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이런 저런 신발들은 주로 천안에 있다.
운동화며 일상적으로 신는 스니커즈며 축구화며....
지난 월요일 아침 같이 산책을 하는데 운동화가 집에 없어서 스니커즈 신고 한 시간 걷고 내려가서는
 허리 아프다 다리 아프다하는 문자가 날아왔다.
 
남편이 천안으로 가도 늘 집에 남았있는 신발은 오직 구두다.

 
 
결혼할 때 예복과 함께 샀던 남편의 구두다.
결혼하고 수 년 동안 일 년에 구두를 신는 일이 손에 꼽혔다.
직장도 정장을 하고 다니는 곳이 아니었고, 또 학생이었거나 공부하던 시절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주로 스니커즈를 신고 다녔고 결혼식이 있을 때나 한 번씩 신던 구두이다.
그래서 늘 새 것 같았던 구두이다.
 
작년 어느 날 남편이 벗어놓은 구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바닥의 안창이 일어나서 밖으로 쑥 나와있을 뿐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구두가 낡아 있었다.
결혼예복을 사던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양복도 양복이지만 산뜻하고 세련된,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남편이 멋져 보였었다.
 
생각해보니 작년부터는 주일마다 정장에 구두를 신었을 뿐 아니라 학교 가는 날이 아니면 양복 입는 일이 정말 많아졌다.
덕분에 작년 1년 새 구두가 그야말로 8년 된 구두의 모양을 갖춘 것이다.
작년 1년 동안 철철이 양복 사대느라 구두까지 장만할 엄두를 못냈다.
가끔 내가 사려고 해도 남편이 '아직 몇 년은 더 신을 수 있다'며 손사레를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아울렛에서 세일을 했다고 하는 구두가 십 만원이 넘으니 말이다.
이번 결혼 기념일에는 꼭 구두를 사줘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들 인형극 보여주러 2001 아울렛에 갔는데 59000원에 기획전에 누워있는 구두가 있어서 얼른 주워왔다.
 
 
 
 
 
남편은 '자칭 5다리' 때문에 오래 서 있는 걸 많이 힘들어 한다.
그래서 신발에도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는 컴포트화 기획전이 있으면 가장 편하고 가장 가벼운 스니커즈로 사다 신기곤 했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남편의 위에 있는 저 한 쪽 굽이 다 닳은 구두를 신고 서서 설교를 하고 오래 서 있는 생각을 하면
마음 한 구석이 짠했다.
남편이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특별한 일에 양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양복이 일상복이 된 사람은 '자기 일'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 일'이 있어도 양복이 일상복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남편의 경우 양복이 일상복이 됐다는 것을 그렇게 찾고 찾던 자신의 일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양복을 입고 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고 검정 서류가방을 들고 나가는 남편의 모습은 얼마나 행복한 그림인가?
그런데 또 그 양복이라는 것이 목에 맨 타이가 목을 조르듯 얼마나 많은 자유를 앗아가는 것이냐?
 
많은 자유를 잃고도 상실감을 느끼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소명일텐데....
안타깝게도 소명은 대부부의 경우 '직업'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에게 온다는 것.
그 직업이라는 옷이 몸에 너무 거북하지 않고 입고 활동하기 거북스럽지 않아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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