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와 I


예수님의 제자도는 '공동체로의 부르심'이라 한다. 그 제자도를 따르기 위해 우리는 정말 열심히 공동체를 지향해 나간다. 그런데 그 놈의 공동체 안에는 왜 그리 문제가 많은 것일까? 육안으로 보면 깔끔한 침대 매트리스가 몇 백 배 확대 현미경을 대고 보면 진드기가 득실거리는 것처럼, 화기애애하고 서로를 위한 섬김과 기도가 넘쳐나는 것 같은 소그룹 모임마다 왜 그리 복잡한 '관계문제'가 득실거리며, 그것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인가? 무엇보다 그 문제의 핵심에 '내'가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관계 문제의 구조를 파악하는 큰 틀로서 MBTI를 손에 넣고 난 다음, 나는 한결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흔히 관계에서 상처주고 상처받는 근본적인 원인이 '죄'라고 말하지만, 그 '죄'는 '각자의 기질적인 특성'이라는 옷을 입고 저질러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칼 융(Karl Jung)의 심리학을 배경으로, 상반되는 네 쌍의 지표를 가지고 사람의 성격을 설명하는 성격검사 도구이다. 네 쌍의 지표가 결합해 16가지의 성격유형을 만들어내는데, 모든 사람을 16가지 틀에 잡어 넣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사람을 이해하는 16가지 큰 틀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MBTI라는 창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비춰보면서, 사람들이 키가 작거나 크거나, 머리칼이 직모이거나 곱슬인 것처럼, 어떤 성격들은 나와 다르게 그렇게 태어났음과, 그 다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는 유익을 누리는 소그룹이 많아졌으면 하는 기대로 글을 시작한다.

남편과 함께 소그룹 모임에 나란히 앉을 때가 많다. 때로는 가벼운 수다가 때로는 깊은 나눔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가는 가운데 남편의 깊은 심호흡이 들린다. 그리고 '음…그…'하는 들릴락말락하는 소리. 소위 말해서 '남편식 발동걸기'이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뜻이고, 그 말을 하기 위해서 기회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순간 누군가 짧은 침묵의 공간을 가로채고 나선다면 '음…그…음…꿀꺽' 하고 말을 삼키는 소리가 뒤따라 들린다. 그러기를 두서너 번 반복하다가 어떤 모임에서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모임을 마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그 모임의 리더는 시종일관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조원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아∼ 저 사람 디게 말도 없네.' 혹은 그 리더가 보다 강한 외향형의 사람이라면 '아∼ 저런 사람들은 어떻게 말을 시켜? 무슨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해야지 말야. 내 말을 먹나?' 이러면서 난감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확한 근거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외향형(E)이 질문을 듣고 대답하기까지는 3초가 걸린단다. 그러나 내향형(I)에게 동일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오기까지는 7초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외향형의 리더는 내향형의 조원에게 '이번 주 어떻게 지내셨어요?' 질문을 하고나서 자신의 기준으로 1초, 2초, 3초 후에 속으로 '에이∼ 또 말을 먹지' 하면서 화제를 바꾸기 십상이다. 7초의 발동을 걸던 내향형은 언제나처럼 '꿀꺽' 나머지 4초와 함께 준비하던 대답을 삼켜버릴 것이니 '말을 먹는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지 싶다.
마찬가지로 '3초 vs. 7초'의 원리로 생각해보면 끊임없는 수다 속에 내향형들이 신나게 떠들어대는 화자의 입만 따라 고개를 옮겨가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된다. 한 사람의 말과 말 사이에 도저히 7초라는 시간의 여유(Term)가 주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아예 말 자체를 포기하고 있기로 작정한 지 오래됐을 지도 모르겠다.
눈치가 빠른 리더는 여기까지 읽는 동안 뭔가 하나 건졌을 것이다. '소그룹 모임에서 침묵을 두려워하지 말자! 최소한 7초의 침묵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서 내향형의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자!' 물론 7초의 기회가 많아진다 해도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그 기회를 활용하고자 하는 내향형들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본의 아니게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실수는 원천봉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외향형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내향형들이 생각을 정리해서 말을 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외향형들은 말을 하고 떠들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니 그들의 입을 막는 것은 생각을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외향형들의 수다(?) 역시 배려 받아야 마땅한 공동체 안의 자산인 것이다. '아∼ 따, 디게 나서기 좋아하네.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네' 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기보다는 그들의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하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강은교 님의 시 <사랑법>을 패러디해 정리해 보면,
'떠들고 싶은 자 떠들게 하고, 침묵하고 싶은 자 침묵하게 하라.
그러나 침묵하는 자를 떠들게 하고 싶거든 언제든 7초의 여유를 두고 기다리라!

외향 에너지 방향, 주의초점 내향
Extraversion Introversion

감각 인식기능(정보수집) 직관
Sensing iNtuition

사고 판단기능(판단, 결정) 감정
Thinking Feeling

판단 이행양식·생활양식 인식
Judging Perce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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