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21




(일경, 이석, 삼진, 사라, 오필, 육미, 칠규, 팔수, 구민이가 모님과 함께 1박 여행을 떠났습니다. 경기도 가평의 깊은 산 속 펜션을 찾았습니다. 숲으로 난 길을 걸어 봅니다. 가다가 작은 풀잎이 눈에 띄면 그 앞에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앉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눠주는 자연의 품에 나를 맡겨봅니다. 무엇이 되라하지 않고, 좀 더 열심히 하라 채근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자연의 품에서 따스한 아바의 마음을 느껴봅니다. 저녁으로는 바비큐 파티입니다. 맛있는 포만감으로 기분 좋아진 친구들이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습니다. 모님의 카페는 여기까지 와서 문을 엽니다. 향 좋은 핸드드립 커피가 종이컵에 담겨 각자의 손에 들려집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찾음으로 얻은 유익을 나눕니다. 그리고 각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습니다. 생각지 못한 감정들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친구의 이야기가 내 안의 이야기를 건드려 잊었던 영화 속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생각지 못했던 지점에서 울컥하며 뜨거운 것이 올라올 때도 있습니다. 말을 잇지 못하여 조용해진 공간을 ‘쓰르르 쓰르르’ 풀벌레가 채워줍니다. 누군가의 감탄사에 다 같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쏟아질 듯 빛나는 별들이 눈을 맞춰 줍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듯, 우리의 어린 시절 아니 우리가 생기기 전부터 우리를 알고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아련하게 반짝거립니다.)



모님
: 맨 처음 우리 집 거실에 모여서 ‘아홉 개의 거짓자아’ 에 대해 얘기했던 날이 기억나네. 그간 자신의 유형을 찾아가며 각자의 여정을 잘들 가고 있는 것 같아 새삼스레 고마워. 유형을 알고, 그 유형의 메커니즘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를 써보지만 쉬운 일은 아니지.


오필
: 항상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동기’가 저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배운 가장 큰 깨달음 같아요. 제가 제 자신에게 정직해지지 않을 때 그 ‘동기’가 타인을 속일 뿐 아니라 저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육미
: 저는 무엇이든 안전하게 대비하고 깨알 같은 책임감 속에 사는 것이 제가 괜찮은 사람이라서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그 동기가 ‘두려움’ 심지어 ‘공포’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도 됐구요.


팔수
: 다들 자기 유형 전문가들이 된 건가? 나는 전에 들었던 거 다 까먹었는데…….


칠규
: 야, 까먹을 게 없어서 그걸 까먹냐? 그래도 다행이네. 껍질째 안 먹고 까먹어서. 큭큭큭. 그런데 모님, 좀 창피하긴 하지만 7유형의 죄가 ‘무절제’라는 걸 알았을 때 대~애박! 했었는데요... 그렇다고 달라지는 게 없어요. 알아도 여전히 무절제 하거든요. 아, 물론 그것 아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도움이 되기는 했지요.

 

모님 : 아주 그냥 엄청나게 도움이 됐구나? 호호. 맞아. 이 그림을 한 번 볼래? 구원받은 우리는 ‘성화’의 과정에 있다고 하지? 성화, 즉 거룩해지는 여정에 있는 우리의 삶이 왜 이리 변하지 않을까? 나 자신은 물론이고 1년 내내 새벽기도 한 번 빠지지 않는 장로님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 신앙인들 말이다. 에니어그램이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 문제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그 아래 동기라는 거지. 표에서 보는 것처럼 드러나는 행동은 거짓자아에 뿌리를 두고, 아홉 개의 거짓자아는 어린 시절에 형성되었다고 할 때 이제 우리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것 같아. 그래서 ‘어린 시절로의 여행’이라는 미명하에 이번 1박 여행을 꾸며봤단다. 지금 나눈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봤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첫 기억, 어린 시절에 경험한 부모님들의 이미지, 소중하게 여겨졌던 경험과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경험, 형제자매와의 관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꿈이나 자주 반복되었던 꿈 등을 얘기 했지? 그런 경험들과 연관 지어 ‘왜 이 유형이 되었을 지’ 간단히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 누가 먼저 얘기할까?


