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은 결혼 15주년 기념일이다.
오늘처럼 햇살이 맑고 투명한 날이었다.
기온은 오늘보다 낮았었을 것이다.
결혼식과 짧은 피로연을 마치고 양평 힐하우스로 가던 그 드라이브길을 잊지 못한다.
내 인생 가장 행복한 한 장면 탑 파이브 안에 드는 장면이다.

기념일, 생일 같은 것들을 피차에 꼼꼼하게 챙기는 편이 아니다.
대체로 둘 다 덤덤하게 몇 년 지내다가, 
한 번씩  내게서 여성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해에는 괜한 트집과 삐짐으로 남편 목을 조른다. 남편은 단지 男편된 죄로 엄청 미안해 하면서
꽃다발에 화장품 같은 선물을 뒤늦게 안기기도 했었다.


두어 달 [육아]책 원고를 정리해서 5월 1일에 넘겼다.
막바지에는 세월호와 함께 하는 작업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고 좀 보다 뉴스보다 한바탕 울고, 흐릿해진 눈으로 다시 원고 보고......
현승이를 낳고 채윤이가 사춘기로 떠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엮는데,
이 녀석들 이렇게 귀여웠구나! 싶어 미소 짓다가,
진도항에서 피눈물 흘리는 엄마들도 다들 이렇게 키웠을텐데,
그렇게 키우기까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울고 웃는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을텐데,
생각의 끝이 자꾸 여기로 가서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세월호 여파인지,
15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무게감과 진지함인지,
결혼 기념일이 차분한 특별함으로 마음에 새겨진다.
남편 생일까지 겹쳐서 오래 준비한 야심찬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마음은 무섭도록 덤덤하니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웃음기 없는 15주년 기념일이 지나갈 뻔 했는데,
티슈남 현승이가 재롱둥이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어제 학교 가면서 돈통(용돈을 깨알같이 모으는 통인데, 집안에서 현금보유율 가장 높은 부자다) 을 뒤적거리며 돈을 챙겨나가는 것 같았다.
저녁에 만났는데 방에서 뭘 하나 숨겨서 나오는데 저처럼 작고 귀여운 케잌이었다.
제과점에 갔는데 돈이 부족한 것 같아서 보다가 집에 다시 와서 돈을 가져갔단다.
다시 갔는데 주인 아줌마가 어떻에 알아채고 '너 돈 부족해서 다시 갔다왔니?' 웃으면서 피자빵을 챙겨줬는데 피자빵이 진짜 맛있다고 했다.
덕분에 웃었고, 덕분에 잠시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았다.




10여 년, 육아기를 정리해서 책이 나올 예정이다.
책을 한 권 내는 것의 무게를 이제야 깨달아가는 중이다.
어떤 책이든 내놓은 것은, 책임감이고 부끄러움이고, 무엇보다 위험함이라는 것을.


다만 결혼 15주년,

신혼의 알콩달콩함도 지나고,
육아를 위한 전쟁같은 시간도 지나고,
소명을 찾기 위해서 터널과 오솔길과 징검다리 없는 개울을 건너는 시간도 지나면서
인생의 한 챕터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책을 내는 저자로서 지극히 이기적인 의미부여라 민망한 마음 없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그랬다.
우리 인생에 훅 들어왔다 하나 씩 훅 빠져 나가는 아이들을 더욱 떠나보낼 준비,
더욱 신뢰하여 고마움 가득 안고 살아갈 머지 않은 미래, 노년을 살아갈 준비,
그런 준비를 해야할 때가 오는구나.
이렇게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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