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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남편이 둘 사이의 소통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쓰는 비유가 있어요. 앞 베란다 뒷 베란다 문이 다 활짝 열려 있을 때 바람이 통하면서 시워~언한 그 느낌을 말하곤 하죠. 반면 한 쪽이 문이 닫혀 있을 때는 다른 한 쪽에서 아무리 바람이 불어대도 거실을 종횡무진 하면 시원하게 하는 느낌은 없죠.

오랫만에 앞 뒤 베란다 문이 다 닫혀서 거실에 바람 한 점 안 들어오는 깝깝한 며칠을 보냈습니다. 안개 속 같다고나 할까요. 인생은 항상 재미있어야 하고, 그 재미를 늘 누군가와 나눠야 하는 여자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가까이 다가올 때 물미역이 몸을 감싸는 느낌, 젖은 신문지로 몸을 감싸는 느낌이 든다는 남자가 9년을 가까이 살아왔네요. 그렇게도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참 잘 이해하고 살아왔다고 자부했습니다. 내 자신보다 오히려 남편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느끼게 되었으니 '이보다 잘 이해할 수는 없다' 라고 자부심 충천이었죠.
갑자기 남편을 이해하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서로의 '다름'이 우주의 끝과 끝같이 멀게만 느껴져 답이 찾아지지가 않았습니다. 웬만한 갈등 해결하는 건 우리 부부에게는 일도 아니었는데요...

결국 토요일 목장을 하면서  처음으로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사람들을 맞이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토요일에 이 일, 저 일 마구 어렵게 겹치는 일이 있었고, 주일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의 연약함이 너무나 크게 느껴져서 기도하기도 싫어졌습니다. 기도를 하면 결국 내 약점을 인정해야 하고, 그렇게 그렇게 해결되는 것이 싫어서 애써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이번 주는 방학 전부터 계획해 놓은 가족여행을 가려던 시간이었습니다. 부산에 있는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 가정에도 가고 여러 계획이 있었지만 다 포기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각자 자기 문제에 골몰하며 며칠을 보내고 있었고, 결국 자기 안에서 문제를 찾다보니 둘의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이 되었습니다.
결혼식 마치고 첫날 밤을 양평에 있는 힐하우스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매년 결혼기념일에는 꼭 여기 와서 자자' 하는 약속도 했습니다. 결혼 9년이 되는 동안 한 번도 그 약속을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각각 생각을 했는데 둘 다 힐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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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보이는 강 건너의 풍경에 어떤 뒤틀린 마음도 확 풀어져 버릴 것 같았습니다. 저녁 어스름한 빛에 물에 비친 산그림자가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우리가 처음 서로에게 마음을 뺏기고 어쩔 줄 모를 때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지요. 결혼식을 마치고 양평으로 향하던 그 드라이브 길은 제 평생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제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 같은 존재였지요.

MBTI가 관계에서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지만 하나도 도움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 너랑 나랑은 원래 그렇게 달라. 생겨먹길 그렇게 생겨 먹었는데 어쩔거야?' 이러기 시작하면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없습니다. 그럴 때 회의가 많이 듭니다. 그런데 전향적으로 '저렇게 다른 사람에게 내 방식으로만 다가갈 수는 없겠구나. 저 사람과 조화를 이루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하지?'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정답은 지천에 널려 있는 듯이 보입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내가 상대방을 위해서 무엇이 달라지면 될까?'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때는 이미 게임 끝입니다. 그 때부터는 윈윈이 되는 거죠. 밤이 깊도록 강물이 흐르고 우리의 얘기도 흘러흘러 어느덧 다시 한 마음이 되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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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맞은 새아침에는 그저 각자 가장 좋아하는 놀이를 하면서 함께 있어도 좋았습니다. 물론 한 번에 한 가지만 집중하지 못하는 여자 때문에 한 번 한 가지만 하고 싶은 남자는 약간 신경질이 나기도 하시지만요.
"우씨! 책을 보는거야. 뭐하는 거야? 카메라는 왜 또 들고.....아~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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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더 이상 서로의 차이로 인해서 싸울 일이 없다고 자부하던 것이 큰 교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하는 윤동주의 시처럼 맑을 눈을 가지기 위해 날마다 날마다 입김 호호 불어 닦지 않으면 손에 있는 최고로 귀한 선물을 돌멩이 하나처럼 우습게 여기기 십상인 나의 마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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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양평의 구석구석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 풍경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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