일경
: 제가 먼저 할게요. 빨리 하지 않으면 또 눈물이 날거 같아서요. 다섯 살인가, 아니면 더 어렸을 적이었던 것 같아요. 동생에게 함부로 했다고 목침 위에 올라가서 매 맞았던 기억, 그 장면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 때부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하는 모든 것에서 결점을 찾는 버릇이 생겼어요. 저는 어렸을 적에 엄마한데 ‘잘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 자신도 뭔가 늘 올바르게 되어있지 않은 것에 꽂혀 짜증이 나고 그게 다 제 탓인 것 같아서 더 많은 일을 자꾸 짊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이래서 저는 1번 유형이 된 것일까요?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 건가? 하이튼, 여기까지요. 오빠 하세요.


이석
: 저는 사랑받고 따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머니가 좀 불쌍해 보였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활달하고 친구를 좋아하셔서 밖에 나가시길 좋아하셨는데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못마땅해 하셨거든요. 부모님이 싸우시거나 또 일방적으로 엄마가 당하시는 게 싫어서 아버지가 전화해서 엄마 있냐고 하시면 잠깐 가게에 뭘 사러 가셨다, 이런 거짓말을 하면서 어머니를 보호해야 했었어요. 학교 준비물이나 돈 내야할 것이 있으면 어머니께서 동생 먼저 챙겨주는 게 당연했어요. 어머니가 늘 ‘너 때문에 산다.’ 고 하셨고 딸 같은 아들이라고 하셨어요. 이런 기억들이 2유형의 행동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구요.


삼진
: 에니어그램 책에서 ‘3유형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특별한 성취를 이룬 순간에 인정과 칭찬을 받았다’고 나왔던데요. 정말 딱인 것 같아요. 어릴 적 생각해보면 진짜 지기 싫어했고, 똑 부러진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칭찬받는 게 일상이었고 어린 나이에 그걸 즐겼던 것 같아요. 저는 선생님들을 보면 ‘이 선생님이 어떤 스타일을 원한다.’를 딱 알았던 것 같아요. 친구를 사귈 때도 여러 애들을 사귀는 건 시간 낭비잖아요. 친구가 많은 애 하나를 사귀어서 한 방에 친구를 만들었던 기억도 있구요. 어린 것이 일찍부터 3번이었죠. 호호호.


사라
: 음.... 저는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비오고 나서 아파트 단지 안에 생긴 물웅덩이가 기억이 나요. 왠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나는 혹시 주워온 아이가 아닐까? 병원에서 바뀐 아이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동생은 똑똑했고 뭔가 엄마 아빠에게 어울리는 아이 같았는데... 저는... 그냥, 제 엄마는 동생의 엄마 같아요. 모님께서 제 유형 설명해 주시면서 ‘감정이 네가 아니다.’라는 말씀이 크게 와 닿았는데 뭔가 말로는 잘 설명하기 어려운, 아니 설명하기 싫은 감정이 제 안에 늘 있는 것 같았거든요. 어릴 적부터 왠지 난 ‘지금 이 곳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느낌이었어요.


오필
: 저희 아버님이 7남매의 맏이시거든요. 저 어릴 적에는 고모, 삼촌들이 집에서 다 같이 살았어요. 비좁은 집에서 여러 식구가 살면서 어머니는 늘 힘겨우셨던 것 같고, 몸이 워낙 약하신 데다 집안이 넉넉지 않으니까 제가 아기였을 적 충분히 젖을 못 먹이셨다고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제게 유난히 신경을 많이 쓰시고 간섭도 많으셨어요. 저는 그게 참 싫었고요. 그 때문인지 혼자 있는 공간, 나를 숨길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지금도 그런 게 좀 남아 있는 듯해요. 그러나 그런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은 모두 5유형이 되는 건 아닐 텐데요. 잘 모르겠네요.


