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생일상 받은 여자, 자랑 좀 하겠습니다.

결혼 1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니 눈 딱 감고 한 번 들어주십쇼.


남편 김종필 님, 곱게 자란 남자라 요리라곤 못합니다.

몇 년 전 제가 코스타 가느라 한 열흘 집을 비웠는데 밥이란 걸 처음 해봤을 겁니다.

그렇다고 아내를 주방에 몰아넣고 부려먹는 마초는 아닙니다.

밥이나 먹을 것에 관심이 없을 뿐입니다.

굳이 주방에 들어올 이유가 없는 것이, 먹을 것이 없으면 굶어버리는 사람입니다.


종종 섭섭했지만 저는 생일 이벤트 같은 걸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가 아닌지라

(중요하게 여기는 척마저 안 하진 않습니다.)

생일에 미역국을 먹든 말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생일선물 빙자하여 봐뒀던 옷이나 하나 크게 챙기면 땡큐지요.

겨울 피정 중에 생일이었습니다.

피정 중에 생일이네.... 여행 중에 생축해야겠네.

분명히 이렇게 말해놓고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남자입니다.

여행 마지막 밤 변산에서 가볍게 저녁 때우기로 하고 라면을 사러 마트에 갔습니다.

엎드려 절받기로 즉석 미역국, 인스턴트 떡볶이 등을 사서 안겼습니다.

나는 쉬고 있을 테니 생일상을 차리라, 엄히 명했습니다.

메뉴얼 읽어가며 공부하듯 즉석 미역국과 즉석 떡볶이를 준비하는데.....

와, 그 좋은 머리로 저렇게 어렵게 일을 하다니.

바라보는데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한두 번을 제외하고 생일에 미역국 얻어먹은 적이 없는데요.

어쨌든 남편이 준비한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18년 걸렸습니다.


생일 이틀 지나고 오늘.

서프라이즈는 덤!

안성에서 강의를 마치고 퇴근 시간에 걸려 네 시간 운전하고 너덜너덜해져 돌아왔더니

이런 깜찍한 준비를 했더라는.....


생일에 미역국도 얻어 먹고 서프라이즈 케잌 세러모니도 당한 여자, 자랑 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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