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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

하나님을 만나는 글쓰기

larinari 2009. 4. 14. 19:59

나의 나됨.
불혹의 고개를 넘어서며 오늘의 내가 있게 한 베스트를 꼽아보자면 단연코 글쓰기이다.
수년 전 싸이 미니홈피를 통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난 번 이사를 하다보니 글쓰기의 시작은 중학교 1학년 겨울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직후로 거슬로 올라가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열 세 살 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를 지금까지 쓰고 있으니 28년을 이어온 글쓰기 인생이다. 으하하.... 더 신기한 것은 그 때부터의 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일기는 말할 것도 없이 유치하기 그지없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반공 선언문' 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는데 원고지 앞에 놓고 아버지가 불러주시던 대로 받아 적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유비무환' 이라는 말을 설명하는 글을 썼던 기억이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써 준 글로 처음으로 상을 받아 놓고는 '나는 글을 잘 쓰는 아이'라는 자아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엄마보다는 아버지를 더 좋아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주변의 사람들이 변하는 걸 보고서 어디다 풀어낼 데 없는 사춘기 시절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작한 것이 일기쓰기였다. 초기의 일기는 아버지를 뺏어간 하나님에 대한 원망, 사람들에 대한 원망... 이런 것들이었다.


시골에서 서울로의 전학이라는 변화를 겪으면서 외로움과 열등감의 소용돌이 속에서  감정의 배설구 내지는 말 없이 들어줄 친구같은 것이 필요했는데 역시 일기쓰기였다.
사진을 찍으면서 읽어보니 공부를 하려면 일단 일기를 써야했다. 일기를 쓰지 않는 동안은 공부도 하지 않았다고 여러 곳에 적혀 있었다.


일기와 더불어 편지는 또 다른 그 당시 내 인생의 주력사업이었다. 전학을 와서는 시골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주고 받기 시작한 편지이다. 세어볼 엄두도 내보지 못한 양의 편지가 일기장과 함께 보관되어 있다. 이 편지함에는 두 분의 보석같은 선생님이 계신다. 두 분 다 국어선생님이셨는데 사춘기 제자에게 오랜 기간 동안 따뜻하게, 성실하게 편지로 소통해주신 분들이다.


중 3 때 국어선생님은 고등학생 시절 내내 편지를 주고 받고 가끔은 만나곤 했던 분이다. 내가 대학진학 한 이후 전교조 초기에 일찌기 해직되셨다. 내가 믿는 예수님이 인간 예수님으로 어떤 분이셨는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등을 늘 장문의 편지로 설명해 주시곤 하였다. 가끔 만나면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나 김남주의 시집 같은 것들을 사주시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고딩을 데리고 의식화를 하셨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편지 몇 통을 읽어보다가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게 이렇게 좋은 선생님이 계셨구나.


대학시절을 비롯한 20대에는 다이어리에 짧은 일기들을 썼다. 그 시절 세계관이 흔들리고, 변하고 다시 형성됐던 시기인데 긴 글들이 없어서 아쉽다. 매일 매일의 짧은 단상들만 네 개의 학생수첩에 빼곡히 적혀있다.


글쓰기가 성장의 도구가 되고, 치유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 필수조건은 '정직함'이라고 한다면 '정직함' 자체를 목표로 인식하고 새로운 일기이다. 스물 일곱 되던 해에 유치원 교사를 그만두고 과외를 하면서 인생의 모퉁이를 돌고 있을 때, 내가 싱글이라는 것이 커다란 두려움으로 밀려왔다. 이 나이에 결혼도 못하고, 직장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고.... 눈물로 한 달을 지새다가 시작한 미래의 배우자에게 쓰는 편지형식의 일기이다. 당시 대학원 여성학과 진학을 위해서 공부하고 있던 중이라 남성과 여성에 관한 얘기, 내가 그리는 결혼생활에 대한 얘기, 읽은 책 얘기를 쓰면서 싱글의 외로움을 풀어나갔다. 아주 정직하게 쓰기로 맘 먹고, 늘 가장 정직한 느낌을 그대로 옮기려고 했다. 대학노트 한 권을 거의 다 채웠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연애하고도 한참 후에 결혼이 확정됭었을 때 이걸 보여주었다. 그 때 남편이 했던 첫 마디 잊을 수가 없다. '왜 이리 길어?' 헉!  이 노트의 맨 마지막 장은 남편의 글(첫 번째 사진)로 마무리 되어있다. 그 긴 걸 다 읽고나서 써 준 것이다.