육미
: 저희 가족은 아빠의 기분을 중심으로 돌아갔던 것 같아요. 엄마와 동생 저 셋이서 늘 아빠의 눈치를 봤죠. 언제 버럭 화내실지 모르는 분이고, 늘 잔소리와 걱정이 많으셨어요. 저는 집에 들어갈 때는 늘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들어가곤 했어요. ‘집에 들어가서 아빠가 와 계실 거고 기분이 엄청 안 좋으실 것이다.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실 것이다’ 이러고 들어가면 상상한 일은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다 방심하면 또 갑자기 혼나고.... 뭘 해도 아빠는 안 좋은 쪽으로 말씀하셨는데 제가 지금 그렇거든요. 제 유형 때문인지 아빠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바깥세상은 늘 무서운 곳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칠규
: 저는 뭐 행복했어요. 아, 물론 제가 일곱 살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서 반전이 생기긴 했죠. 그래도, 엄마가 생활력이 강하셔서 나름 저한테는 부족함 없이 해주셨어요. 엄마가 가게를 하시면서 단골손님들이 많았는데 제가 많이 웃겨드리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면 귀엽다고 돈도 주시고 했구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늘 상위권에 있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가니까 수학이며 이런 게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그 때부턴 아예 손을 좀 놨죠. 큭큭.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저는 나름대로 행복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7유형이라서 그래.’ 이러실 거죠? 흐흐흐..


팔수
: 이 얘기 하면 다 뒤집어지던데. 초등학교 1,2학년 때였나봐요.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욕탕에서 아버지한테 죽도록 맞았어요. 잘못했단 소릴 안한다고 더 때린 것 같은데 지기가 싫더라구요. 어린놈이 오기가 생긴 거죠. 하이튼 어떻게 마무리가 되고 아버지가 목욕탕을 나가시려는데 제가 침을 탁 뱉었어요. 나가시던 아버지가 바로 다시 들어오셔서 진짜 기절 직전까지 맞았죠. 아버지가 엄마도 많이 때렸어요. 엄마가 맞는 걸 보면서 ‘나중에 힘이 세지면 내가 엄마를 꼭 지켜줘야지.’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세상이 이런데 제가 약한 놈이 될 수 있었겠어요?


구민
: 뭐... 저는 그냥 뭐 대체로 괜찮았던 것 같은데요. 그냥 조용히 놀고 그랬어요. 형이 워낙 성격도 까다롭고 그래서 부모님이 많이 힘드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순해서 엄마가 ‘너 같은 애는 열도 키운다.’ 고 하셨어요. 있는 듯 없는 듯 지냈지요. 지금 생각하면 형은 원하는 걸 다 하고 사는 것 같은데 저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뭐 꼭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서 일까요? 지금 진로를 놓고 고민하면서도 제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게 참 막막하니까요.


모님
: 어려운 얘기들 잘 정리해서 나눠줬구나. 고맙다. 어린 시절 작업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부모님이라는 벽에 부딪히게 돼. 사랑으로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께 반역하는 느낌도 들 거야. 헌데 한 번 쯤은 넘어야 하는 것이 부모님이라는 산이고, 그것은 이런 의미로 이해하면 될 거야. 부모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지. 우리는 모두 온전한 사랑을 기대하고 그리는 존재들이지만 부모님들이 역시 인간이잖아. 그걸 인정하는 작업이 될 거야. 무방비 상태의 아기에게 부모님은 생사를 쥔 하나님 같은 존재야. 때문에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내 방식대로 각색되어 있을 거야. 이제 어른이 된 눈으로 각색되어 고착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단다. 중요한 것은 그림에서처럼 이것 역시 전부가 아니고, 내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야. 내 속사람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성령님의 손을 붙들고 그 분과 함께 가는 길임을 다시 잊어서는 안 될 거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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