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중앙공원의 단풍이 운전을 방해한다. 운전하며 틈틈이 곁눈질 하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다.  원두가게에 들러서 원두를 사고 서비스로 주는 커피 한 잔을 얻어서 중앙공원으로 향했다. 벙개로 만난 친구처럼 들뜨고 설레며, 동시에 호젓하며 쓸쓸했다. 분당의 가을은 예쁘다. 봄도 예쁘고 여름도 예쁘지만 가을은 유난하다. 눈을 돌려 마주치는 어디든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봄은 가까이 가서 봐야 예쁘고, 가을은 멀리서 봐야 예쁘다.


지난 주 어느 날, 역시나 단풍으로 예쁜 동네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얻어 들은 명언이다. 명언의 발화자 권사님의 부연설명은 '가을 단풍이란 실은 푸석푸석하고 물기 없는 것이 가까이 보면 고울 것이 없다는 말씀이었다. 그렇지! 흙모자를 쓰고(이거, 망원동 사는 어느 시인의 표현이다.) 올라온 새싹과 눈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들이밀던, 연한 새잎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던 봄날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가을은 버석버석하고 스러져가는 아름다움이다. 바람 살짝 불면 후루룩 떨어져 버리는 힘 없는 잎들의 향연이다. 붙들고 싶으나 더는 붙들 힘이 없는, 고갈된 생명의 처연함이다. 가까이서 찍은 내 얼굴이 보기 싫은 느낌은 운전하고 지나치다 본 숲에 들어섰을 때의 쓸쓸함이다. 나좀 봐달라는 듯, 지는 해를 스포트라이트 삼아 존재감을 발하는 벤치가 눈길을 끈다.  




벤치를 주인공 삼아 사진 여러 장을 찍은 뒤에 화단의 낮은 담을 넘어 가서 앉기로 했다. 주름진 얼굴, 오십견이 와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어깨, 물오르는 생명력 같은 건 많이 잃어버린 마음을 가지고 가 앉았다. 가서 앉자, 앉다, 앉아 있다, 이런 말을 되뇌이다 구상 시인의 시에 이르렀다 . 이 한 마디 알아듣기 위해 인생의 봄, 여름을 달려온 것일까. 푸석푸석한 생의 가을이어서, 알아들어지는 것이 있는 가을이어서 다행이다.

 


[꽃자리]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마음의 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 집 딸  (2) 2018.02.06
어쩌다 오십  (4) 2017.12.31
살아야 하는 이유  (3) 2017.11.04
자기 혼자 컸을까  (0) 2017.10.06
책만 보는 바보 스뚜삣!  (2) 2017.09.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