20대 후반부터 다시 쓰기 시작한 일기에는 남편과 헤어진 시절의 얘기, 신혼 초에 좌충우돌 하던 얘기들이 있고 최근의 의식성찰 얘기들로 이어진다.

<하나님을 만나는 글쓰기> 라는 책이 있는데 내 글쓰기 여정은 딱 '하나님을 만나는 여정'이었다. 정직하게, 아주 정직하게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결국 아주 깊은 곳에서 만나게 되는 분은 그 분이었다. 그리고 머리로 알던 그 분을 마음으로 알아가게 되는 과정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과정은 진행중이다.

언제부턴가 혼자 은밀하게 하던 글쓰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소통을 의식하고 쓰는 글은 감정적이기만 하던 글에서 균형을 생각하며 쓰는 글로 조금씩 옷을 바꿔 입었다. 글쓰기를 통해서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던 것이, 글을 쓰기 위해서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흥미로운 변화도 생겼다.

나와 글쓰기, 나와 하나님과 글쓰기...
어설픈 사랑고백처럼 표현을 할수록 이 아름다움의 실체와 멀어질 뿐.

17 Comments
  • 프로필사진 2009.04.14 22:28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04.14 22:32 신고 나는 글 포스팅 하면서 벌써 가봤잖아.
    흔적 남길려다가 좀 밥상 좀 차리면 끄적거릴려고...^^
    만남이 참 좋다. 진짜루.
    스물 여섯의 나와 마주하고 앉았던 느낌이었어.
    열혈소통 하자구~
  • 프로필사진 forest 2009.04.15 00:38 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성은 없는거군요.
    친정 아버지의 부재가 가져다준 큰 선물이네요.
    이 나이에 시작해도 너무 늦진 않았겠죠?^^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4.15 09:07 뭔 말씀이래유. 제 글쓰기의 새 지평을 열어주신 사부님께서유.. 글고 오래 전에 시작하셨잖어유.^^
  • 프로필사진 myjay 2009.04.15 08:09 역시 대가는 어린 시절부터의 노력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군요.
    나도 좀더 일찍 글쓰기를 시작했더라면 사모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을...
    (분하다...ㅜㅜ)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4.15 09:09 제가 날고 긴다한들 myjay님의 폭넓은 독서를 바탕으로 한 글쓰기의 스팩을 따를 수 없지요. 게다가 요리까지 치고 올라오시니 분한 건 접니다.ㅋ ㅡ.,ㅡ
  • 프로필사진 yoom 2009.04.15 08:57 어우..사모님 포스팅 안하셔서 목말랐잖아요 ㅠㅠㅠ
    (닥달은 아님니당 ㅋㅋ)
    어저께 나도 이제 블로그 해볼까..naver가 좋을까 tistory가 좋을까
    아님 딴나라 애들이 많이하는 blogspot할까(사실예전에이거쪼금하다말았거든요ㅋ)
    고민하다 사모님한테 naver vs tistory 조언 구하려 했는데 챙한테 이미
    tistory 해보라고 하셨다면서요ㅎㅎㅎ

