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 나 계주 뽑힐 걸 그랬나봐" 오늘 아침 먹으면서 현승이가 그랬습니다. 어제 5월4일 있을 소체육대 연습을 하고나서 계주를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대충 들었던 며칠 전 반에서 계주선수 뽑는 달리기 얘기가 생각납니다.
조별로 1,2등을 뽑아서 그 아이들끼리 달리기를 했는데 하다보니 자신이 1등으로 달리더랍니다. '어, 이러다 내가 계주에 뽑히면 어떡하지? 한 번도 안 해봤던 건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속도를 줄여서 3등을 했고, 1,2등 두 친구가 계주 대표로 뽑혔답니다.
아이구야, 그 때 속도를 줄였다는 얘기가 그 얘기였구나. 대표로 뽑힐까봐! ㅠㅠ


2.
그 얘기를 들으면서 채윤이가 그랬습니다. "맞다. 김현승 일곱 살 때 운동회 때도 그랬잖아. 1등으로 달려가서 결승점 앞에서 그냥 서버렸잖아. 그래서 따른 애가 1등했어" 그런 일도 있었네요. 달리기를 처음 해봐서 규칙을 모르나보다 하고 지나갔었는데.... 그 때도 현승이가 눈 앞에 있는 1등을 피해버렸군요.


3.
토요일 수영교실에 겨우 적응을 했는데 5일제 수업이 되면서 그 반이 없어지고 새로운 반이 만들어졌어요. 갑자기 아이들이 엄청 많아지고, 처음 두어 주는 테스트해서 레인배정 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더군요. 학부모 대기실에서 현승일 지켜보면... 그저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나를 주목하지 않을까? 이게 관건인 아이 같아요. 숨고, 또 숨고.
현승이가 일곱 살 부터 꾸준히 수영을 해온데다 진짜 좋은 선생님 만난 덕에 평영과 배영은 자세며 모든 게 선수 수준이예요. 저학년 그룹이니까 3학년인 현승이가 거의 제일 잘한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매 번 맨 꼴지에 가서 서는 거예요. 아이구, 속 터져. 앞에 친구들이 자유형 팔꺾기도 안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가고 있으면 그저 거기 맞춰서 쉬었다 가고 쉬었다 가고...
그러기를 5주 정도 하고나서 수영선생님이 '어, 현승이 너 수영 잘하네' 하면서 맨 앞으로 보내주신거죠. 그래. 숨고 숨어도 결국에는 자기 자리 찾게 되기도 하지만.


4.
수영 5주를 지켜보는 동안 나대기 본능 충만한 엄마는 속이 부글부글 하기도 했지만 그저 지켜보았어요. 엄마한테 나대지 말라고 하는 것 만큼이나 현승이에게 나서라고 하는 건 어려운 일일테니... 1등을 해서 주목을 받느니 그 1등을 포기하겠다는데요.
"엄마, 나 계주 뽑힐 걸 그랬나봐" 오늘 아침의 이 한 마디면 족하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자신으로서는 필연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에 대해서 반추해보고,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배운다면 그걸로 족한 겁니다. 현승이는 현승이고, 현승이는 채윤이가 아니니까요. 그저 그렇게 생긴 자신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만 있다면요.

 

 

'기쁨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바이벌]아홉 살, 어버이 날  (20) 2012.05.09
며느리는 좀 그래  (4) 2012.04.29
1등은 싫다  (6) 2012.04.25
꽃과 어린 왕자  (10) 2012.04.08
아빠, 양가감정  (2) 2012.04.06
학교 가는 길  (4) 2012.04.05
  1. 신의피리 2012.04.25 14:22

    웬지 아들 자랑하는 거 같네. ㅋ
    운동은 엄마를 닮아서 잘 못하는 줄 알았는데..ㅋ
    학년 올라가면서 아빠의 피를 이어받아 점점 잘하네..ㅋ
    결국 내 자랑 같네. ㅋ

    • BlogIcon larinari 2012.04.25 14:32 신고

      왠지 살짝 기분이 나빠지네.

    • 이과장 2012.04.25 15:00

      으흐흐 고모부 댓글..ㅋ

      근데, 내가 전에 어떤 글에서 고모부를 뺀 나머지 3명만 수영을 잘한다고 본 것 같은데 아닌가요??

      저희집은 팔다리 긴것만 아빠 닮고, 다른 모든 부분을 엄마를 닮아야하는 박성은이라는 아이가 있지요 푸하하하

    • BlogIcon larinari 2012.04.25 15:21 신고

      왜애~ 박서방 인물도 안 빠지지...
      안 빠지지만 그래도 엄마보단 못하단 얘긴가?ㅎㅎㅎ

      그치, 우리 식구 스파가면 고모부는 가만히 서서 시합시키고 잔소리만 하시지.ㅋㅋ

  2. hs 2012.04.26 22:05

    현승이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ㅋ
    그래도 드러나게 마련인데....^^

    • BlogIcon larinari 2012.04.27 09:34 신고

      현승이 아빠도 현승이 마음을 딱 알겠다고 하더라구요.
      아이들을 통해서 신묘막측하게 각양각색으로 만드신 사람의 몸과 마음을 더 잘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조금 덜 바빠지셨나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