인간 예수님은 내내 이 정체성에 부합하는 삶을 사셨다. 사랑받는 자로서 아버지로부터 들은 메시지를 전하고, 자의로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하튼, 쓰레기가 아니라 사랑받는 토이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우려는 우디의 노력은 눈물겹다.


 

1편인가, 2편인가. 버즈의 등장 스토리가 생각났다. 버즈는 '우주전사' 정체성으로 미친 애처럼 등장했다. 지구인지 우주인지를 제가 구할 수 있다며. 아, 이때도 우디는 '너는 우주전사가 아니야. 앤디의 사랑받는 최신식, 최애 장난감이야'를 일깨우려 애썼다. 물론 질투 같은 복잡한 감정라인도 있었고. 이 스토리가 떠올라 넷플릭스로 혼자 <토이 스토리> 1,2,3을 정주행 하고 말았다. 


도덕적, 종교적 교훈으로 감상평 마무리 하는 것 촌스러운 줄 아는데. 아픈 영혼의 두 증상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자기비하와 자아팽창.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고, 칭찬 받지만 욕도 얻어 먹고, 성공하지만 실패하는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마주하기 싫은 아픈 영혼이 도피하는 곳이다. 쓰레기이거나 우주전사이거나. 한 번 실패로 쓰레기가 되고, 한 번 성공으로 세상을 구원할 전능의 전사가 된다. 대부분의 일, 대부분의 나날 동안 그 사이 어디를 오가는 존재임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더 큰 힘, 더 큰 존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실존을 모르는 토이들처럼 말이다. 고질적인 내 지병과 병증이다. 모 아니면 도, 전부 아니면 제로. 하나 실패했다 싶으면 모든 걸 잃은 것처럼 나를 팽개치고 싶은. 강하거나 약하고, 착하거나 나쁘고, 현명하거나 어리석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다. 


한 열흘 우디와 포키와 버즈를 가슴에 품고 다녔더니 목에 가시처럼 걸렸던 것이 쑥 내려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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