    요즘 세가지 책 왔다리갔다리 읽고 있는데
    (성격이야기,나 주님의 사랑에..,사랑에 항복하다)
    지금이라도 이런거 알게 되서 넘 좋은거 있죠?
    죠만간...떡볶이 먹으러 갈께요. 요새 넘 땡겨요..취즈~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4.15 09:12 그래 그래 잘 생각했다.
    멀리 네이버까지 가지 말고 티스토리에서 하자.
    아무래도 가까워야 왔다 갔다 드나들기도 하고 좋으니라. 멀어지는데 온라인에서라도 옆에 붙어 있어야 위로가 되지.ㅜㅜ
    챙은 벌써 집 다 지었다.
    나 초대장도 많은데 날려줄께. 이메일 주소 남겨줘.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09.04.15 11:28 우와 대단하신걸요. 일기를 그렇게 오래...
    저도 글은 초딩 때부터 썼는데 대학 때는 주로 상금에 눈이 어두워서 글을 쓴 거 같아요. 등록금 마련의 방편이었다는... ㅜㅜ
    뭐가 이렇게 길어.. 요거 마음에 와닿네요. 저도 연애편지 보내고 그런 반응 접한 적이 있거든요. 편지가 단편 하나 분량이었던 관계로... 저도 그 긴 편지 읽어준 여자랑 결혼했습니다.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4.15 17:48 단편분량의 편지를 받으신 그녀께서도 '왜 이리 길어?' 이런 분위기셨었나요?^^ 그녀께 직접 여쭤봐야겠군요.

    털보님의 글쓰기는 '타고 나셨다'는 표현이 딱인 것 같아요. 산길을 걸으면 나무가 말을 건에오고, 물 위에 떠서 노니는 오리가 말을 걸어오구요. 그게 그냥 글로 술술 풀리시구요. ㅎㅎㅎ
    사실 털보님 블로그의 사진과 글들은 돈 내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1人이옵니다.
  • 프로필사진 forest 2009.04.15 20:01 왜 이리 길어? 라고 한 여자분은 따로 있었답니다. ㅋㅋㅋ
  • 프로필사진 주안맘 2009.04.15 12:17 사모님의 솔직담백한 글이 그냥 있었던게 아니네요 ^^
    그걸 다 간직하고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워요 저도 중학교때부터 쓰던 일기장과 편지들을 친정에 놔두었더니 몇번의 이사로 싹 사라지고 없는걸 보고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는데.. 부럽 ^^; 아무튼 사모님의 포스팅이 반가워요~ 어제 저녁에 만남을 기대했는데 아쉬워요~ 5월의 따뜻한 날 꼭 한번 모여요 ^^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4.15 17:49 근데 사실 저게 은근 짐이예요. 이사할 때마다 애물단지구요...^^

    그럼 어제들 만났어요?
    주일부터 우린 계속 시간이 안되네요.
    날이 더 따뜻해지면 대공원 야간개장도 있고하니 보기가 훨씬 수월할거예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mary-rose 2009.04.15 18:49 신고 오랜 세월 쌓아온 실력시었구만..
    그걸 계속하도록 동기부여해준 스승이 있었고 또 나름 힘든 날들이 있었구.

    난 일기쓰기 숙제검사하던 초등학교때 졸업했는데.
    편지쓰기는 간간이 계속 했던거같고.
    글 잘쓰는 사람들 꽤 많지만 larinari의 글은 남다른 면이 있지.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09.04.15 21:53 신고 사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전혀 인식을 못했어요.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돌아보니 혼자 써온 날이 오래됐드라구요. ^^
    아픔, 슬픔, 만남, 헤어짐... 돌아보면 이런 것들이 은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 프로필사진 hs 2009.04.15 22:31 옛날에 일기를 아직도 보관하셨어요?
    그런 습관을 가져야 되는데.....
    저두 두꺼운 노트로 두권을 결혼 후에도 있었는데 하두 이사를 다니면서 어디론가 가 버렸어요.ㅠ ㅜ
    지금 생각해도 아쉬워 죽겠어요.

    그거 오래 오래 잘 보관 하세요.

    글을 정말 잘 쓰신다,했는데 읽고 ,쓰고, 읽고, 쓰고~~~~~그러시다 보니
    걍 내려 써도 감탄을 하게 되는 재밌는 글을 쓰시는군요. ^^
  • 프로필사진 larinari 2009.04.17 11:54 해송님 청소년 시절에 시같은 걸 좀 쓰신 포스신데요..^^
    문제는 이사군요.
    이사할 때 애물단지, 그러다보니 이사 중에 잃어버리고..
    이사할 때마다 신경써서 챙겨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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